"반체제 예술"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체제의 예술이라는 익숙한 시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아웃사이더의 예술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작품들의 흐릿한 흑백사진을 보면 거칠고, 투박하며, 단순명료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그림과 조각을 한동안 바라보면 거기에서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라는 실체이다.
인간은 진보와 변혁을 소망한다. 하지만 그것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진보라는 이름의 기계적 사회는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황폐함 혹은 모던 타임즈와 같은 인간성 상실의 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진보란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피카소는 예술에서 발전이란 것을 "예술 그 자체가 발전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이 변화하고, 그와함께 인간의 표현능력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예술가는 두 장의 거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은 한편의 거울에 무한히 반복되는 상을 과거의 작품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편에 비친 상을 미래의 작품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같은 그림이고 단지 차원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카소는 자신이 사용한 여러 방법을 발전이라든가 색다른 회화이념의 한 단계로 생각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피카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은 모두 현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이런 사고 방식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의 선배인 고야의 작품에서 또 다시 만날 수 있다. 고야의 작품집 "카프리치오(마음내키는대로)" 연작 시리즈가 그것이다. 고야는 이 연작집 가운데 23번째 작품인 '이 오욕!'이라는 작품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작품은 참회복을 입고 오욕의 상징인 삼각뿔 모자를 쓴 창녀가 목을 늘어뜨리고 종교재판관의 판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야는 이 작품에 "빵과 버터를 위해서 열심히 사회에 봉사하는 용감한 여자를 이렇게 취급하다니, 치욕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 주석이 종교재판관들의 심사를 건드렸고, 고야는 심문관에게 질문을 받았다. "누가 이 여자를 나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인가? 종교재판소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고야는 "숙명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재판관은 "숙명이란 뭔가?" 하고 재차 질문하자, 고야는 심사숙고 끝에 "데몬Demon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저자는 여기서 데몬이란 악마가 아니고 인간의 내면 속에 내재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도록 지배하는 영, 즉 선과 악을 초월하여 부정도 긍정도 소용없이 인간을 휩쓸려가게 하는 거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힘을 의미한다고 부연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