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은 백혈병으로 연인과 이별한다. 뒤마의 로맨스 소설 ‘춘희’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결핵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들은 왜 항상 ‘불치병’으로 최후를 맞이할까. 미국의 근본주의 목회자인 제리 폴웰은 “에이즈는 신이 자신의 법도대로 살지 않는 사회에 가한 심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질병은 그저 질병일 따름인데, 인류는 때로 질병을 낭만화하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극우 선동가 장 마리 르펜이 정적들을 일컬어 ‘에이즈 같은’(sidatique)이라 외치는 걸 보면 때론 질병 그 자체보다 그를 둘러싼 소문과 은유들이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수잔 손택은 결핵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도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문필가다. 미국 펜클럽 회장으로 한국을 방문해 구속문인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던 그녀는 극작가·영화감독·소설가·문화비평가·사회운동가 등 전방위 문화활동가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그녀 자신의 체험에서 길어올린 성찰을 바탕으로 질병에 얽힌 신화와 은유들을 해부하는 독특한 에세이다. 그녀의 관심은 결핵·매독·역병·에이즈 등 인류사와 함께 변천해온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질병이라는 왕국의 지형을 둘러싸고 날조되는 가혹하면서도 감상적인 환상”이다.

질병은 언제 어디서든 형태를 달리하면서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질병을 묘사하고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결핵은 빈곤과 결핍의 이미지를 지녔다. 18, 19세기의 문학에서 결핵은 창백한 외모를 지녔으나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과 함께 등장한다. 건강한 사람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천박한 사람이다. 가령 프랑스의 유미주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나는 어렸을 적에 99파운드(약 45kg)이상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서정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시인이란 모름지기 폐결핵에 걸려 있거나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결핵이 문학을 통해 ‘낭만화’되었다면, 암은 정반대다. 암은 미화될 수 없고 파괴돼야 할 절대악이다. 그래서 암에는 항상 전쟁의 수사학이 따라다닌다. 우리 몸을 ‘침략’하고 있는 암은 ‘전쟁’을 통해 ‘발본적으로’ ‘정복’돼야 한다. 매독에는 항상 수치와 도덕적 단죄라는 의미가 붙어다닌다. 에이즈는 한술 더 뜬다. 에이즈는 ‘종말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에이즈공포증(aidsphobia)을 유포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타락의 결과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도래했다고 분노한다.

손택은 질병에 덧씌워진 은유들을 까발리면서 그것에 내포된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정치학’을 폭로한다. 그녀가 이같은 수고를 자처한 이유는 질병의 은유가 국가와 시민사회, 나아가 전 인류가 절망적 위기에 처했다는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 은유들은 독재자의 선동술로 쓰이기도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고 설파한 바 있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는 ‘암’과 동일시돼 왔다.

질병의 은유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배제의 수사학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손택이 보기에 그것은 자비와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훼손한다. 한편으로 금욕주의라는 문화적 퇴행을 부추기기도 하고, 국가기구를 동원해 개인의 신체를 ‘관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질병 자체에서 이런 의미와 은유들을 떼어내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우리에게 위안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질병에서 신화와 은유를 벗겨내려는 손택의 작업은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그녀의 독특한 비평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다. 환자의 고통은, 질병 그 자체의 고통도 있지만, 질병에 씌워진 무수한 은유적 해석들-수치심·편견·범죄 혹은 죄악시하는 태도-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질병의 은유를 벗겨내 ‘투명하게’ 질병과 대면하는 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현대는 수사학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다.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의 저서를 통해 강조하는 ‘투명성’은 온갖 현란한 이미지들을 걷어내고, 사물 자체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잔 손택은 이미지와 수사의 층위를 걷어내고 사물의 원형을 찾아가는 ‘현대의 고고학자’인 셈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레바리 2011-07-2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해 1월 22일에 별세하신 박완서 선생은 병명이 담낭암이셨다는데, 갑작스럽게 가신 것이 마치 암의 은유가 육신을 추하게 범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 하신 것만 같습니다. 암튼 손택의 이 책은 이제 일반인과 전문인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어엿한 고전이 돼 있는 듯 하네요..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라는 책이나 소설까지 쓴걸 보면, 관심의 폭이 매우 넓은 해박하고 유연한 지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사이 2011-07-3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택 책 가운데 가장 처음 번역된 게 아마 <사진이야기>가 아닌가 하는데, 그 뒤로 대표작들이 대부분 번역 소개된 것 같습니다. 이 리뷰는 책이 나왔을 무렵에 쓴 리뷰인데... 아래 고고학 운운한 걸 두고 푸코를 잘못 읽었네 어쩌네 하던 사람이 기억나네요.. ㅎㅎ

트레바리 2011-08-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코의 고고학에서도 '언어'의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고, 언어라는 것이 결국 "은유의 무리들"(니체)이라면, 손택 여사의 작업도 푸코와 공유하는 면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푸코의 선행 작업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 때문에 손택의 책이 빛바래지는 않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