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사다 지로를 읽는 건 마치 히로카네 겐지의 만화거나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같은 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을 소박한 휴머니즘으로 덧칠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재주. 아마도 일본식의 휴머니즘일 듯한데, 여기에는 회사인간으로 살아가는 일본인의 내면에절절한 인간적 욕망과 화해를 향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백화점의 여성복과장이었던 한 성실한 회사원이 죽은 뒤 7일 동안 ‘이승’에 내려와 자신의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이야기. 여기에 인간적인 야쿠자였던 한 사내의 삶이 겹쳐지고, 야쿠자의 아이로 태어나 보육원에 맡겨졌던 한 아이의 스토리가 거기 또 엮어져 있다. 목숨의 이쪽과 저쪽 세계가 연결돼 있고, 휴대폰으로 연결되며, 공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등장한다는 식의 상상력이 발랄하다.

아사다 지로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아무런 부담 없이 술술 잘 읽히고, 재미도 쏠쏠하다. 주말 동안 서울과 부산을 KTX로 왕복하며 읽었다. 그러나, 아사다 지로 소설의 본령은 역시 단편에 있다는 생각. 가장 뛰어난 단편집인 <철도원>이 그렇고, <장미도둑>이나 <사고루 기담> 같은 단편집도 심금을 울리는 진진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지하철>이나 <천국까지 1000마일>, <칼에 지다>같은 장편은 단편이 주는 재미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돌이켜보니, <프리즌 호텔> 정도를 제외하면 꾸역꾸역 이 사람의 소설을 거의 다 읽어온 셈인데,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곱씹어 읽는다기보다 마치 휴일에 배 깔고 누워 만화를 보는 경험과 비슷했다. 가끔 웃기도 하고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여전히 ‘감성적’이었다.


아사다 지로가 보여주는 일본적 감성에 대해서는 일종의 ‘버텨읽기’가 필요한 대목도 있다. 그의 소설이 가진 인간적 축축함은 감동스러운 바가 있지만, 어느 순간 이성적 합리를 훌쩍 뛰어넘어 휴머니즘을 강요하는 듯한 진한 감성은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들은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으며 자신의 과거로 인해 현재의 삶이 불행하거나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 현실 혹은 인간적 관계에 대한 전면적 긍정과 화해의 길로 접어든다. 자신을 잘 보살펴준 보스를 위해서라면 눈물을 머금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의 순백의 내면. 2차 대전의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본인들의 고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많은 텍스트들이 그러하듯이, 전쟁의 비극과 인간적 고통은 절절하지만 정작 전쟁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물음은 실종된 상황과 유사하다.

성실한 백화점 맨으로 평생을 살다 죽은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은 이승으로 건너가 자신의 아내와 오랫동안 불륜 관계에 있던 부하직원을 만나지만 정작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은 자신이 일하던 백화점의 바겐세일의 매출액이 얼마냐 하는 것이다. 사후 7일간의 허락을 얻어 이승으로 자신을 버린 야쿠자 부모를 찾아간 아이는 ‘저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오직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저 세상으로 간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건, 자기 아들이 불륜사이에 낳은 아들임을 알건 모르건, ‘회사’일에 충실한 가장. 옳든 그르든 오야붕을 잊지 못하고 그를 위해 사후에도 충성을 다하는 야쿠자 ‘고붕’들. 한 남자를 사랑하고 20년동안 섹스파트너로 지냈으면서도 사랑을 숨긴 채로 결혼을 축하해주는 여자. 이들은 직업적 성실성으로 충만해 있고, 조직의 위계구조, 보스, 연인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은 절대적이다.

이같은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있으나 이런 멘털리티가 ‘무책임의 체계’를 가능케 한 일본적 정신구조는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다소 과장해서 이해하자면 사람은 저마다 인간적 진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이자 다른 모든 것들을 일거에 무화시킬 수 있다는 전언. 이 전면적 ‘인간주의’의 숨겨진 구석에는 파시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 헨리의 단편집과 비슷비슷한 느낌들인데, 그와는 달리 한구석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의문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이고, 재미있으면 그로서 평균 이상은 되는 것이니, 이 따위 혐의가 무에 대수랴.  내 우중충한 시간을 종종 구원해줬던, 이 전직 야쿠자 출신 소설가에게 복이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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