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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평점 :
서경식씨가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받았을 때 그는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무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조선인 2세인 그에게 심사위원들은 “외국인이 일본어 문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쓰냐”고 반문했던 것이다. 그 질문 속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와 1백년 가까이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살아왔던 60만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인식하려 하지 않는 재일 조선인. 도쿄게이자이 대학 교양학부 교수인 서경식씨는 이같은 일본 사회의 소수자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재일 지식인이다.
‘소년의 눈물’은 서경식씨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그의 영혼을 흔들었던 책들에 관해 쓴 에세이다. 열살 즈음에 읽은 일본인 수필가 데라다 도라히코의 에세이부터 시작해 프랑스령 식민지 알제리의 혁명가 프란츠 파농에 이르는 독서 편력 과정을 담고 있다. 한 개인의 지적·정신적 성숙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볼 만하지만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역사적 존재’로서 자신을 깨닫게 되는 각성의 과정이다. 최근 방한한 그는 뉴스위크 한국판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책을 보더라도 다수자인 일본인들이 보는 시각과 소수자인 재일 조선인의 그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근대 문학가 루쉰(魯迅)은 일본의 재계 인사들이 두번째로 좋아하는 작가로 꼽힐 만큼 여전히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루쉰이 일본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일본군에 의해 참수되는 중국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봤을 때의 굴욕과 비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서경식씨의 소수자적 시각은 바로 이런 점을 발견하는 데서 다수 일본인의 그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여기에 영어수업 당시 ‘I am a Japanese’라는 문장을 읽지 못했던 그의 경험, 1960년대 대학 시절 조선인 대학생들과 함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반대 운동’을 벌이던 일, 가난한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에 건너와 차별을 견뎌야 했던 그의 부모 등 마이너리티로서의 개인사와 가족사가 겹쳐진다.
그의 독서 편력은 “제3세계의 민족 해방 투쟁은 이 세계에 인간을, 전인적 인간을 다시금 도입하려 한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프란츠 파농에 이르러 일단락된다. 자신이 “재일 조선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소외의 상황을 의식”하는 일이라는 역사적 자각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자각에는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한국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서승·서준식 두 형의 아픔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승은 19년의 감옥생활 끝에 풀려나 일본에서 대학교수가 됐고, 서준식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책읽기는 이같은 자신과 가족의 역사, 한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