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거 정치 - 이념, 지역, 세대와 미디어
강원택 지음 / 푸른길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고리 핸더슨이 1960년대 후반 펴낸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한국 정치에 관한 고전이다. 그는 한국 정치에 대해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향해 어지럽게 돌아가는 소용돌이라고 말한다. 핸더슨의 비유는 특히 한국의 선거정치에 꼭 들어맞는다. 정치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 아래 한국 정치에서는 선거 때마다 주기적으로 ‘권력을 향한 소용돌이’가 반복된다. 좋게 말하면 ‘활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불안정성’이다. ‘바람’이 몰아치더니 역풍이 불고, 종국에는 군웅할거하던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한국의 선거정치’는 한국 정치의 지형도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그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시작해 2002년 말의 대선에 이르기까지 10년간 한국 사회가 치러낸 선거를 ‘실증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그는 선거에서 소용돌이를 이루는 네 꼭지점을 이념과 지역, 세대와 미디어라고 말한다. 이 네가지 변수가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면서 변해왔는지를 선거 전후에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와 통계들을 근거로 상세히 살피고 있는 저작이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확연히 제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1987년 대선이다. 1노3김이라는 지역의 맹주들이 출현했던 당시 선거는 그 이후의 선거를 가늠하는 ‘초석’이 됐다. 저자 역시 ‘지역변수’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변인들도 존재한다. 특히 서구의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이념’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2002년 선거를 거치면서 지역 못지 않은 중요한 변수임이 증명됐다.

하지만 서구 정치에서 이념이 경제적 가치의 배분 문제에서 대립적 양상을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대북관이나 반공이념을 둘러싼 태도가 문제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세대’와 ‘미디어’를 또다른 변인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요소는 97년 대선, 2002년 대선 등을 거치면서 특히 도드라졌다. 여론조사와 인터넷의 영향에 대한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고, 인터넷은 정치적 의사소통과 여론 형성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대’와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승리를 거둔 대표적 케이스다. 지역주의가 가장 위력적이었을 때 유권자들은 새로운 출구로서 제3당, 무소속 후보, 제3후보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다. 저자는 한국 정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질서를 또렷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지난 선거를 통해 나타난 한국 정치와 유권자들의 의식을 추적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실증성은 이 책을 따분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향후 선거의 양상과 그로 인해 형성될 정치 지형도를 읽어내는 데는 매우 유용한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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