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1 - 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영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괴테(1749∼1832)의 ‘이탈리아 여행’을 소개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다. 기행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그의 37세 생일 잔치가 한창 진행되던 1786년 9월 3일부터 시작된다.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작가,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가이기도 했던 괴테는 그날 여행가방과 오소리 배낭만을 챙긴 채 홀로 역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보여주듯이 여행은 원래부터 ‘충동적인’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여행은 ‘동경’의 산물이기도 하다. 괴테는 이 미지의 땅을 오랫동안 동경해 왔다. 그에게 로마는 ‘세계의 수도’였고, 그가 로마에 도착한 날은 ‘제2의 탄생일’이면서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다. 괴테는 21개월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일기와 편지, 보고문과 논술, 그리고 스케치를 남겼다. 그가 본 거리와 건축물들,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예술품들이 대가의 섬세한 눈으로 포착되고 있다. 고갈됐던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삶에의 의지는 여행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한국에서 이미 서너차례 출간됐던 이 여행기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전 판본과는 전혀 다른 편집과 내용 때문이다. 1998년 재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이 책은 괴테가 직접 그린 수채화와 스케치, 이탈리아의 자연풍광을 보여주는 사진과 회화가 다시 추가됐다. 유려한 괴테의 문장과 시각적 즐거움을 자극하는 이미지가 결합된 책인 셈이다. 책을 읽고 보는 것으로도 이탈리아가 괴테에게 제공했던 흥분과 경이를 우회적으로 엿볼 수 있다. 괴테가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괴테는 로마를 떠나면서 “길을 떠날 때는 언제나 과거의 모든 이별과 미래의 마지막 이별이 무의식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법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를 한다는 말이 이번에는 더욱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고 썼다. 그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방황이면서 인간적 성숙을 위한 과정이었다. 무릇 모든 여행이 그러하지 않을까.

문득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풍광과 마주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인간적 성숙을 이루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 괴테는 질풍노도의 시기와 작별하고, ‘조화와 균형’에 눈을 떠 ‘고전주의 시대’를 열게 된다. 여행이 쇼핑과 레저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에 괴테의 ‘고전적인 여행담’이 던져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