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조제프 푸셰’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2007년 대선 무렵일 것이다. 17대 대선이 한나라당의 경선으로 ‘사실상’ 끝이 나고 정권교체가 명백해지던 무렵, 나는 푸셰와 그의 정치적 삶을 떠올렸다. 권력변동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자들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는 베버적 의미의 ‘영혼부재의 관료론’이 언론의 비아냥 속에 오르내리면서 실존적으로 떠올리게 된 질문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책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한길사, 1998)을 찾게 된 내력도 그러하다. 푸셰의 삶을 뒤따라간다는 것은 권력교체기에 불가피하게 ‘정치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들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시골교사에서 급진 자코뱅 당원으로, 다시 왕당파로, 나폴레옹의 최측근으로, 복귀한 루이 18세의 경무대신으로, 실로 현기증 나는 배반과 변신을 보여준 이 정치적 인간의 한 생애는, 5년 주기로 사람 하나 바뀌는 것일 뿐(?)인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치적 운명’에 대해 던지는 의미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츠바이크의 푸셰 평전에 손이 가질 않았다. 왜 그랬을까. 200여 년 전에 등장하고 사라진 한 인물의 삶을 읽어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 것인가. 이게 무슨 자본론도 아니고, 읽기 버거운 요즘의 철학서도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서구 인문주의의 적자이자 그 세례를 듬뿍 받은 츠바이크의 저작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왜 나는 이 책을 선뜻 펼치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당대의 내 삶과 일을 스스로 정당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적 지배질서와 오랫동안 섞이지 못했던 개인적 이력도 그렇거니와 지금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퇴행성에 생래적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이미 스스로 퇴행의 일원이 되어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자기모순. 박권일의 말을 빌어 ‘먹고사니즘’으로 손쉽게 합리화하기에는 내 안의 ‘정치사회적 우울증’이 이미 중증이었다.


Joseph Fouche(1759-1820)
조제프 푸셰는 1759년 5월 30일 프랑스의 낭트에서 선원이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820년 12월 26일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죽었다. 그의 60여년 생애는 프랑스 혁명과 그에 뒤이은 국민의회, 자코뱅 독재, 나폴레옹의 출현과 유럽의 전쟁, 나폴레옹의 몰락과 왕정복고라는, 인류사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세기 전환기의 한복판에서 모든 당파를 이끌었고, 이 세계 전환기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 남자”였다. 그의 혁명 동지들인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라마르틴도 죽고, 바라스 탈레랑 등의 재상들도 가고, 나폴레옹마저도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에서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쳤지만, 오직 한 사람, 푸셰만이 “배신자, 음모가, 파충류, 변절자, 비열한 경찰근성, 배덕한”의 정신과 기질로 살아남았다. 


그의 출발은 참으로 미미했다. 창백한 표정의 이 과묵한 사내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를 퀴퀴한 수도원에서 라틴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사제로 보냈다. 프랑스 혁명의 열기가 수도원의 담을 넘어오자 그는 정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수도복을 벗어버리고 ‘거리의 정치가’로 변모했다. 그런 노력으로 32세 때인 1792년 국민의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중앙의 정치무대에 등장한다. 그의 외모를 묘사하는 츠바이크의 필치는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 “거의 망령과 같이 뼈뿐인 말라붙은 육체, 모가 난 가느다란 얼굴, 그것은 흉하고 불쾌했다. 코는 날카롭고 언제나 다물고 있는 입도 날카롭고 좁다. 졸고 있는 듯한 무거운 두 눈은 생선 눈과 같이 차가왔다. 고양이 같은 회색의 동공은 유리알 같았다. 막 질병으로부터 벗어난 회복기의 환자 같다.”  외모로서 보자면, 그는 만화와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음모가와 사술(邪術) 전문가의 전형적 유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푸셰는 대세의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읽어내는데 능숙했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기술이다. 루이 16세에 대한 국민의회의 평결에서 그는 ‘대세’를 따라 국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대열에 줄을 섰다. 이념적 자코뱅이 아니라 처세로서의 자코뱅. 그에게는 “언제나 승리자 편에 있고, 결코 패배자 밑에는 남아 있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외적으로는 온건주의였지만 자신이 자코뱅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리옹에 국민의회의 파견의원이 되어 귀족과 왕당파를 처단하고, 교회와 신성을 파괴하는데 앞장선다. 부자의 재산을 박탈하고, 모든 시민은 전시에 애용되는 똑같은 빵을 먹어야 하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강요한다. 심지어는 수백 명의 인간을 모아 놓고 대포로 쏘아 죽이는 제노사이드도 서슴지 않았다. 푸셰가 파견된 이후 몇 주 동안 소도시 리옹에서 1천6백명이 학살된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자코뱅에 충성하고 있는 혁명의 충실한 주체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츠바이크는 그를 세계 최초의 볼세비키이자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보다 1백여년 앞선  ‘공산당 선언’의 기초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살의 책임문제가 거론되자 그는 돌연 태도를 바꿔 모든 책임을 함께 부임한 콜로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은 살아 남는다. 뱀처럼 교활하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두 번의 걸쳐 반복된 푸셰 자신의 운명을 건 정치적 대결이다. 그 첫째 상대자는 로베스피에르이고, 두번째는 나폴레옹이다. 물론 두 번 모두 최후의 승자는 푸셰다. 푸셰를 탄핵하는 로베스피에르의 격정적 연설 : “이 세상에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민중에게 가르칠 사명을 누가 그대에게 부여하였는가. 우리들에게 공개하라. 모든 맹목적인 힘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때로는 미덕을, 때로는 악덕을 아주 우연히 두들겨 부수고 인간의 영혼은 무덤의 입구에서 소멸하는 연한 입김에 지나지 않는다고 민중에게 믿게 하는 선동에서 그대는 어떠한 이득이 있다고 보는가. 무고한 자들에게서 이성의 왕홀을 탈취해서 악한의 손에 넘겨주는 일을 그대는 어떠한 권리로 감히 행했던가. 그대는 자연의 모습에 수의를 걸어주고, 불행한 자들을 더욱더 절망케 하였다. 범죄자의 죄를 가볍게 해주고, 미덕을 암담하게 하고, 인류를 비천하게 했을 뿐이다. … 자연이 우리들에게 무 이외에 어떠한 아름다운 것도 보낼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경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범죄자일 따름이다.”(91p) 이 추상같은 연설이 주는 준엄함! 피가 튀고 살점이 난무하는 혁명의 와중에도, 인간의 목숨을 단두대가 선 형장으로 내보내는 무시무사한 탄핵연설에 동원되는 ‘정치담론의 수사학’은 이토록 우아하다.

