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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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다. 펭귄 클래식판의 동명 소설에는 <가정의 행복>, <악마>, <신부 세르게이>와 함께 이 경장편 소설이 실려 있다. 세종로 어느 건물의 한 구석에서 일요일 당직을 보며 이 19세기 소설가의 파국적 상상을 못마땅해 하며 책장을 넘겼다. 톨스토이는 결혼과 사랑, 가정과 행복이라는 당대 러시아인의 일상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든다. 계몽주의자인 이광수가 열광하던 농업사회주의적 계몽사상가보다는 이런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줄 때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톨스토이는 일제 강점기의 이광수가 아니라 차라리 현대의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치정과 질투를 뺀다면, 아마도 음악의 독한 전염력에 대한 사유가 불거져 나올 것 같다. 어떠한 매개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접성의 예술로서 음악이 가진 강력한 호소력은, 이 소설에서 치정과 질투의 맹목성과 유비관계를 이룬다. 아내와 바이올린 연주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사내는 사건의 원인은 음악이었다라고 단언한다. 음악 이전에 애정도 욕망도 사라진 나른한 부부관계가 있었음에도 그것은 치정살인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게 사내의 믿음이다.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그렇게 맹목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음악이 된다.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이 이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니 음악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악이 도대체 뭐지요?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고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이고 거짓입니다! 음악은 무서운 작용을 합니다. 어쨌든 제게는 그랬지요.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 않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도 천박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음악은 그것을 작곡한 사람의 정신세계로 곧바로 저를 데려갑니다. 저는 작곡가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그와 함께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겨 다니는데, 제가 왜 그렇게 되는 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작곡한 베토벤은 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었는지 틀림없이 알고 있기에 그 상태가 의미가 있겠지만, 제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음악이 자극은 하지만 끝을 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이 소설에서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간의 불륜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가정될 뿐 톨스토이는 그 둘의 관계를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사내의 질투가 만들어낸 판타지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이 사내의 음악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욕망에 대한 인식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음악이 맹목이라면, 살인으로 치닫는 질투도 맹목이다. 그것은 살의를 자극하고 급기야 코르셋을 뚫고 심장을 찌르는 칼이 되는 것이다. 유혈이 낭자한 치정극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그러므로 한 사내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결혼, 질투와 욕망의 심리 드라마로 보는 게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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