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셋째주 구입 도서 목록. 요즘 가끔 방문하는 효자동 헌책방 가가린에 산 헌책, 그리고 교보문고와 알라딘에서 산 새 책들. 우선 새 책, 한강이 오랜만에 펴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 지성사)과 그녀의 에세이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 그녀의 소설은 여전히, 아직도, 고통과 절망과 바닥을 알 수 없는 삶의 얼룩과 비의를 말하고 있을까. 또 예술가를 등장시켜 어둡고 우울한, 어쩌면 칙칙한 세계를 말하고 있을까. 개인의 내면으로, 비극적 가족사로 환원되는 고통의 내력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에세이집은 아이오와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경험을 쓴 것인데, 눈밝고 부지런한 작가들은 어떻게 이 프로그램만 갔다오면 죄다 에세이 한 권 씩을 쏟아내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한강의 재능들을 발견하는 재미. 그녀는 시와 소설에 이어 작곡과 연주를 하더니만, 이 책에서는 프로수준의 크로키까지 선보인다. 소설가는 글쓰는 것 외에는 다른 재주가 없어야 명작이 나온다는데, 이 친구는 왜 이리 재주가 많은지.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민음사)는 이 작자의 본격 작품은 처음이라서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궁금해서 샀다. 브르통의 ‘작품’은 별로 번역이 안된 것 같은데, 대중성이 떨어져서인가, 아님 지나치게 전위적이어서인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문학과 지성사)는  내가 좋아하는 스펙트럼 시리즈로 나왔는데, 루소에 대한 토도로프의 주석쯤 될 것 같다. 이제 껏 문학이론가, 서사학자로만 알고 있던 토도로프였는데, 정치철학도 나름 섭렵했던 모양이다. 유럽의 변방 불가리아 출신들이 이렇게 잘나가는 거 보면, 그들이 평지돌출이어서가 아니라, 나름 합스부르크 제국의 문화적 후광이 그만큼 커서 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토도로프에 이어 또하나의 잘 난 불가리아 출신 작가. 헌책방에서 산 <비잔틴 살인사건>(소담)도 유럽 변방 불가리아 출신 비평가 크리스테바의 작품. 남편 필립 솔레르스도 소설 깨나 썼는데, 마누라인 이 여자의 소설만도 <사무라이들>(솔),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민음사)에 이어 이 책이 세 번째로 번역된 모양이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인데, 추리/미스터리 장르로 분류될 이런 소설을 크리스테바가 썼다니, 의외의 수확이었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동문선)은 헌책방에서 보이길래 샀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나 그저 소장용으로 샀다. 대학원 시절, 교수가 계속 비코의 중요성을 떠들어 댔었는데, 그는 과연 책을 읽기나 하고 떠들었을까. <한국의 민화> 역시 소장용으로 샀다. 한때 조갑제가 편집장으로 있던 80년대 잡지의 양대산맥인 ‘마당’에서 나온 책. 요즘 헌책방에 가면 이런 ‘그림책’들에 눈이 간다. 책꽂이에 꽂아두고 아무 때나 펼쳐 읽을 수 있는 그림책들. 민화/민속품 하면 야나기 무네요시일텐데, 민화가 재발견된 것은 그의 유산인지, 아니면 60년대 이래의 민족주의 문화연구의 영향 탓인지.

2월과 3월에 걸쳐 펼쳐 놓고 일부 혹은 절반, 혹은 거의 읽었으나 아직 끝마치지 못한 책들. <창작과 비평>(2010년 봄호), <마음의 사회학>(김홍중, 문학동네),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김종대, 나무와 숲), <스토리텔링>(크리스티앙 살몽, 현실문화연구), <여론>(월터 리프만, 현대사상사),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오카모토 다카시, 소와당),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안병길, 동녘), <사회계약론>(루소, 박영사). 리뷰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책은 김종대의 책과 오카모토의 책. 김종대의 책은 참여정부 인사들이 써낸 책중 가장 중요한, 그리고 노무현의 ‘진실’을 가장 잘 증언하고 있는 책일 것이다. 잠들기 전 책을 읽고 있는데, 책장을 넘길때 마다 탄식과 분노, 아쉬움과 허무함을 떨칠 수 없다. 다 끝내지 못하고 다시 내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볼 때마다 나는 엄청난 부채감을 느낀다.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이거늘, 이 마음의 소리는 왜 이리 강박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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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3-2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승자 시인도 아이오와 갔다 와서 에세이집 냈죠
세계사에서 '어떤 나무들은' 이라고.
서울서나 아이오와에서나 생활은 똑같았다는 시인의 말에
외국만 나가면 뭐도 보고 뭐도 해야만 하는 부류와
'참 많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죠.
뭐, 사실 외국 나간다는 게 장소 바꿔가며 술 먹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이 책 보다 들게 됐고.

노이에자이트 2010-04-0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터 리프만<여론>은 헌책입니까? 현대사상사 판이 지금도 서점에 나오나요?

모든사이 2010-04-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프만의 책은 당연히 헌책이지요. 오래전에 구한 책인데, 이제야 읽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현대사상사라는 출판사가 꽤 좋은 책이 많습니다.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의 <지성사의 전개>나 신학자 하비 콕스의 <바보제> 같은 책들 말입니다. 현대사상사판 리프만 책을 아시는 것을 보니, 노이에자이트님의 연세도 조금 되시는 모양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0-04-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한 10년 전 광주 헌책방에 현대사상사 책이 열권 정도 무더기로 나왔길래 그때 알게 되었어요.제가 보는 책으로만 나이를 짐작하시면 70세가 넘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걸요.헌책방에서 구한 60~70년대 세로줄의 국한문 혼용체 책도 꽤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현대사상사 책들은 10년 전까지 기독교 서점에도 있었구요.새 책은 거의 안 삽니다.

모든사이 2010-04-0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본의아니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 역시 60년대 대학생 쯤 되는데 말입니다. 너그러이..

노이에자이트 2010-04-0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헌책을 많이 읽으면 그럴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