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 곡 - 김동률 교수의 음악 여행 에세이
김동률 지음, 권태균.석재현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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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선생의 <인생한곡>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노년의 문턱이 저만치 보이는 사내의 회고담이다. 그 회고는 한국 현대사의 축약이랄 수 있는 노래를 매개로 한 것이어서, 그리고 그 노래들이 죄다 신산한 삶의 얼룩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처연하고 슬프면서도 애틋하고 정겹다. 제목 그대로 인생은 노래 한 곡속에 꽉 들어차 있으니, 그 노래는 대중가수의 입을 통해 불러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전쟁과 가난, 농촌과 도시의 설움을 여린 몸뚱이로 버텨왔던 평균적 한국인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유년의 평온을 지나 사랑에 목메던 청춘을 거쳐 반백의 머리를 한 초로의 사내가 소주 서너 잔 걸치고 부르는 인생만가와도 같다. 평소의 다소간 느릿하고 낭만적(?)인 어투 그대로인 김선생의 문장과 소박하고 선하기 그지없던 심성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권태균의 사진은 한 몸으로 뒤섞여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한 센티멘털리즘으로 일관한다.


나로서는 김선생의 이런 센티멘털리즘이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그 센티멘털리즘은 먹고 살기 힘든 세월을 살아왔던 한국인들이라면, 마음 저 밑바닥에 누구나 한움큼 씩은 가지고 있을 만큼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여기 나오는 모든 노래들은 나 역시도 아는 노래이거니와(적어도 사십대 아래는 모르는 노래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노래에 얽힌 사연 한 두 개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감성이자 경험치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광화문 연가를 읊조려 봤을 것이고, ‘서른 즈음에를 서럽게 불렀던 만 서른살의 생일이 있었을 것이며, 3차로 간 노래방에서 낭만에 대하여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아저씨/아줌마틱하게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80-90년대 시위현장과 수상쩍은 술집에서 아침이슬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은 자 많지 않으리라.


저자와 사진가, 그 둘과의 인연도 새삼스럽다. 김선생과 동유럽 일대를 차를 몰고 며칠 동안 돌면서 그가 음악과 문학, 클래식과 대중음악, 역사와 인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알았다. 그의 신문 칼럼들이 보여주는 고전적 중후함은 그 교양과 안목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10여년 동안 클래식 음악 등을 담당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였으며, 늦깎이로 언론학 박사를 한 뒤 국책연구기관에서 유일한 비경제학 부문 연구원을 지냈다.


TK 출신으로 다소간 보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나 그보다는 리버럴리스트에 가깝고, 인문적 낭만주의자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니, 이 책에서 오빠 생각의 소박한 동심과 향수의 선험적 고향상실성과 세노야의 칠십년대적 낭만주의(청년문화론?)굳세어라 금순아의 영화 국제시장스런 아버지 세대에 대한 추모와 세월이 가면의 복고적 낭만주의와 부용산북한강에서의 장중한 비극미와 사계의 산업화 시대의 감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정치적 프리즘으로서의 좌우는 여기 적용되지 않으며, 노래와 거기 얽힌 삶, 그리고 동시대인과 전세대에 대한 깊은 공감과 눈물어린 회억이 페이지마다 출몰하는 것이다그리고, 사진가 권태균. 죽기 사흘전 광화문에서 만난 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자연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교수직이 재미없어 때려치고 다시 현장 사진가로 복귀한 천생 찍사였던 그는 주름 패인 얼굴에 사람좋은 웃음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는 전국의 산과 바다, 강과 들판을 두루 다녔으며, 70년대 강운구 선생이 찾았던 강원도 마을을 30년 뒤에 다시 찾아 <마을 삼부작>을 다시 펴냈다. 그의 조수석에 앉아 사진과 살아온 내력을 풀어내며 고속도로를 달리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김선생의 노래 이야기가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이 책에서 다룬 상당수의 노래에 신촌이야기가 나와서이기도 하다. 고려대 출신인 그는 제기시장과 안암동의 후미진 골목에서 놀지 않고 연세대 이화여대가 있는 신촌에서 하숙을 했고, 80년대 신촌의 술집과 카페를 전전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유서깊은 카페와 술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한 두 개만 겨우 버티고 살아 있는데, 그와 상당한 터울을 두고도 내가 그 곳들을 섭렵했으니, 이나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문화감각과 거의 동시대를(아니 끝자락을) 맛본 셈이다. 아니, 그것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신촌이라기보다 감성의 시간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가령, 그것은 자유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쯤을 함께 부르며 문득 가슴속이 더워짐을 느끼는, 그러한 동세대적 감성이다공감의 일체성, 감성의 공동체, 그렇게 노래는 그 노래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집단과 세대를 감성적으로 확연하게 갈라버린다. 그래서, 나는 저 아랫세대가 아니라 이 책의 김동률 선생의 세대군에 속해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김동률 선생이 자주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듯이,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짜배기 사진쟁이였던 권태균에게 다소 늦은 애도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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