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이 진화하는 방식 - Copy Connect Cyberspace
임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앨빈 토플러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래학’으로 분류되는 그의 저술은 대부분 현상기술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어법은 지금 세계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그 변혁은 불가역적인 대세다, 라는 식이다. 그같은 현상기술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과도하게 특권화하는 보수적 전망인 경우가 많다. 유토피아적 전망과 디스토피아적 불안이 뒤섞여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낙관론이다. 이는 애시당초 내가 미래학이라는 접근방법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과학은 자신의 방법론을 통하여 가능한 미래를 예측하는 법이거늘, 이 외에 무슨 다른 미래학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임문영의 <디지털세상이 진화하는 방식>(교보문고)을 하루 만에 짬짬이 뚝딱 읽었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진화방식을 현장에서 길어 올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매끄럽게 정리한 책이다. 그가 취하는 방식도 말하자면 토플러주의다. 한국의 인터넷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기술’하고 ‘해석’하면서 조만간 도래할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토플러를 싫어하지만 이 책 저자에 대한 애정은 철회(?)할 수 없으니 앞으로는 토플러주의를 좋아해야 하나. 아니, 임문영은 '기술'의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그 기술의 중심에 놓인 인간,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현상기술적 토플러주의와는 다를 지도 모르겠다.

임문영은 인터넷 세상을 복제와 연결, 개방과 성장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컴퓨터의 복제본능에서 비롯된 인터넷 세상의 무한 복제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세계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 열려 있음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공간. 시뮬라크르가 만들어내는 지속적 성장. 그의 설명과 해석은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다. 그 바쁜 와중에 언제 읽었나 싶은 과학, 사회학, 철학 등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면서 이 요령부득의 세계를 깔끔하고 요령있게 설명해 낸다. 피에르 레비 같은 이분야의 이론가들 책과 다른 것은 디지털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과도한 추상성에서 벗어나 한국적 현실에 바탕을 둔  긴장감 넘치는 서술이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 인터넷의 역사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저자는 PC통신 시대를 열었던 한국경제신문의 케텔부터 시작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ADSL, imbc 등을 두루 거치면서 인터넷 기업의 역사와 부침을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인물이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귀에 익숙한 모뎀의 ‘찌이익 칙’하는 소리를 회고하고 PC통신 시절의 대화방, 상퀴방, 문퀴방들을 떠올리게 된다. 야후에서 다음, 네이버로 이어지는 인터넷 패권의 이면도 재미있다. 한전과 도로공사, 대한송유관 공사의 망 사업 진출 과정, 골드뱅크의 성공과 몰락 등도 새로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저자가 당시 바로 그 치열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생생한 서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정치적 아이콘이 된 ‘386’은 카페 이름이었다거나 전길남, 이규행, 남궁석, 박현제 등이 인터넷 진화과정에서 했던 역할을 알게 된 것도 가외의 소득이다.(업계 관계자는 다 아는 사실일 것이나, 나에게는 새로운 사실이므로)

저자가 올드미디어의 미래를 논하는 대목은 침몰직전의 타이타닉을 보는 심정이다. 2000년을 전후하여 올드미디어 진영의 언론사들이 닷컴 자회사를 차렸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회사였던 것. <뉴스위크>가 망하고 <FT>가 오프라인 신문사업을 접는 마당에 이들은 기존의 올드미디어를 완강하게 고수한다. 빙하기 공룡이 보여주는 어찌할 수 없는 보수적 생존방식. “달라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음에도, 언론사들의 인터넷에 대한 접근방식은 크게 변화가 없다.” 이 대목은 저자가 올드미디어 기업의 한복판에서 겪은 '피로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아마 이들 기업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변화가 종편 채널일텐데, 뉴미디어의 도전을 또하나의 올드미디어를 추가함으로써 돌파하려는 이 무모한 시도는 자신들의 종말을 재촉하는 무덤이 될 것이다.

디지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커뮤니티 육성 전략이 필요한데, 거기에는 요리사이거나 경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원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이 놀판을 닦아주며 배려하는 것. 일방적 공급자여서는 망한다. 네티즌 무서워할 줄 알라는 이 전언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주 절실한 대목이다. 결국 공공부문이 주력해야할 것도 규제와 통제가 아니라 그런 ‘판’을 통한 인터넷 거버넌스의 구축이 아닐 것인가. 물론, ‘인터넷 공포’에 벌벌 떠는 관료(특히 요즘의 관료들)들이 집단서식하는 마당에 이는 가당치도 않은 기대일 것이다.

스마트폰의 미래에 대한 설명 ; 스마트폰은 1) 장소의 편의성 2) 강력한 개인성 3) 위치라는 좌표값의 추가 등의 서비스가 가능해졌으며 앞으로는 이동통신의 지배력과 장악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 손 안에 쥘 수 있는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흡수되면서 소프트웨어는 앱스토어 시장으로 변화하게 될 것. 디지털 전쟁의 이후 전망 ; 블록전쟁의 도래(애플등의 디바이스 중심 VS. 구글 등 서비스 중심), 규모의 싸움에서 영리한 싸움으로(대형 포털은 분산화된 서비스로 해체 재구성), 연결의 확장과 심화. 나같은 문외한으로서는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었다.

결론은? “창의적 변화야말로 인터넷 시대가 갖추어야할 최고의 핵심역량이다”라는 것. 다소 허망할 수 있으나 결국 창의성일 수밖에 없나 보다. 그런데, 그 창의성은 거대 조직이거나 대학에서 나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 스티브 워즈니악, 제프 베이조스 등 디지털 세상의 주역들은 어째 죄다 ‘차고’에서 시작하고,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스티브 잡스, 앤디 그로브는 죄다 ‘중퇴자’란 말인가. 미국 차고는 널찍하고 한국 차고는 좁아서 그런가. 미국 중퇴자와 달리, 한국 중퇴자는 온갖 비난과 편견에 시달리며 ‘사람’ 취급도 못 받아서 그런가. 한국 인터넷 주역들이 죄다 명문대에 관련학과 졸업자라는 건 참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리 글을 잘 쓰는 건가. 이건 괜한 ‘주례사’가 아니다. 문장은 매끄럽고 깔끔한데다 아주 정확한 한국어 문장이다. IT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건가. IT 전문가가 아니라 글쟁이로서의 임문영을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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