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말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소설. 이 여사의 후의와 강력추천으로 <벨벳 애무하기>에 이어 두 번째로 사라 워터스를 읽다. <벨벳>보다 스토리 구조는 더 복잡해지고, 분량도 길어졌으며, 반전이 이끄는 재미도 볼만 하다. 곳곳에 스민 ‘하이틴 로맨스’적인 심리묘사와 서술도 여전하다. 전작보다 분량이 길어진 탓인가, 중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BBC 드라마를 봤기 때문일까. 1부까지 흡인력 있게 읽히던 작품이 2부를 지나면서 툭, 맥이 끊기는 경험. 읽는 속도가 한결 더뎠다.

이 소설의 매력은 두 번에 걸친 대반전에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1부는 귀족 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에 가담한 여주인공 수전이 또다른 여주인공 모드에 사랑에 빠지고 ‘음모’에 배반당하는 스토리다. 이 소설의 가장 극적인 반전의 대목인 셈인데, 음모의 가담자에서 은밀한 쾌락의 공유로 변화하는 수전의 감정적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 뒤의 반전과 재결합은 췌사에 가까울 정도로 느릿하고 지루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BBC 드라마는 원작의 미묘한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불안한 감정상태를 표현하기에 딱 알맞은 얼굴을 가진 엘레인 캐시디, 순진무구함과 천박성, 감춰진 성적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볼만 했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다소 비약적으로 비칠 정도로 빠른 데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인상이다. 아주 고전적인 장면들로 인해 19세기말 런던 뒷골목의 음습하고 패덕스러운 분위기는 잘 살아나고 있다.


이 소설이 레즈비언 소설인 이유는, 여자들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남성성에 맞서는 ‘여성성’의 세대적 연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드-석스비 부인, 매리언-수전의 모녀 관계는 삼촌/젠틀먼의 폭력적 남성 세계와 대비되는 모성과 사랑의 연대다. 여성들은 이대에 걸쳐 수난을 당하지만, 결국 남성(들)은 파멸하거나 죽고, 끝까지 사랑을 쟁취하는 것은 여성(과 여성의 연대)이다.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며 허스토리를 구성하는 여성들의 ‘略傳’, 사랑이야기이면서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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