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 삼인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의 정치문명’은 미국 외교와 정치문화에 깃들여 있는 ‘미국 정치의 정신사’를 탐색하는 저작이다. 그동안 미국 정치와 관련된 국내 저작들은 대부분 ‘선진적인 제도’라는 이유로 앞다투어 미국 선거제도와 정치행태를 소개해 왔다. 미국 외교사를 전공한 저자 권용립 교수는 이같은 행태가 “미국 정부를 선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그는 미국의 정치적 담론과 거기 스민 세계관·역사관을 해부하는 포괄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유럽 문화로부터 문명적 자양분을 공급받은 미국은 독립 이후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이 1830년대 잭슨 민주주의 시대에 미국을 여행한 뒤 펴낸 ‘미국의 민주주의’ 이후, 미국 연구가들이 취한 관점은 미국의 ‘예외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미국적 가치’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이 정의 내리고 있는 ‘자유’다. 저자는 “근대 영국이나 프랑스의 ‘자유’가 시간적 타자, 즉 과거에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봉건제 같은 과거 유산이 없는 미국에서의 ‘자유’는 공간적 타자, 즉 미국의 외부나 미국의 적을 부정하고 또 징벌하는 내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왜 그토록 ‘불량국가’의 단죄에 집착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자유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자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저자가 취하고 있는 ‘정치문명’이라는 관점은 미국 정치의 이데올로기 분석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문명이란 “집단으로서의 미국을 미국이게끔 만드는 정신”으로 건국이래 현재까지도 관류하고 있는 미국의 집단정신을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정치문명의 뿌리로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는 고대 공화주의, 개인의 자유에 집착하는 근대 자유주의,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칼뱅주의, 세가지를 지적한다.

이 세 담론이 뒤섞여 미국의 독특한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독교 전통 속에서 서서히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져갔다면, 미국은 반대로 정치이념과 국가를 먼저 설계해 놓고 그 이후에 여러 인종을 받아들여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광신적 애국주의같은 미국인들의 독특한 정치적 응집력과 ‘미국은 특별한 나라’라는 신화, 외교상의 절대적 선악관념과 십자군적 사명감도 거기서 비롯한다.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임박해 있고,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독선과 좌충우돌은 역사상의 돌출이 아니라 미국사 2백년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 정치의 뿌리를 만져보는 경험, 그게 이 책의 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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