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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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05년 신생 국가인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대작을 펴냈다. 미국이 성취한 사회적 평등에 감격한 토크빌은 유럽 사회가 미국의 모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토크빌이 미국을 여행한지 2백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가 가고 유러피언 드림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변화를 주도하는 건 미국이 아닌 유럽이라는 얘기다.

그가 새로 펴낸 ‘유러피언 드림’은 토크빌의 책만큼이나 두텁다.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면서도 참신하다.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엔트로피’ 등의 저서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학자다. 리프킨은 왜 미국이 쇠퇴하고 유럽이 부상하는가를 각종 지표와 자료를 통해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부자 가운데 32%가 유럽에서 살고 있고, ‘포천’지 선정 1백40개 기업 가운데는 유럽 회사가 미국 회사보다 훨씬 더 많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을 비교할 때 흔히 제시되는 지표가 바로 국내총생산(GDP)이다. 하지만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사는 반면 유럽인은 살기 위해 일한다. 미국인이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유럽보다 GDP가 높을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의 질’이 유럽인들보다 높은 건 절대 아니다. 미국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6.26명으로 유럽의 네배다. 미국 교도소에는 2백만명 이상이 수감돼 있다. 어린이들의 사망률도 세계 26대 부유국 가운데 가장 높다. 한마디로 미국은 삶의 질에 관한 한 선진국 가운데 최저다.

리프킨이 비교하고 있는 유럽은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합중국으로서의 유럽연합(EU)이다. 통합된 유럽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하나로 동화되기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하는 유럽은 세계화라는 시대 변화를 선도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하나의 역사가 종식됨을 뜻하는 동시에 또다른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역사의 주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주류 지식인들은 유럽의 복지제도보다는 미국의 시장자본주의를 선호한다. 미국과 유럽이 기대고 있는 가치관과 그들이 밟아온 역사를 추적하는 저자의 논리는 한국의 주류적 시각을 가볍게 뒤엎어 버린다. 리프킨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일종의 문명론적 전환에 해당할 만큼 광범위한 것이다. 토크빌이 미국에 머물렀던 기간은 9개월에 불과했지만 리프킨은 20여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두 문화의 차이를 몸으로 체득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우리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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