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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지음, 승영조 옮김 / 책세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 치고 야만의 기록 아닌 것이 없지만 그 ‘야만’ 중의 야만은 아마 전쟁일 듯하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만이 아니라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의 명장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 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 나팔이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몽고메리 장군은 영국 육군 원수로 ‘사막의 여우’였던 독일의 롬멜 장군을 꺾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인물. 평화에 대한 이런 갈망은 그가 참전 군인으로 숱한 전투를 치렀던 인물이기 때문에 심상찮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말은 기원전 7000년부터 2차대전까지 9천년에 달하는 기간 중 인류가 치러온 전쟁의 모든 역사를 통찰한 끝에 나온 결론이기도 하다. 1천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전쟁의 역사’는 돌도끼에 의존했던 고대의 전쟁에서부터 핵무기가 등장하는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수행한 ‘잔혹사’를 추적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전쟁의 양상은 결코 스펙터클한 모험담이 아니다. 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 전쟁에 동원되는 전략과 전술 등에 대한 서술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군인으로서의 고뇌’다. 그는 ‘전쟁영웅’이란 자신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피로, 공포, 소름끼치는 상황, 심한 결핍, 궁극적으로는 부상의 확실성과 죽음의 가능성”을 계속 언급한다. 그는 전쟁을 결정한 정치인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상당수의 군사작전과 전투는 단지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치러졌다. 정치적 이유들은 수많은 군인들의 명성을 매장시킨 무덤이었다.” 그가 써내려간 전쟁의 역사는 승리와 영광의 역사가 아닌 인간 내면의 야수성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주로 서구전쟁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서술도 등장하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비해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전장에서 민간인과 군인이 계속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이 던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는 현대전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기술은 발달했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저작을 “아프리카와 유럽의 전장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에게 헌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