급진 자코뱅 로베스피에르에게 푸셰는 하잘 것 없는 존재였으나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치면서 죽은 것은 오히려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충실한 심복 생쥐스트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격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푸셰는 온갖 음모와 술수로 로베스피에르의 친위대이자 혁명의 사령부인 ‘자코뱅 클럽’의 영수로 선출된다. (로베스피에르의 분노에 찬 토로, “푸셰, 네놈이 감히!”) 그 뒤 ‘청교도적 공화파’인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짓눌려 있던 국민의회 온건파의 반란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이게 테르미도르(프랑스 혁명력 제11월, 7월19일 ~ 8월 18일, 프랑스 혁명력은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 같은데서 다시 쓰여지고 있는데, 이 희한한 달력의 울림은,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나에게조차도 시적으로 느껴진다.) 9일에 벌어진 인류사적인 반동이다. 후일의 역사는 로베스피에르를 굵은 고딕체로 기록하지만, 현실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그가 아닌 푸셰다.

역사에서 간주곡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푸셰는 리옹의 학살 책임이 뒤늦게 문제되어 회색의 망명객으로, 화려한 국민의회 의원에서 가난한 평민으로 전락한다. 가난한 시골의 다락방에 살며 ‘돼지먹이’ 일로 겨우겨우 살아가던 푸셰는 당시의 권력자 바라스의 ‘밀정’이 되어 남이 하는 말을 엿듣고, 뒤를 캐는 일로 그의 신임을 얻는다. 그의 기질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이 스파이 짓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의 특기와 장점을 살리게 된다. 그 ‘실력’으로 당대의 권력자 바라스의 눈에 들어 하루아침에 맨 밑바닥에서 5인 집정내각하의 프랑스 공화국 경무대신으로 등극한다. 한국사회로 치자면 ‘경찰총장’이 된 그는 과거 자신에게 해꼬지를 한 자코뱅파를 처단하고, 해고하고, 감옥에 가두는 일에 혈안이 된다. 여기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 그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내어 출세를 시킨 바라스 역시 후일 푸셰에 의해 ‘추방’된다는 것. 츠바이크에 의하면 이는 “배은망덕에 대한 세계사적 교훈”을 실천한 것이다.

초라한 포병장교에서 쿠데타를 통해 일약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 나폴레옹은 푸셰의 과거와 음모가적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완전히 몰락시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주지도 않는 방식으로 푸셰의 목줄을 쥐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경무대신직에서 면직되고, 한직인 원로원 의원이 되어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지만, 대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건 바로 ‘돈’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사업수완으로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돈보다 더 달콤한 것은 권력이었다. 말하자면 권력중독자인 푸셰에게 돈의 세계보다 더 달콤한 것은 권력이었다 : “권력은 메두사의 눈을 갖고 있다. 한번 그 놈의 얼굴을 본 자는 그 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고, 언제까지나 정신이 홀려 사로잡혀 있게 된다. 한번 지배하고 명령하는 도취감을 맞본 사람은 결코 그 도취감을 단념할 수 없다. 세계 역사를 훑어보면 권력을 자진해서 단념한 실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181p)

