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서하진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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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의 장편소설 <나나>는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상아빛 네글리제를 입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은 여인의 뒷모습. 눈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데, 얼굴을 위쪽으로 약간 치켜든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오른손이 오른쪽 목덜미에 가 있고, 왼손은 허벅지에 놓여 있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한껏 자극한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그 얼굴은 구스타브 클림트의 ‘유디트’의 그것을 닮아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욕망에 가득찬 얼굴로 대상을 유혹하는 여인의 표정. 이 책의 표지는 소설이 여인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라는 것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미혼의 사십대 남자 인영이 있다. 그는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으로 약국을 하며 살고 있다. 그에게는 남모를 고뇌가 있는데, 바로 배다른 누이인 ‘나나’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 나나는 어머니의 사별로 재혼한 계모(희주)가 데리고 온 이복동생. 소설은 나나에 대한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인영의 주저와 갈증(“나나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면 그의 목을 타고 갈증이 올라왔다”라는 문장 같은 것),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구원으로서의 애란에 대한 애정을 에피소드로 엮어가면서, 나나가 가진 세속적 욕망의 좌절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나의 세속적 욕망이란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는 것, 이를 위해 그녀는 인영의 유산이 될 집을 저당잡혀 거액을 대출받고, 이를 비엔날레 심사위원에게 건네고, 청와대 비서관을 유혹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자를 유혹하는 팜므파탈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워지며 그것으로 남자를 유혹한다.

서하진이 말하듯 이 소설의 얼개는 신정아 사건에서 빌려왔다. 인영 아버지의 죽음은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서 차용한 듯 하다. 팜므파탈이란 거부할 수 없는 마성(demon)적 존재여야 하는데 신정아를 그렇게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메리메의 단편 ‘카르멘’이 가르쳐 주듯이 팜므파탈로서의 여성은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갖고 있는 존재여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덫이고 늪’이라 말한다)그것이 죽음으로 향한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매혹당하는 것, 또 그런 존재에게 팜므파탈이라는 이름이 가능할 것이다. 팜므파탈은 끊임없이 사랑할 남자를 찾고 그를 잠자리로 유혹하는 지상의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상의 질서를 초월해 있는, 성(聖)과 속(俗)을 동시에 갖는 존재여야 한다. 공포와 매혹, 우주적 성녀와 마성적 창녀의 혼합? 글쎄, 신정아에게서 그런 면모를 발견하긴 어렵지 않을까. 이 소설의 나나가 팜므파탈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속’이 많고 ‘성’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이 소설은 공학적으로 잘 쓰여진 작품이다. 문장은 섬세하고 차분하며 아주 깔끔하다. 오랫동안 소설을 써온 사십대의 작가가 원숙하게 써낼 수 있는 소설로 보인다. 그렇다고, 좋은 소설인 것 같지는 않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공학적으로 잘 써낸 소설 정도로 밖에 달리 평가의 여지는 없는 것 같다. 오피스레이디(OL)들이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사나흘 출퇴근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달래줄 만한 정도다. 읽으면서 가끔 “마흔, 더이상 젊지 않고 더 이상 이르거나 늦지도 않은, 그 어떤 것들을 포기할 수도, 그를 향해 달려갈 수도 없는 나이”라거나 “행복은 때로 죄책감을 담보로 한답니다”와 같은 대목에 마음을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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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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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4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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