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미국역사 - 박보균 기자의 미국사 현장 리포트
박보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62만 명이다. 1, 2차대전을 비롯해 한국전과 베트남전 등 미국이 참전했던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전체보다 많다. 전쟁이 끝난 지 1백4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전쟁은 아직도 미국에 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에는 전쟁 종료 1백38년 후에야 링컨 동상이 세워졌다.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은 남부에서는 아직도 푸대접이다.

리치먼드 시민들은 “링컨이 우리 선조들에게 했던 그 파괴적 행동을 용서할 수 없다”며 동상 건립 반대시위를 벌였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의 국민적 통합을 이끌었다는 세계사의 ‘상식’과는 다소 어긋난 반응이다. 중앙일보 박보균 기자가 쓴 ‘살아 숨쉬는 미국 역사’는 거시적인 시야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미국사의 현장을 보여준다.

남북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이끈 게티즈버그 전투 1백40주년 재연 행사에 참가해 역사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실감한다. 인종 차별의 역사를 찾아 KKK단의 근거지인 인구 8천 명의 시골도시 테네시주 풀라스키를 방문하기도 했다. 백인에 대항해 싸운 인디언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흔적을 찾아 미 중서부의 사우스다코타주도 돌아보았다. 생생한 현재의 역사를 통해 과거를 설명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현대 미국의 복합적 실상을 포착해내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미 버지니아주 애포머톡스 재판소는 1865년 남군이 북군에 항복 조인식을 가졌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한 저자는 의외의 풍경에 놀라고 만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는 “이곳 애포머톡스 재판소의 한때 조용했던 길거리 위에서 리(남군 사령관)와 그랜트(북군 사령관), 그리고 그들의 피곤한 군대는 미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드라마의 하나를 연출했다”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전쟁 승리의 위대함이나 승자의 환호는 없었다. 팸플릿에는 ‘나라가 다시 합쳐진 곳’이라 쓰여 있을 뿐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남부연합의 대통령이나 최고사령관 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저자는 이 장면에서 미국이 가진 ‘관용의 미덕’을 본다.

이 책의 또 다른 진가는 한국 근대사와 미국사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3부는 ‘미국 속에 살아 숨쉬는 대한제국’을 담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망국을 결정한 포츠머스 조약의 현장에서 대한제국의 흔적을 좇는다. 저자는 그곳을 방문한 ‘첫 번째 한국 기자’였다. 워싱턴에는 대한제국의 유일한 해외 공사관 건물인 ‘대조선 주미 화성돈 공사관’이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있었다. 이 책은 곳곳에서 발로 뛰어 쓴 역사 탐방기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저자의 다리품 팔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2003년 초부터 1년간 미 전역을 누볐던 저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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