종신집정관에서 황제를 꿈꾸던 나폴레옹과 다시 권력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푸셰의 욕망은 맞아 떨어졌다. “카이사르가 되려는 자는 안토니우스와 같은 자를 필요로 하는 법”. 푸셰는 나폴레옹에 의해 경무대신으로 다시 복귀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 둘 사이의 스파이질과 반대 스파이질은 교활해지고 추악해진다. 나폴레옹은 푸셰를 믿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오트란트 공작’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이 공작가문의 문장은 황금의 기둥 둘레를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 나폴레옹의 재치가 빛나는 대목이다. 푸셰가 나폴레옹과 싸워 이기는 순간은 푸셰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초기 프랑스를 구한 영웅에서 ‘황제가 된 이후’ 나폴레옹이 숙명처럼 안고 있던 전쟁광 기질이 빚은 참극이기도 하다. 엘바섬에 유배됐다 탈출한 나폴레옹에 의해 세 번째로 경무대신에 임명된 푸셰는 영국과 메테르니히 등 적대국가들과 은밀하게 거래를 벌였고, 결국 100일 천하를 이끌다 워털루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에게 결정적 타격을 안긴다. 재기를 꿈꿨던 나폴레옹은 루이18세를 옹립하여 왕정을 복고하려는 푸셰의 계획에 따라 서서히 침몰하다가 결국 반동의 물결에 의해 처단된 것. 최종 승자는 역시 푸셰였던 것. 그는 왕정복고를 위한 준비기간 동안에는 5인의 집정내각중 두명을 매수하여 5일동안 프랑스의 절대군주가 되기도 했다. 가난한 시골교사에서 경무대신, 오트란트 공작, 임시정부 의장으로 최고권력까지.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은 이렇게 외친다 : “나는 오직 한 사람, 참으로 완전무결한 배반자를 알았다. 그 사람은 푸셰다.”

츠바이크의 탁월한 점은 한 인물이 가진 복잡다단한 성격과 기질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복원하면서도 역사의 우연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적절히 통찰하고 배합할 줄 안다는 점이다. 푸셰의 몰락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이 푸셰의 추악한 과거를 잊거나 잊으려 했지만, 단 한사람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딸 앙굴렘 공작부인. 그녀는 푸셰가 자기 아버지 루이 16세에게 사형을 외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으며, 푸셰를 포함한 자코뱅들이 어머니와 부모의 친척, 친구들에게 한 짓을 아주 끔찍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 다시 재개된 왕정에서 루이 18세는 앙굴렘 공작부인이 가진 푸셰에 대한 미움을 핑계로 그를 외국으로 추방해 버린다. 이제 절대권력자에서 몰락한 푸셰는 한 때 친한 사이였던 유럽의 모든 실력자들에게 거부당하고, 오스트리아의 시골과 프라하를 거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죽었다.

츠바이크는 푸셰가 마지막이자 최초로 범한 우매한 짓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한다. 그게 몰락의 시작이었던 것. 다시 말해, “배반해야할 주군도 없는 푸셰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배반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배신과 배신의 배신, 배신의 배신의 배신으로 점철된 생애가 결국 마지막에 배신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츠바이크가 말하는 ‘정치적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적 삶의 숙명이 살아 움직이는 권력의 생리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것이라면 ‘배반’은 불가피하다. 영속적인 권력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 배반의 귀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온 자신의 역사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인간에게 ‘자기 성찰의 회로’가 존재한다면 그는 더 이상 정치적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성찰은 반성을 부르고, 반성은 정치적 생존과 비약을 위한 선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을 반복하는 회의주의자는 정치적 성공을 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이는 정치의 영역을 좁은 의미의 정치사회, 적어도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국한했을 경우다.

성찰의 결여와 더불어 푸셰가 진짜배기 ‘정치적 인간’이라는 점은 그가 가진 모든 음모의 기록, 공개되면 피바람이 불 모든 문서들과 편지들을 불태웠다는 점이다. “그토록 완고하게 과묵했던 사람은 무덤속에서조차 진실을 누설하지 않았다.” 행복한 망각을 선택함으로써 후대의 재평가를 통해 역사적으로 ‘재기’ 할 기회를 노렸던 것일까. 츠바이크는 “정치적 인간의 유형학”을 수립하려 했다지만, 이것은 유형학이라기보다 차라리 정치적 인간의 ‘생태학’이거나 ‘인류학’에 가깝다. 그것이 생태학이자 인류학인 까닭은 정치적 인간의 속성은 규모와 크기를 달리하여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배반’은 ‘변화의 수용’으로, ‘역사적 퇴행’은 ‘시대정신’으로, ‘존재에 대한 성찰’은 ‘(불가피한) 숙명에의 너그러운 수락’으로 치부되는 수사학만이 조금씩 달리 구사될 뿐. 그러니, 어찌 푸셰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2007년 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제목은 “우리는 모두 조제프 푸셰의 후예다”라는 것이었다. 
 

* ps.  정치적 ‘거물’들의 세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간들의 생존법을 일러주는 한 에피소드 :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 당시는 시간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규탄하고 있는 동안에 조용히 있기만 하면 사람들은 묵인할 것이다. 공포정치 수년동안 줄곧 의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한번도 입을 열지 않다가 후일에 그 전체 기간중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천재적인 대답을 한 시에예스의 그 유명한 처방대로 마치 많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듯이 푸셰는 죽은체 하고 있었다.”
 -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쓸모있는 지혜일 것이다. 근데, 이 재밌는 책이 왜 품절일까. 변절의 시대에 매우 유용한 참고서이자 교과서인 이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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