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추운 날에는 만화를 봐야 한다. 이런 날은 일찍 집에 들어가 거실 소파에 다리 뻗고 누워 만화를 봐야 한다. 몸은 피곤하고, 온갖 잡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혼곤할 때, 만화를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세월을 보내야 한다. 동네 골목마다 즐비하던 만화가게들이 없어졌으니, 이젠 ‘대여’가 아니라 사서 봐야 한다. 만화책의 지질이 갱지임에도 불구하고, 그새 만화책 값은 엄청 올랐다. 그래도 사야 한다. 한줌의 위안이 그리울 때, 만화는 가장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불편도 투정도 않고, 딱 본 만큼의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날은 저물고 집에는 가야 하는데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던 어제, 아무 생각 없이 교보에 갔다.

가서 보니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6권이 나와 있었다.  한권 보고 잊을 만하면 나오는 만화책의 더딘 출간 속도는 참으로 감질 맛 난다. 히로카네 겐지의 ‘시마’ 시리즈도 그러한데, 70년대 과장을 거쳐 80년대 부장이 되더니 중국의 개혁개방 시대를 맞아 이사가 되더니, 거품 붕괴 이후의 시대에는 드디어 ‘사장’이 되었다. 시마 시리즈에 비하자면, <심야식당>은 에피소드 중심이라 그나마 감질맛이 덜 하다. 어쨌건 이번에 나온 6권도 전편들과 비스무리한 스토리들이 개성적이고 간결한 그림과 더불어 보고 읽을 만 했다. 아쉬운 건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봤는데, 내릴 때 되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는 것. 한 시간도 못돼 이렇게 끝나다니, 허무하여라.

그러니까, 야밤에 문을 여는 식당, 누구든 먹고 싶은 것을 주문만 하면 뚝딱 만들어 주는 눈가에 흉터자국이 있는 빼빼 마른 아저씨가 하는 식당. 간단한 요기꺼리에서부터 한끼 식사, 그리고 술까지 파는 집. 이 만화는 음식에 대한 개인의 취향과 그 개인적 취향의 형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다양해서 술집 호스티스와 게이샤부터, 트랜스 젠더, 직장인, 만화가, 할머니와 엄마와 딸, 바람난 남자와 여자들까지, 한밤의 동경 거리를 돌아다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연작 만화라는 시트콤 드라마 형식을 빌었기 때문일 것인데, 나로서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심야식당이라는 ‘소우주’가 매우 일본스러워 보였다. 일본스럽다함은 사회학적 상상력보다는 개인의 미세한 일상사를 소소한 드라마로 그려 보이는 ‘사소설적’ 전통이 만화에서도 어김없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밥상을 마주하고는 누구나 그 소박한 ‘평화와 안식’을 경험할 것이다. 가령, 한국 사람이라면 곽재구의 ‘김치찌개 평화론’이 주는 가족주의적 아우라를 절절하게 체험한 바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퍼준 김나는 밥을 한 술 떠 먹을 때의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말이다.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아버지가 고추잎을 닮은 딸 아이에게/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염병헐,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김치찌개 평화론, 곽재구)

그도 아니라면, 김선우가 말한 대로, 여럿 둘러 앉아 삼겹살(물론 그녀의 시는 삼겹살이 아니라 돼지고기 소금구이지만,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지)을 상추에 싸 먹을 때의 그 생의 환희 같은 것.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은 왁자하게 떠들며 삼겹살을 먹을 때가 아닐 것인가. 그런 즐거움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채식주의자들의 염결성을 나는 무척이나 싫어한다.

이상하지? 신촌 고바우집 연탄 불판 위에서 생고깃덩어리 익어갈 때, 두꺼운 비곗살로 불판을 쓱쓱 닦아가며 남루 한 얼굴 몇이 맛나게 소금구이 먹고 있을 때 /엉치뼈나 갈비뼈 안짝 어디쯤서 내밀하게 움직이던 살들과 육체의 건너편에 밀접했던 비곗살, 살아서는 절대로 서로의 살을 만져 줄 수 없던 것들이, 참 이상하지?/새끼의 등짝을 핥아주고 암내도 풍기곤 했을 처형된 욕망의 덩어리들이 자기 살로 자기 살을 닦아주면서 , 그리웠어 어쩌구 하는 것처럼 다정스레 냄새를 풍기더라니깐/훤한 알전구 주방의 큰 도마에선 붉게 상기된 아줌마들이 뭉청뭉청 돼지 한 마리 썰고 있었는데 내 살이 내 살을 닦아줄 그때처럼 신명나게 생고기를 썰고 있었는데/축제의 무희처럼 상추를 활짝 펼쳐들고 방울, 단검, 고기 몇점, 맛나게 싸서 삼키는 중에 이상하지? 산다는 게 갑자기/단순하게 경쾌해지고 화르륵 밝아지는, 안 보이던 나의 얼굴이 그때 갑자기 보이는 것이었거든.(고바우집 소금구이, 김선우)

