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 발터 벤야민 전기소설
제이 파리니 지음, 전혜림 옮김 / 솔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사무실을 오고 가며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을 읽었다.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문학연구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제이 파리니에게 주어진 자료는 게르숌 솔렘의 <한 우정의 역사>와 벤야민의 편지, 아샤 라시스의 회고록, 그리고 벤야민과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리사 피트코와의 인터뷰 정도가 전부다. 이 재료들은 벤야민의 여정을 중심으로 짜이면서, 게르숌 솔렘, 아샤 라시스, 리사 피트코, 마담 루이스(그녀는 벤야민이 자살한 스페인 국경마을 포르부의 호텔 여주인이다)의 입으로 다시 태어나 벤야민의 삶을 증언한다. 저자는 이 부실한 자료를 가지고도 벤야민의 삶과 사랑을 정교하게 짜여진 직물처럼 아주 잘 직조해 놓았다. 벤야민이 파리를 떠나 피레네 산맥의 시골 호텔에서 모르핀으로 자살할 때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누가 벤야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건네줘도 좋을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니 마드리드행 급행열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진 벤야민의 마지막 원고뭉치가 눈에 밟힌다. 사라진 책은 몇가지 단서와 추론을 뒤로 한 채 신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가득했던 파피루스 책들이 그러했고, 에코가 자기 소설의 재료로 써버린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그러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남아있다면 일본의 <만엽집>이 부럽지 않았을 <삼대목>도 그런 운명이다.(한국의 고대 시가가 절간 언저리에서 쓰여진 몇 편으로 남아 있다는 건 비극이다. 문학적 기록을 보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혀 문화민족이 못된다.) 죽어가는 벤야민으로부터 원고뭉치가 든 서류가방을 부탁받은 꼬마 호세는 이 소설에서처럼 정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의 눈물을 흘렸을까. 한 명민하고 예민한 정신이 한땀 한땀 써내려간 원고에 담겨있을 ‘파사주 프로젝트’는, 그 뒤 서너 명의 학자에 의해 다시 쓰여지긴 했어도 그건 벤야민 에피고넨들의 작품일 뿐이다.

발터 벤야민은 1892년에 태어나 1940년 만 48세로 죽었다. 1942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은 김현과 똑같은 나이에 죽었으니 때 이른 죽음은 아니다. 그가 남긴 글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밖에 없는 사람이 남긴 기록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적다. 어떤 여자와도 성공적인 결합에 이르지 못했던 그의 부실한 연애처럼, 그가 남긴 기록은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미완성이고, 그나마도 단편적 에세이와 파편화된 이미지로 그쳐 있다. 그러나, 이 짧고도 시적인 에세이들의 매혹은 아주 독한 것이어서 몇 번을 다시 읽어야 겨우 그 의미의 파편을 건질 수 있음에도 거듭 찾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는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와 같은 동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들의 글이 가진 건조함이거나 논리적 견고함이 느껴지질 않는다. 벤야민의 에세이는 주관적 감성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으며, 곳곳에서 낯선 이미지들이 돌출한다. 대학 시절 그의 ‘역사철학테제’를 읽으며 내 지적 능력의 빈곤을 자책하고 한탄했었다.

벤야민의 시적인 에세이가 그렇듯이 이 책에 쓰인 그의 삶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라고 나는 쓰고 싶다.) 부풀어 오른 곱슬머리, 동그란 안경, 투명하게 빛나지만 저편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눈, 그리고 그 눈에 스민 멜랑콜리, 작은 키에 볼록 튀어나온 배. 외모에서부터 섬약한 지식인의 아우라를 잔뜩 풍기는 그는 국경을 넘는 와중에도 괴테를 읽는 숙명적 독서가이며, 사랑고백을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말이 진부한 클리쉐(cliche)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의 우유부단함, 수집한 소묘 한점을 팔자는 제안에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지”라고 대답하는 부르주아적 예술취미, 그의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적 전망과 양립할 수 없는 소심함과 유약함, 맑스주의 변증법과 양립할 수 없는 카발라주의에 대한 심취,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나 볼 법한 깍듯한 예의와 완곡어법. 파리니의 글솜씨는 이런 벤야민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서 가장 밝게 빛난다.

비극적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찌질하고 찌질한 그의 연애사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랑 없이 결혼한 아내 도라, 사랑했으나 한번도 행복한 충만에 이르지 못한 아샤 라시스와의 연애, 그리고 또 한명의 정부이자 연인 율라 콘. 어느 누구와도 성공적인 연애를 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섹스마저도 그러했다. 이 소설에서 아샤 라시스는 모스크바 역에서 벤야민을 떠나보내고 나서 “참으로 지긋지긋한 남자”라고 말한다. 그 지긋지긋함은 그러나, 권태와 역겨움의 토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소리로 읽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똑같은 경험을 거듭거듭 반복할 것이다”라는 벤야민이 인용한 니체의 말대로, 그의 참담한 연애는 벤야민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니, 그에게는 찌질한 연애가 운명이라고 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뛰어난 철학적 정신을 소유한 지성인들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문제에 도달하면 모두들 서로가 서로에게 저능아처럼 말한다.” 그가 사랑에 저능아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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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1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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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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