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중국신화 이야기 2권 세트
김선자 지음 / 아카넷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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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구려 유물 가운데는 세발 까마귀(三足烏)가 자주 등장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스코트 역시 세발 까마귀다. 이 전설상의 동물은 중국 고대신화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고대의 여신 희화가 열개의 태양을 낳았는데, 활을 잘 쏘는 천신 예에게 활맞아 죽은 자리에서 세발 까마귀가 나왔다는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같은 신화에서 비롯된 세발 까마귀는 그 이후 ‘태양’을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한국과 일본·중국 모두가 공유하는 신화 상징이 됐던 것이다.

중국 신화를 연구하는 김선자씨는 “중국의 신화는 동아시아 민족 공동의 자산”이라고 말한다. 중국이라는 지리적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두번째로 펴낸 ‘중국 신화 이야기’에는 온갖 신들과 영웅들, 동물과 괴물들이 등장한다. 중국 신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그녀는 중국 신화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반짝이는 보석을 캐낼 수 있다”고 전한다. 몇년 전부터 그리스·로마 신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책은 거의 유일하게 대중성을 얻고 있는 동아시아 신화 관련서다.

그녀의 두번째 ‘중국 신화 이야기’는 ‘위대한 신과 영웅들의 사랑과 야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첫번째 책이 창세와 홍수 등에 관한 것이었다면, 두번째 책은 신과 영웅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요·순·우 임금 등 역사서나 이야기 책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들도 대거 등장한다. 중국의 고대 기서(奇書)로 불리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온갖 기괴한 동물들도 소개되고 있다. 단순히 신화를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역사로 전화된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고 있다.

신화 속의 영웅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닮아 있기도 하다. 가령 열개의 태양 중 아홉개를 쏘아 떨어뜨린 천신 예의 이야기는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의 모험과 비슷하다. 이들 신화는 고대의 것이지만 현대에도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당나라 시인들에 의해 절세미인의 전형으로 치켜세워졌던 예의 아내 항아는 ‘월궁(月宮)의 항아’라는 관용적 수사를 남기고 있다. 하늘의 형벌과 전염병을 유발한다는 서왕모가 여는 잔치를 뜻하는 ‘요지경’(瑤池鏡)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연단 앞을 수놓은 봉황도 고대 신화의 유산이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고대의 그것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얘기다.

‘산해경’을 쉽게 풀어쓴 5부는 중국 고대의 상상력이 가진 활달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거인들이 사는 나라, 검은 이빨을 가진 사람들의 나라, 두 얼굴을 가진 사람, 외다리들의 나라, 얼굴이 셋이고 팔이 하나인 사람들의 나라, 물고기의 몸으로 하늘을 나는 사람들, 개의 후손들이 이룬 나라, 혀가 갈라진 사람들…. 중국 고대의 상상력이 보여주는 세계는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다. 저자는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고대의 신화를 재치있는 글솜씨로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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