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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낮은 중국
라오웨이 지음, 이향중 옮김,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해 10월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2050년께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매년 평균 9.5%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전세계 제조업을 빨아들이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안 중국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부르짖었고, 1989년에는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으며 지난해에는 후진타오(胡錦濤) 등 4세대 지도자들이 전면에 부상했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 라오웨이는 중국 인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는 상하이의 마천루나 천안문 광장에서 본 중국이 아니라 시장 바닥과 너절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진짜 중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민’들을 만나 인터뷰해 책을 펴냈다. . 원제는 ‘중국저층방담록’(中國底層放談錄). 그는 이 책으로 다시 당국의 감시를 받는 인물이 됐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열여덟살의 신신인류 미스 ‘웨이’는 이발소 아가씨를 시작으로 식당 종업원을 거쳐 클럽의 댄서가 됐다. 공중변소 관리인 저우밍구이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 벌어진 ‘똥 훔치기’에 대해 말해준다. 쓰촨(四川)성의 인신매매범 첸구이바오는 농촌 여성들을 총각이 넘쳐나는 마을에 팔아 넘기는 일을 하고 있다. 불법 인력거꾼인 자오얼은 거리의 여자들과 오입을 벌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시골 선생 황즈위안은 나이트클럽 사장이 된 제자로부터 ‘은사에 대한 보답’으로 여성 접대부를 제공받는다. 오입쟁이 책 도매상, 마약중독자 시인, 늙은 홍위병, 가라오케 아가씨 등도 이 책의 주인공들. 저자는 이런 하류 인생들의 삶을 소설로 쓴다면 “고리키의 자전적 3부작이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 절대 뒤지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만큼 여기 등장하는 인민들이 겪은 삶은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하다. 이들의 ‘구술’은 적나라하고 꾸밈이 없다. “왜, 자면 안돼요? 신신인류하고 옛날 세대하고 달라도 너무 달라요. 나 좀 그만 봐요! 엉큼하게시리. 구멍 나겠어요. 아님, 바로 돈을 주든가. 난 뭐든 내 맘대로예요. 필이 확오면 섹스면 뭐 어때요? 아저씬 필 같은 거 없죠? 그쵸?”(열여덟살의 신신인류 미스 ‘웨이’)
이 책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 중국의 이면사인 동시에 개혁개방시대 중국 민중사다. 각종 통계수치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중국 사회의 진면목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중국을 여행하고 싶다면 고급 식당과 호텔·관광지 정보가 수북한 여행 가이드보다 이 책이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중국의 거리에선 197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숱한 ‘난쟁이’들이 서로 속고 속이며, 싸우고 눈물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