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 먹다 - 전희식의 귀농일기
전희식 지음 / 역사넷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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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위기에 몰린 농민들의 처지는 절박하기 그지없다. 농민들은 정든 고향과 논밭을 등지고 있지만 도시의 한 켠에서는 조용한 귀농행렬이 이어진다. 8년 전 처자식을 이끌고 전북 완주에 내려간 전희식 씨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는 “땅과 자연에 가까이 가는 생활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귀농해 고추를 심고 감자를 키우며 살고 있다. 이웃들과 품앗이 노동을 통해 손수 집을 짓기도 했다. 그가 펴낸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는 틈틈이 써왔던 귀농일기를 모은 것이다.

도시인의 귀농행렬은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느림의 미학’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도시의 숨막히는 공기를 행복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귀농을 꿈꿔보지 않은 도시인들이 과연 있으랴. 퇴직 후 시골에 내려가 손수 농사를 짓는 조용한 전원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도시인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전씨의 귀농일기를 펼쳐보면 ‘낭만적 전원생활’은 허무맹랑한 몽상이다. 낭만을 안고 귀농하는 사람들은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골을 망쳐놓는 사람들”이라는 게 전씨의 생각이다. 그에게 귀농이란 ‘업종 전환’이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전씨는 부인과 실상사의 작은 학교에 다니는 큰 딸 새날이, 초등생인 아들 새들이와 함께 살고 있다. 전씨 부부의 삶도 유별나지만 두 자녀도 그렇다. 새날이는 교사의 일상적인 폭력이 싫어 스스로 대안학교를 택했다. 두 자녀는 부모를 도와 일을 하면서 공부한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로 잘 알려진 스콧 니어링·헬렌 니어링 부부가 메인주의 시골마을에 정착해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듯이 전씨 가족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이 귀농인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삶이다. 자동차와 최신 사양의 컴퓨터, 비어 있는 때가 더 많은 아파트를 갖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게 전씨 가족의 결심이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전씨 가족이 손수 지은 황토집 이야기다. 준비에서부터 자연친화적인 재료 모으기, 이웃들과의 품앗이, 온가족이 집짓기에 참여하는 과정 등이 애틋하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들의 집은 거대한 기계로 지은 도시의 아파트보다 훨씬 포근해 보인다. 전씨 가족들의 ‘노동’은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갔던 옛 조상들의 삶을 일깨워준다. 도시의 인공적 삶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시대에도 인간적 노동을 통한 조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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