그런데, <심야식당>이 지극히 일본스럽다함은, 삼겹살이나 김치찌개에서 보이는 그 ‘비릿한 질감의 연대감’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지극히 개인화되어 있으며, 주인장 또한 그들에게 별로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전국 어딜 가든 꼭 한 군데는 있게 마련인 ‘욕쟁이 할머니’ 같은 가족주의적 아우라가 없는 것이다. 그게 싫은가. 아니다, 그래서 편하고 부담 없다. 만약 한국의 <심야식당>이라면, 그리고 그곳의 주인장이라면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개인사와 일상에 틈입하여 쓸데없는 카운슬러를 자청했을 것이다. 심야식당이 한밤 동경 뒷골목에서 형성된 느슨한 공동체일지언정, 서로가 서로를 감정적으로 묶어내는 질펀한 연대가 없어서 차라리 쿨한 것이다. 물론,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은 가볍기도 하고, 가끔 눈물 찔끔 나기도 하며, 키들거리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 만화는 주인장의 째진 얼굴처럼 쿨하다.

아베 야로의 이 만화는 일드로도 만들어진 모양인데, 케이블에서 한 두번 보다 말았다. 어째 일본의 걸작만화가 영화화되었을 때는 왜 그리 우스꽝스러운 스토리로 변하는 지 모르겠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들>도 그렇고... 어제 교보에서 산 아베 야로의 또 다른 만화는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다. 야마모토에 귀를 파주는 가게가 있는데, 아주 예쁜 여자가 귀를 파주는 ‘서비스’를 하고, 한번 거기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광적인 귀파기 매니어가 되어 버린다. 유쾌하고 재밌는 발상인데, 물론 에로틱하기도 하다. 여자들을 기형적으로 그리는 아베 야로의 그림체가 오히려 섹슈얼하게 느껴진다. 무릎을 대주고 귀파주는 여자라서 그런가. 아무튼, 이 만화가 한권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둘째권이 나올 때까지 또 감질맛 나게 기다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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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qui 2011-01-20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파주는 가게라니~ 저는 어머니가 파주는 것도 왠지 공포스러워서 못맡기겠던데 말이죠 ㅡ.ㅡ;ㅎㅎ 만화가 영화화될때 그 원작의 아우라를 상실하게 되는건 어쩔수 없는듯; 재현에 무리가 있다는 점은 둘째로 치고-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그토록 상상력이 후진지 모르겠어요-일본인들 특유의 제스처가 익숙치않아서 그런지 저는 안보게 되더라구요;대표적으로 노다메 칸타빌레가 그랬다지요..

모든사이 2011-01-20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그런 거 같습니다. 좀더 덧붙이자면, 저는 일본 문화 특유의 어떤 폐쇄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1억2천만명이라는 인구가 창출하는 일본의 자족적 내수시장과 불가피하게 대외의존형 개방경제(박정희 정부하에서 만들어진 발전경로)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우리와의 차이 같은 것이랄까요. 그러니까, 일본은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폐쇄적으로 고집해도 되는 조건 속에서 대중문화가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오타쿠스러운 문화, 그리고 매니어에게 호소할 수 있는 문화가 창출되었다는 것. 그것이 가진 보편성은 우리의 개방적(그것이 헐리우드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든 어떻든) 문화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비단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만이 아니라, 일본 영화의 저변에 폭넓게 퍼져 있는 B급스러운 취향은 그런 폐쇄성의 결과가 아닐까라는. 아니, 어쩌면 제가 가진 문화적 감식안이 협애한 것이어서일수도.. ㅎㅎ

빵가게재습격 2011-10-06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사이님 안녕하세요. 글을 읽어보니 너무 좋네요. 실례지만, 제 블로그에 옮겨 게재해도 될까요? 마침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을 읽었는데, 모든 사이님의 리뷰를 보니 꼭 옮겨놓고 싶어서요. 괜찮을지 의견 여쭤봅니다. 부탁드립니다~^^

모든사이 2011-10-06 08:26   좋아요 1 | URL
네 괜찮습니다. 출처만 밝혀주시면 어디에 써도 무방합니다. 근데, 이게 쓴 지 좀 된 리뷰인데, 심야식당은 벌써 7권이 나오지 않았나요? ㅎㅎ

빵가게재습격 2011-10-06 09: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