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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충고 - 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김영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가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은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다. 리프먼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여론’이 기실 대중들의 주관적인 이미지이거나 정형화된 견해(stereo type)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진실과 뉴스는 동일하지 않다”고 믿는 그는 자신의 칼럼 ‘오늘과 내일’을 통해 사실 ‘너머’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김영희 대기자는 리프먼을 “복잡한 현상을 지성화하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한다. 얽히고설킨 사실들의 세계를 배회하며 ‘밀과 쭉정이’를 구분해내는 것, 그것이 리프먼의 에피고넨(아류)을 자처하는 김영희 대기자 스스로가 규정한 역할이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는 현역 기자로 40여년의 세월을 보낸 국내 언론사의 1호 대기자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집이다. 1998년 5월부터 매주 수요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됐던 ‘투데이’ 칼럼을 모은 것이다. 한국 근대사 1백년이 늘 그랬듯이 그의 칼럼이 연재됐던 5년여 세월도 유난히 험난했다. 그 세월동안 그는 권력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권력의 도덕성 부재를 질타하고, 국제현실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해 왔다. 그의 칼럼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자극하는 좁쌀정치”에 보내는 일침이다. 그는 스스로 마키아벨리가 되어 정치인에게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맹”을 촉구한다.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은 국제정치적 시야에서 국내문제를 다룰 때 가장 빛이 난다. 그의 리얼리즘이 가장 뛰어난 예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에게 성급한 이상론과 낙관론은 회의와 경계의 대상이다. 그는 미·일·중·러의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여전히 분단의 장벽이 드높은 한반도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감각이라고 본다. 가령, 그는 햇볕정책에 대해 “남북문제는 남북끼리 푸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냉전 이후 슈퍼 파워로 홀로 남은 미국과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지적한다. 설사 민족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눈으로 한반도의 현실을 가리킨다.
그의 리얼리즘은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숲을 보면서 나무를 다투라”는 그의 훈수는 국제적 현실감각을 키우라는 주문이다. 그의 시각은 국제정치를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된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정의한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그것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역사는 해결가능한 문제만을 인간에게 던져준다면, 김영희 대기자의 글은 바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 일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노회한 리얼리스트의 시각이 갖는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