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자본주의 - 금융위기가 왜 발생했으며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스베르너 진 지음, 이헌대 옮김 / 에코피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의식적인 노력없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에 넘쳐나는 중국산 물품을 보거나 홍어집에 우리와 거의 대척점에 가까이 가 있는 칠레산이 넘치더라도, 이런 물품들이 경유해왔을 멀고 먼 길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한다. 현실의 변화에 둔감한 탓이다. 하물며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더더욱 내 현실적 삶의 실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무렵에는 마침 뉴욕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거리에 나뒹구는 신문에 큼지막한 글씨로 ‘bailout'이라 쓰여져 있었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어쩌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충격을 가장 덜 받는 곳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카지노 자본주의>(한스베르너 진, 에코피아)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금융위기에 대한 지젝의 책을 사 놓고도 몇 달 째 2장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마당에 익숙하지 않는 금융용어가 무수히 튀어나오는 책을 자발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저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 혹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들’은 결국 따지고 보면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낳은 부정적 유산들일 것이다. 금융권의 억대 연봉자들은 그들의 고액 연봉이 자신들의 능력에 따른 것인 줄 알지만, 기실 그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가져온 과실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내 둔감함에 약간의 충격을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월러스틴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근대 이전의 사회가 훨씬 더 행복하고 풍요로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아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근대 사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곡물생산량은 차고 넘치는 데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부조리한 현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세계시장’을 언급했을 때 이미 그런 징조는 있었다. 한스베르너 진이 묘사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네트워크는 아슬아슬하고 부서지기 쉬운 유리로 만들어진 그물망처럼 보인다. 특정 국가의 재정위기는 금새 이웃나라로, 역내 경제권 전체로, 급기야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엊그제 보도된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위기는 이미 시한폭탄인 듯 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 듯한데, 저자는 그때의 위기가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위기라고 평가한다. 1929년 10월 24일의 ‘검은 목요일’에는 주가가 10.1% 하락했지만 2008년 10월 10일 ‘검은 금요일’에는 전세계에서 주가가 18.2% 하락했다. 백 개 이상의 미국, 영국 금융기관이 사라지거나 국유화됐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 세계 최대의 수출국가는 독일에서 중국이 됐고, 이 거대한 나라는 “위기에서의 거대한 승리자”로 떠올랐다. G8에서 G20으로 서둘러 국제공조가 시작된 것은 위기로 인한 전세계 경제의 파국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던 것이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기, 미중간의 환율전쟁 등 여전히 불안정성은 남아 있는 듯하다.

저자가 분석하는 금융위기의 전개과정은, 내 둔한 이해력으로는, 상식적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위기의 출발지는 미국이다. 주택담보대출에 근거한 분에 넘치는 미국인들의 생활, 자본수입에 의존하는 미국의 재정위기, 끊임없이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월가와 미국의 투자은행들. 부실대출 채권이라는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서 와르르 무너졌고, 이것의 충격파는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그중 금융자본에 대한 개방성이 가장 컸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영국 같은 나라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스베르너 진은 은행도산 과정, 도박장이 된 메인스트리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버리고 감독기능도 수행하지 못했던 정부부문의 정책적 실패 과정 등을 통계와 수치와 나로서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용어들로 풀어낸다. 망해가는 나라들의 목록의 상위에는 일본,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벨기에, 미국, 캐나다, 헝가리, 포르투갈, 프랑스가 있고, 하위에는 에스토니아, 룩셈부르크, 부가리아, 호주, 루마니아, 뉴질랜드, 리투아니아, 한국이 있다. 우리가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래도 위안이라고 할까.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잠재적 위협이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인은 이탈리아로, 유럽인은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될 것이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독일식 ‘질서 자유주의’인데, 이는 정부가 게임 규칙을 정해야만 시장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제이의 경제정책을 설명할 때 등장했던 이 용어를 나는  거의 10여년 만에 다시 접하게 됐다. 이른바 디제이노믹스의 요체는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근대경제의 핵심으로서)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근대적 과제’로 이해되었고, 시장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과제로 이해되었다. 창비식으로 말해, 그것은 근대와 탈근대의 이중과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이것이 오독인지 아닌지 나는 판단할 길이 없다.) 그런데,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에 다시 “시장의 자율규제와 같은 것은 없다. 국가가 정한 확고한 규제의 틀 내에서의 자율질서만이 존재할 따름이다”와 같은 진단이 등장하다니, 격세지감이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저물어가는 미국의 경제적 패권, 그리고 일본의 경제적 몰락을 수치와 통계로 확인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에 실린 월러스틴의 인터뷰를 보아도 미국의 몰락은 불가피한 것 같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01116114742&Section=05)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가 여기저기에서 돌멩이를 맞고 쓸쓸히 빈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이런 위기의 근본에는 저자가 말하는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초래하는 부실한 금융시스템이 도사리고 있다. 잘 나갈 때 돈은 금융업자들이 챙기고, 망할 때는 국가와 납세자들이 부담을 져야 하는 이 부조리한 ‘욕망과 책임의 불일치’의 상황.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 같지 않은가. 전성인 교수의 말을 빌자면, “재주는 곰이 넘고 실속은 왕서방이 챙기는 구조” 말이다. 조선일보는 ‘참 나쁜 신문’이지만, 송희영 칼럼은 가끔이라도 이 신문을 들춰보게 만든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1/20101001018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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