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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러브 -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
메이브 빈치 지음, 정현종 옮김, various artists 사진 / 이레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을 실어 나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육체다. 나와 타자의 관계를 숙고했던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애무 속에서의 타인을 위한 자아”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을 역설한 것이다. 말은 공중에 흩어져 순식간에 날아갈 뿐이지만, 그의 손길은 내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남자와 여자의 에로스만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도 ‘애무’는 친밀함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육체적 행위다.
사진작가 지오프 블랙웰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1999년 뉴질랜드의 한 출판사와 손잡고 ‘M.I.L.K.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Moment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친밀감과 웃음, 가족애의 순간들)의 약자로 전세계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공모전의 이름이다. 전세계 1백64개국에서 1만7천여명의 사진작가들이 출품한 4만여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러브 :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는 이 프로젝트에 공모한 사진들중 ‘사랑’에 관한 것을 모은 사진집이다. M.I.L.K. 프로젝트를 통해 펴낸 세권의 사진집중 두번째 책으로, 다른 둘은 제각기 ‘Friendship’·‘Family’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마지막 권인 ‘Family’도 1월중 출간될 예정이다.
‘러브…’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의 순간들을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춘기에도 이르지 않은 두 소년 소녀가 서로를 눈으로 ‘애무’하고 있는 사진 밑에는 “그토록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인 첫사랑을 어떻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쓰여 있다. 과학자도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을 거두고 사랑 앞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법. 복잡한 거리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아래)에게 풍기문란의 죄를 묻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기의 세 시선이 교차하는 사진(오른쪽 아래)은 또 어떤가. 이 3대를 잇는 사랑이라는 끈 앞에서 그들의 행복을 잠시 질투해도 좋을 것이다. 쭈글쭈글한 두 노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바다를 향해 걷는 사진(오른쪽 위) 옆에 붙은 “당신을 사랑하리. 내 사랑/당신을 사랑하리/중국과 아프리카가 만나고/강물이 산으로 오르며/연어가 거리에서 노래할 때까지”라는 영국 시인 W.H.오든의 시구는 차라리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내가 병상의 남편에게 점자책을 더듬으며 읽어주는 사진에선 보이지 않되 보이는 것은 아내의 목소리에 필시 담겨 있을 축축하고 곡진한 애정이다.
‘러브…’에 실린 1백장의 사진들은 친밀감·웃음·가족애라는 소제목을 달고 배치돼 있지만 그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오히려 ‘애무’라 할 만하다. 사진들은 바다의 동과 서, 땅의 이쪽과 저쪽에서 보내온 것들로 거기엔 백인종과 흑인종, 황인종이 뒤섞여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육체성’임을 잔잔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부단한 애무를 통해 사랑을 키워간다는 메시지다.
이 사진집을 집어 든다면 책 뒷날개에 붙은, 역자인 시인 정현종의 말을 기억하자. “그 감정과 욕망의 순간적인 표정들은 아주 진실해서, 사진 안쪽은 참되고 사진 바깥쪽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게 모두 우리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니.” 그러므로 행복은 사진 속에만 있지 않고 ‘바깥쪽’에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독자에게도 현현할 터, 그 지복의 순간을 경험해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사진이 영혼을 빼앗아 간다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속설은 아무래도 진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