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은 끝나지 않았다 - 화성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의 수사일지
하승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거두절미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먼저 저자의 이런 절규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매순간 네 모습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네 놈의 얼굴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해두고 또 기억해둔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도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늘 네 놈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억해 둔다. 우린 꼭 만날 것이다. 널 미치도록 잡고 싶다.” 강력계 형사 경력 30여년의 베테랑인 저자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저자 하승균씨는 1986년 12월 발생한 연쇄살인의 세번째 사건부터 수사에 참여해 수사팀을 이끌었던 중심 인물이다. 과천 아파트 부부 토막살인 사건, 광주 여대생 공기총 살인 사건 등 숱한 대형 살인 사건을 해결했던 강력계 수사관으로 현재 경기도경 강력계장이다. 이 책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5년여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일지다. 그는 현장을 떠난 지금까지도 수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수사요원 30만명, 일반 경찰 27만여명, 여경 5천여명, 방범대원과 민간 기동대원까지 연인원 2백만여명이 동원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시 일반인의 기억 속에 불러낸 것은 올해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80년대를 ‘추억’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 사건은 추억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다. 저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부하 한명이 과로로 한쪽 몸이 마비됐다. 용의자에 대한 과실치사로 경찰 세명이 구속됐고, 상관이 옷을 벗어야 했다. 무엇보다 희생자가 9명이나 나왔다. 그에게 이 사건은 영화처럼 픽션이 아닌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에서 영화와 같은 어떤 드라마틱한 흥미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책의 몸통을 이루는 것은 모두 9건의 연쇄살인에 대한 건조하고 분석적인 설명이다. 이 사건에 얽힌 풍문과 신화를 싹 걷어내고 실체를 정확히 알리자는 게 저자의 목적이다. 물론 범인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도 갈피갈피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뒤 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직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한다.

저자는 형사들이 살인 사건 수사에 매달리는 것은 스스로 ‘알파’라 부르는 어떤 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의감이나 분노가 아닌 이 ‘알파’ 때문에 살인 사건 해결에 몸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도 바로 그 알파의 힘이다. 이 책의 건조한 기술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그 알파의 감염력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어쩔 수 없는 강력계 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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