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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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브라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인 룰라에 곧잘 비유된다. 룰라는 친시장주의적 정책으로 선회한 반면 노무현 정부는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적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도 따라붙는다. 과연 노무현 정권은 좌파적인가.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보수적이면서 우파적이라고 본다. “노정권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한 일은 거의 없고”, 규제 완화와 민영화, 자본시장 개방, 외국 자본에 대한 우대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보호무역주의로 경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후진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도덕적 위선’을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한국 경제를 비판의 도마에 올려 놓는다. 그것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이래 한국 경제의 주류을 이뤄왔던 ‘개혁주의자’들을 겨냥한다. 개혁을 내걸고 집권한 노무현 정권은 과거의 유산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그 자리에 ‘개방과 시장의 역할’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워 한국 경제를 계속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IMF 구제 금융 이전 10년 동안 평균 37.1%에 달하던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최근 7년 동안 25.9%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 부진은 실업난으로 이어져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현재의 극심한 내수 침체가 투자 부진과 실업난의 결과라는 것이다. 절대 빈곤층도 국민의 5.9%에서 11.5%로 급증했다. 이런 마당에 ‘개혁’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는 “개혁이라는 도덕적 오만이 과거의 모든 것을 거부하게 만든 데다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경제학적 편견”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부패한 것으로 낙인찍혔던 과거의 한국 경제를 다시 볼 것을 제안한다. 과거의 한국 경제는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 분배도 상당할 정도로 평등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정책이 도드라졌던 과거의 경제 정책을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다시 채택하는 게 낫다고 본다. 재벌의 체질은 개혁돼야 하지만 최근의 경제 정책이 그러한 것처럼 재벌 자체를 단죄시하는 풍토는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 책의 제목은 반세계화 서적인 ‘세계화의 덫’을 연상시킨다. 그는 선진국에 이익이 돌아가는 세계화가 아닌 ‘대안적 세계화’를 주장하고, 시장에 대한 개입주의와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 글로벌 스탠더드는 환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세계화론자들과 시장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마당에 그의 주장은 상당히 이채롭다. 게다가 그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 아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주류 담론’을 전복시키는 그의 시각은 계몽적이면서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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