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당대의 유학을 이렇게 질타한다. “참된 선비의 학문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오랑캐를 물리치며 나라의 경제를 넉넉하게 하고, 문(文)과 무(武)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에 해당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어찌 옛 사람의 문구를 따서 글이나 짓고, 벌레나 물고기 등에 주석이나 하면서 소매 넓은 옷을 입고 예모만을 익히는 것이 학문이겠는가.” 다산에게 당대의 유학은 관념과 명분에 사로잡혀 경세학의 본분을 망각한 사이비 학문에 불과했다. 다산을 사숙하다 한국 근대사상과 근대사 연구로 나아간 재일 사학자 강재언 역시 정약용의 시각을 빌려 한국 유학사를 조망한다.

이 책은 기자조선에서 시작해 개화기의 개신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유학 2천년을 정리하고 있는 ‘한국 유학 통사’다. 저자가 한 잡지에 ‘조선 유교의 에토스’라는 제목으로 3년 동안 연재한 시리즈를 묶은 것으로 중국 유학의 전래과정,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에서 활짝 피었던 한국 유학을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조선 유학의 최대 논쟁점인 ‘이기론’ 등 유학의 교리와 이론적 계보보다는 당대의 유학이 거처한 사회사적 토대와 배경에 더 주목하고 있다.

정약용이 현실과 유리된 유학의 도학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듯이, 저자는 조선조 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도학정치의 우상인 조광조 등을 매섭게 비판한다. ‘부국강병’보다 ‘인의지도’(仁義之道)를 강조한 조광조의 시각은 허망한 교리논쟁으로 잘못 나아갔다는 것이다. ‘예송논쟁’을 일으켰던 송시열은 유학을 ‘교조화’시킨 인물로 비판받고, 그의 북벌론은 당시 중국의 군사력에 비추어볼 때, ‘인종적 편견’에 가까운 폭론이라고 지적한다. 대신 그는 유학의 실용과 경세적 측면을 부각시켜 정도전·광해군·신숙주 등의 복권을 시도한다. 저자가 고려의 무인정권 시대를 문화의 암흑기가 아닌 외세의 침략에 대항해 국권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시각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유학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는 데 있다. 유학은 관념적인 학문이 아니라, 당대 사회와 긴밀히 연관된 사회사상적 체계라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저술의 출발점이 “각 시대의 역사적 과제들에 유자(儒者)들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맞섰는가”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배계급과 전통, 사림파 중심의 유학을 거부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치세의 학문으로 유학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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