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는 언제나 술렁거린다. 아직은 한기가 남아 있는 엊그제 밤에도 그랬다. 까르르 웃으며 지나는 10대들 사이를 지나며 아침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며 읽던 한겨레를 떠올렸다. 문화면에 큼지막하게 실린 한 연극에 대한 리뷰 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471318.html)기사는 홍세화는 “충격적이다. 2시간 동안 꼼짝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연극에 감동 먹은 ‘좌파 교수’ 오세철은 “카메오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는 얼마 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문제를 다룬 ‘반도체 소녀’에 출연한 바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것. 명실상부한 전방위 문화게릴라 김상수 선생의 연극 <TAXI TAXI>. 신문에는 작은 키에 매서운 눈빛의 김선생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가겠다’는 약속만 해 놓고 여태 극장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미안했다. 연극표는 이미 한 달여 전에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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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기 20분 전에 대학로 KFC 지하의 극장 아울로 갔다. 김선생은 어둑한 공연장 위쪽 구석에 지치고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주 고집스럽게 다문 입과 형형한 눈빛, 하지만 그는 아주 지쳐 보였다. 객석이 170여개나 되지만 오늘은 20명이 채 안되는 듯 했다. 객석이 썰렁하면 아무리 좋은 연극도 썰렁하게 마련이다. 연극에서 출발해 시나리오, 드라마, 설치미술, 사진, 문화정책으로까지 나아간 그의 예술편력은 참으로 다채롭다. 이제는 그런 ‘편력시대’를 끝낼 법도 한데, 시사 칼럼에 이어 아예 프리랜서 기자로까지 나서는 걸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10여년 저쪽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예리한 식견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당시에도 야인이었고 지금도 야인이다. 그 야인(野人)이 주류 질서에 대한 편입을 생래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장자연 사건’과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노동자 사건을 다룬 이 연극은 코미디와 벗기기가 지배하는 대학로 연극씬에서 사뭇 이채로운 공연이다. 한국 연극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창작연극’이라는 점도 눈에 띤다. 이런 연극이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라는 게 김선생의 평소 지론인데, 그 시대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려는 관객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연극이 우리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비될 뿐인 ‘타임킬링용’ 쾌락의 소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문화정책의 수장에까지 오른 한 대표적 연극인은 자신의 대표작을 ‘햄릿’과 ‘파우스트’라고 했다. 이거 참 우스운 일이다. 영국의 로얄씨어터 배우가 저 변방 ‘코리아’의 대표 배우가 자국의 연극을 대표작이라고 하면 과연 뭐라고 할 것인가. 한국 연극은 100여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저 베끼기와 흉내내기에 그치고 있다.

막이 오르기 이분 전 기자 후배가 또다른 여자 후배를 데리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블로그와 트위터계를 주름잡는 그가 이 연극의 흥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문화적 감식안에 대한 신뢰도 그러려니와 그의 트위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수만명의 팔로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잠시 정치부 기자로 ‘외도’아닌 외도를 했지만 그의 본령은 역시 문화다. 넘치는 재기로 트위터계를 평정하다가도 가끔 구설에 오르기도 하는 모양인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는 그의 ‘멘션' 탓이다. 나로서는 그의 멘션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의 비판자들이 가진 지나친 엄숙주의가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가서 이 연극 볼만하다고 와장창 트윗을 날려주라, 제발 부탁이다!!

