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 다시 읽기 - 독립신문 사설선집, 백년 전 거울로 오늘을 본다
서울대 정치학과 독립신문강독회 지음, 김홍우 감수, 전인권 편집 / 푸른역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어떻게 하면 전국 인민의 의복과 음식이 넉넉히 될꼬 궁구하는 것이 정부의 본래 직책이거늘, 근일 동양 제국은 이 본의를 잊어버리고 인민의 의복과 음식을 넉넉하게 하도록 주선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잔약한 백성의 쌀줌 돈냥을 무리하게 뺏는 일이 종종 있음이라….” 경제 불황으로 연금을 내지 못해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재산을 가압류당한 시민이라면 이런 분통을 터뜨릴 만하다. 한국 최초의 순한글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1898년 4월 9일자에 실린 사설의 일부다. 정부의 중요 기능 중 하나가 국민 생활의 경제적 안정에 있음을 따끔하게 지적한 글이다. 1백년 전에 나온 정부 비판이지만 여전히 생동감있는 주장이다.

‘독립신문 다시 읽기’는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생들이 만든 ‘독립신문 강독회’에서 펴낸 책이다. 지난 199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매주 한차례씩 모여 희미한 활자를 더듬으며 읽어내려간 결실이 바로 이 책으로 묶였다. 독립신문의 사설과 내용을 크게 세부분으로 분류하고 당대의 문장을 현대어로 고쳐 새롭게 펴냈다. 이들이 ‘독립신문’을 다시 읽은 것은 “대한제국의 근대적 실천들이 어떻게 제기·수용·형성·전파·성장·좌절되었는가”를 살피는 아카데믹한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일반 독자의 눈으로도 이 신문의 내용은 흥미롭다.

독립신문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신문이었다. 19세기 말의 조선은 근대사회로 진입하려는 마당이었고 당시 시민들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목말라 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지금 동서양 각국이 바야흐로 틈을 엿보고 있는지라. 대한이 조금만 실수하여 일이 있을 지경이면, 내가 그 나라 이름을 말하지 아니 하더라도 다 짐작들 하시려니와, 필경 그 두나라가 의론하고 대한을 보호국으로 만들 터이라”와 같은 위기의식이다. 서세동점의 현실과 문명 개화의 실상, 조선의 악습과 폐단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며 민중계몽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독립신문의 사설은 당시의 조선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어떻게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한국 근대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과 같다. 가령 ‘서울의 더러운 길’과 같은 사설에서는 개화파 지식인들이 가진 서구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조선의 독립을 원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데 이르러서는 이들이 얼마나 국제 정세에 무지했던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설의 형식도 오늘날의 신문과 다르게 우화나 대화체·기사 등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다. 이 책을 엮은이들은 독립신문이 주도한 만민공동회를 ‘직접민주주의의 시원’으로 평가한다. 만민공동회가 연 근대 민주주의의 지평이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