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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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의 소설 <비행운>의 뒷표지에는 이 책에 실린 단편 ‘서른’의 한 대목이 광고 문구처럼 쓰여 있다. 불문과를 졸업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피라미드 판매조직인 ‘거마 대학생’이 된 주인공이 자기를 따르던 고삐리에게 하는 말이다. 거마대학생은 자신의 후배이자 제자를 다시 거마 대학생으로 끌어들인다. 그녀 역시 선배에 이끌려 피라미드 조직에 왔다. 이 비루한 운명의 사슬은 우리 시대 88만원 세대의 숙명처럼 보인다. 그러니, 피라미드 조직원은 또다른 피라미드 조직원을 낳고, ‘잉여’는 또 다른 ‘잉여’를 사슬처럼 엮고, 비정규직은 또 다른 비정규직으로 이어진다. 비하만의 ‘삼십세’와 최승자의 ‘서른’은 청춘기를 벗어나 삶의 새로운 단계(그것이 희망적이든 비관적이든)에 진입하는 것이었다면, 이들은 그 성숙으로 가는 길을 애시당초 차단당한 젊음들이다. 이 소설집에서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간 젊은 부부가 등장하는 ‘벌레들’에서처럼, 그들의 삶은 주변부에서 버려진 채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일 뿐. 김애란은 자신이 속한 세대(30대 초반)가 처한 현실과 그들의 운명에 관한 세밀화를 그리기로 작정한 것 같다. 피기도 전에 이미 시든 이들 꽃같은 청춘들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가망없는 희망으로 그려져 있다.

 

과연 그렇다. 신입 직원 모집 때마다 나는 우울증이 도진다. 수북히 쌓인 그들의 이력서를 보면서 그들보다 앞선 세대로서 나는 도대체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과 서글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들 보다 좀 더 앞선 세대이고 좀더 나은 환경 속에 처했다는 이유로 능력 이상의 자리를 보장받은 세대의 위선적 자책일지도 모른다. 그 이력의 내력은 대부분 1-2년짜리 인턴과 계약직이고, 그들이 원서를 내는 자리도 1-2년 짜리 비정규직이니, 이들 세대의 불우한 숙명은 우석훈의 ‘세대착취’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달리 이들에게는 ‘수업시대’가 없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대학시절 선망했던 ‘오빠’가 비정규직 AD가 되어 그 인연을 근거로 비만 프로그램이 출연자로 비만한 후배를 이용해 먹듯이(‘너의 여름은 어떠니’), 비정규직이라는 팍팍한 삶의 현실 속에서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로맨스가 허용될 자리는 없다. 이들의 삶은 탈낭만화된 속화된 질서 속에 놓여 있고, 희망은 언제나 '비정규직'이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청소부인 기옥씨가 등장하는 ‘하루의 축’도 그러한데,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손꼽히는 이 공항의 직원 중 비정규직이 80%에 이른다는 실제의 ‘팩트’ 앞에서는 삶에 대한 연민을 넘어 우리시대의 질서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점에서 김애란이 공을 들여 그리고 있는 이 세밀화는 적어도 내게는 성공한 셈이다. 그녀가 리얼리스트의 시선으로 우리시대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령 그것이 소설의 상업적 전략이 개입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설픈 위무와 공허한 수사학이 판을 치는 마당에,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황석영이 개발독재 시대의 삶에 주목했다면, 김애란은 신자유주의 절정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존재의 근원적 고통이거나 멜랑콜리한 감성이거나. 어느 중견 여성 소설가의 그것처럼 그저 가족애만이 살길이라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건강하다.(아, 이런 구태의연한 수사라니!)

 

이 소설을 사무실에 근무하는 20대 여성들에게 “당신들 세대의 이야기”라며 선물을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러면 안될 것 같다. 페이스북에 열심히 음식 사진을 올리고, 유튜브로 K 팝스타들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빅토리아 시크릿과 SKⅡ 피테라 에센스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김애란의 소설 따위가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하루키 소설보다 더 재미없을 것이 분명하고, 아멜리 노통브보다 덜 말랑말랑하니, 읽어내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번 읽어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통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 믿음이야말로 19세기적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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