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조 임금인 광해군이 초시와 복시를 거쳐 올라온 서른세명의 과거 합격자에게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왕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인 전시에서 국왕이 몸소 출제한 '책문'이다. 서른 여섯살의 임숙영은 답안지격인 '대책'에서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 일갈하며 왕에게 자만을 경계하고 겸양의 도리를 배우라고 증언한다. 그의 대책문을 읽고 진노한 광해군은 합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영의정 이덕형과 좌의정 이항복이 부당하다며 간언하자 결국 명을 철회하고 만다.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라는 부제가 붙은 '책문'은 조선시대 왕과 신하의 문답을 담은 흥미로운 책이다. 왕이 과거에 합격한 신진 기예들에게 국가 경영의 방도를 묻고 초야에서 학문을 연마한 응시자들은 유교 경전과 역사적 사례를 들어 나름의 논리를 전개한다. 이 책은 왕이 출제했던 13개의 대표적인 책문과 함께 그 책문에 응답한 가장 뛰어난 대책을 함께 싣고 있다. 엮은이는 "책문은 젊고 싱싱한 넋을 가진 지식인이 시대의 부름에 대답하는 주체적 결단의 절규"라고 말한다. 국개 정치에서 실정을 거듭했던 광해군에게 임숙영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장을 편 것이다.

책에 수록된 책문과 대책은 당대에 대한 절절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정벌이냐 화친이냐"는 책문을 내놓고, 박광전은 이에 "정벌은 힘, 화친은 형세에 달려 있다"고 대답한다.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세종의 물음에 성삼문과 신숙주, 이석형은 각기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술의 폐해를 논하라"는 중종의 책문 역시 당대의 술문화에 지극히 문제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모든 책문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광해군이 내놓은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다소 감상적인 책문에 대해 이명한은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믿을 수 없고, 인생은 부싯돌처럼 짧습니다"라는 '서정적인' 대책을 내놓는다.

엮은이는 과거 합격자들이 내놓은 대책을 일컬어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는 시대의식의 투영"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이런 평가가 과장된 것은 아니다. 죽기를 무릅쓰고 써 내려간 젊은 지식인들의 글은 기개가 퍼렇게 살아 있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교 경전에 통달한 선비들의 문장에서는 현대의 현란한 문장이 따라잡을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 중 하나는 책문과 대책에 뒤이어 나오는 엮은이의 주석이다. 한학자인 엮은이 김태완은 왕과 신하가 머리를 맞대고 고뇌하는 장면의 전후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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