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김추자·선데이서울·동시상영관·김일·다방·통기타·긴급조치….’ 한국의 1970년대를 상징하는 말들이다. 동시에 한국 대중문화의 초기 모습을 형용하는 문화적 아이콘들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흑백 TV를 통해 김추자의 현란한 무대 매너에 매료됐으며, 김일의 박치기에 후련함을 느꼈고, 갓 상륙한 맥주를 마시며 통기타 공연에 열광했다. 유신독재의 억압이 이 시대 내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한국 대중문화에서 이 시대만큼 다채롭고 흥미로웠던 적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 마흔 두살의 나이로 사망한 문화평론가 이성욱의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는 70년대 대중문화 키드의 생애를 증언하는 책이다. 급성 간암으로 운명을 달리해 지인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는 이 책과 함께 본격 문학평론집 ‘비평의 길’(문학동네 펴냄)과 박사학위 논문 ‘한국 근대문학과 도시문화’(문화과학사 펴냄), ‘20세기 문화 이미지’(문화과학사) 등 네권의 유고집을 남겼다. 그 중 ‘쇼쇼쇼…’는 그의 기질과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방면의 독보적인 책이다.

이 책은 흑백 영화처럼 우리를 70년대의 문화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영화·가요·스포츠뿐 아니라 카바레와 음습한 10대의 문화, 섹슈얼리티와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벌어졌던 일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삶과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같은 70년대의 ‘음화’들은 저자 자신의 ‘뒷골목’ 체험에 의해 풍부하게 안받침돼 있다.

그 리얼리티는 이런 곡진한 고백을 낳는다. “오리온 뿅뿅 카라멜, 톱밥난로, 상하이 트위스트, ‘나는 어제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그런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마루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단검의 명수. 서로가 이방인이고 무관한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들이 내게 들어오면 서로 살가운 육친이 되고 내 몸 이곳저곳의 살갗이 되어 서로를 이어가며 하나의 영과 육을 만들어낸다.”

첫 장에는 박노식·장동휘·숀 코널리·찰슨 브론슨, 리샤오룽(李小龍)이 등장하던 70년대 영화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마음의 요람이 되어 버린 김추자’를 다루고 있는 2장은 그 당시 대중음악에 대한 회고다. 금지곡과 대마초에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읽힌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외치는 이광재 아나운서의 스포츠 중계, 홍수환·유제두로 이어지는 복싱 등 스포츠에 얽힌 비화도 눈길을 끈다. 4장 ‘선데이서울의 색기발랄함에 빠지다’는 마악 시작된 섹슈얼리티 문화의 단면을 유쾌하게 증언한다. 70년대 한국인들의 일상과 비루한 욕망은 이 책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때론 눈물겹게 재현된다.

저자는 민중·민족문학의 옹호자였으며, 한국문학 연구자이기도 했으나 그의 본령은 당대의 풍속과 문화를 탐사하는 문화기술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문장은 고상한 평론의 언어에서 벗어나 저잣거리에서 건져올린 생기로 가득차 있다. 30대 후반 이상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지난 시대에 대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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