무대는 단출했다. 한 가운데에 본네트가 열린 택시가 덩그마니 놓여 있고, 그 주위로 반타원형으로 철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택시기사가 나와 “웰컴, 이럇사이마세, 환인꽝린, 어서오세요”를 번갈아가며 외친다. 그의 딸은 ‘샴숑전자’(아예 대놓고 모 기업을 거론하는 대신 이런 우스꽝스런 작명을 택한 모양)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택시에는 대책없는 연예인 지망생, 구사대, 선글라스를 낀 사내(선글라스는 5.16 이후의 박정희, 곧 70년대를 상징한다.)등이 번갈아가며 승차한다. 택시와 택시기사를 둘러싼 사연과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는 연예인지망생이 ‘스타’로 등극하기 위해 마담-실장과 만나고 접대하고 절망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김선생이 극을 풀어가는 방식은 정공법이다. 이렇다 할 ‘변화구’도 없이 오로지 ‘직구’로 2시간 10분을 압도해 나간다. 이렇게 힘이 넘치는 연극도 보기 드물 것이다. 객석은 긴장된 채로 숨 죽인채 감정의 파고가 흘러넘치는 무대를 내내 주시한다. 오디션을 통해 모집했다는, 경력이 많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높은 감정의 파고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연극에 곧잘 등장하게 마련인 ‘피에로’와 같은 극의 이완을 돕는 캐릭터도 거의 없다. 홍세화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연극은 재벌과 권력이라는 억압의 구조를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그 문법은 80년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김선생 자신이 80년대 민중극/노동극의 전통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동시에 이른바 민중미학의 유력한 코드 중의 하나였던 ‘전망’(perspective)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전망’이란 많은 경우 문화운동 진영의 독단적 계몽주의가 반영된 것일 뿐이었다. 공허한 단결론이거나 허황한 대결의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사연 하는 평론가들은 곧잘 ‘전망부재’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댔다. 그런데, 김선생의 연극은 한층 더 복합적이었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백혈병으로 결국 딸을 잃은 택시기사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웰컴, 이럇사이마세, 환인꽝린, 어서오세요”를 외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TV에서 성공하려 했던 소녀의 욕망은, 코드가 뽑힌 채 ‘내장’을 다 드러낸 텔레비전 수상기처럼, 산산히 부서져 버린다.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향한 욕망. 그러니, 그건 주체의 욕망이기는 커녕, 타자의 욕망이다.)

막힌 출구, 닫힌 전망. 그러나, 그것이 유발하는 ‘불편함’의 정도는 강렬하다. 전망 찾기에 골몰하는 대신 김선생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고통과 정신적 위기를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다. 구조의 혁파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적 고통이다. 그가 도드라지게 보여주려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위기는, 구조적 위기라기보다는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성과 그로 인한 고통인 셈이다. 관객들은 두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구조’에 분노하기 보다는, 그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함께 견딘다. 연극판을 떠난지 10여년 만에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 김상수 선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고통의 연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상에서 ‘당신은 안녕한가’라는 고통스런 질문. 우리가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회복. (한 시민단체 의하면, 국내 대표적 반도체 기업에서 현재까지 46명이 백혈병으로 죽었다. 유족들은 현재 산재를 인정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백혈병 소녀의 마지막 독백 : 나는 인생이 뭔지 모릅니다. 그걸 알기에는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세상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들어야 하는 겁니까? 하느님,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께서도 나에게 나를, 나를 믿어주셔야 되잖아요? 나를, 나를 이 고통에서, 여기서, 벗어나게, 떠나게, 도와주세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세상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를 믿어 주시지 않는 겁니까? 그럼 좋습니다. 내게 아픔을 주시겠다면, 더 가까이, 더 심하게 주세요. 언제든지 상대하겠습니다. 고통이 나를 꺾든지, 내가 고통을 꺾든지, 와! 이리 와! 모두 와!

극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아무말 없이 서둘러 극장을 떠났다.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대학로의 한 술집에 모인 기자와 연출자, 여대생, 그리고 한 관객은 시시콜콜한 연극 뒷담화를 했다. 나는 이 연극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연극준비를 위해 저당 잡힌 집이 그대로 온전하기를 바랬다. 술 몇 잔 들이키고 집에 가면서 트위터를 열어 보니 기자 후배가 이런 트윗을 날렸다. “연극 'TAXI TAXI' 봤어요. 일단 무엇보다 여배우들이 예쁘구요. 삼숑 열라 씹구요. 조선일보 열라 까구요. MB 열라 비웃어요. 근데 진지하게 씹고 까고 비웃어요.” 역시, 이 친구는 예쁜 여배우가 먼저 눈에 보이는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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