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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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호크쉴드의 책은 이것이 두번째인데, 전에 읽은 <레오폴드의 유령> 만큼이나 그의 솜씨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그는 역사가도, 언론인도 아닌 저술가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와 주제를 택해 역사가만큼이나 치밀하게 자료를 모으고 해석하고, 언론인 만큼이나 현장감있게 기술한다. 우리에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저술의 유형인 셈이다. 이 책은 스페인 내전 자체에 대한 탐구라기 보다는, 이 국제화된 전쟁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던  (주로) 미국인 국제여단 참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주 오래 전에 일본인 좌파 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스페인 내전연구>(형성사) 정도가 그동안 이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앤터니 비버)에 대해 내가 읽은 거의 전부였다. 그 책은 아마도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 약칭 POUM으로 불렸던 집단의 정통성을 주장했던 듯 하다. 그건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반복된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이 감동스러운 점은, 그리고 아주 읽을 만한 책이라는 점은, 스페인 내전이 전세계 좌파 지식인들이 반파시즘에 대한 신념에 찬 헌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감동스러운 대목은, 스페인 내전이 패전으로 돌아간 이후 국제여단에 참가한 사람들이 살았던 '그 이후'의 삶이다. 버클리의 교수, 하버드의 대학생, 노조원, 미국 공산당 당원, 부자집 도련님, 헤밍웨이에서 마사 겔혼과 같은 언론인/소설가, 루이스 피셔와 같은 기자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총을 들고 스페인으로 가서 싸웠다. 그리고, 이들은 내전에서 패배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각자의 영역에서 인종주의와 싸우고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진보적 삶을 살았다. 프랑코의 국가주의자들에게는 독일과 이탈리아라는 군수물자를 보내주고, 전투기 부대와 지원부대를 파견했던 강력한 지원자들이 있었다.(히틀러에게는 2차대전을 위한 사전 군사훈련을 할 수 있는 실전경험을 제공했다.) 공화파에게는 소련이 있었으나 그들의 지원은 관료적인 무능에 겹쳐 무기도 형편없었고, 눈앞의 전투보다는 소련내의 숙청과 숙청의 국제화(트로츠키 암살과 스페인 내전 참여자들에 대한 숙청)에 더 관심이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적으로는 파시즘과 반파시즘, 반파시즘 내부에서는 혁명과 전쟁을 둘러싼 입장과 이념에 따른 분파주의적 갈등, 지역적으로는 카탈루냐와 바스크의 자치주의와 단일한 국가를 옹호하는 국가주의의 대립 등이 중첩된 전쟁이었다. 거기에 공화파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국가주의자들에 대한 지원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함으로써 공화파를 궁지에 넣은 영국과 미국(루스벨트), 프랑스가 있었다. 파시즘 세력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거대한 지원에 힘입어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반면, 공화파는 이념적 갈등과 내분에 시달리면서, 국제여단이라는 는 '인적 자원'외에는 별다른 지원이 없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했던 것이다. 공산당의 패권주의, POUM의 분파주의, 아나키스트들의 비현실적 헉명노선 등 그 무엇도 공화파의 승리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사 공화파가 이겼다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아나키스트들과 공산당 간에 또다른 내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주책없이 가끔 눈물을 훔치기도 했는데, 파시즘에 맞서 싸운 이들이 보여주는 국제주의적 헌신이 눈물겨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에 대해 목숨을 내건 자들의 운명은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이런 가치에 대한 헌신은 탈레반이나 극우 테러리스트들에게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제여단 참여자들이 보여준 가치가 파시즘이나 종교적 이념에 대한 경사와 동등한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국제여단 참여자들이 보여준 가치는 민주와 공화, 민중의 편이라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중의 하나인 전직 버클리대 강사이자 링컨 연대 중대장인 로버트 메리언의 아내는 이렇게 묻는다. "그 시대는 어디로 간 걸까요?" 파시즘에 맞서 자신의 조국을 떠나 보편의 가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를 넘어서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주 희미하게 존재했었던 국제주의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일깨워준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몇가지 기억할만한 사실들 .텍사코는 프랑코의 목숨줄이었다. 그들의 외상으로 준 석유 덕분에 프랑코는 승리할 수 있었고, 루즈벨트의 미국은 그렇게 국가주의자를 도와주었다. 빌리 브란트, 생텍쥐페리도 국제여단에서 싸웠다. POUM의 정통성은 공산당과 아니키스트들의 상대적 후진성 또는 반동성 때문이지, 결코 그들의 노선이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서 정당하거나 온당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쟁은 삶과 죽음, 그리고 많은 민중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소련의 비밀경찰은 스페인 내전에 지원군으로 보냈던 거의 대부분의 장교들을 암살하거나 숙청했다. 영국군에 합류하여 독일의 루프트바페 공습을 막아내고 괴링의 공중전을 무력화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던 폴란드 공군조종사들이 2차 대전 후 귀국했을 때, 감옥에 갇히거나 숙청당한 것과 비슷하다. 베리야의 NKVD는 역사의 야수같은 집단이었다. 폴란드의 카틴숲 학살, 유대인을 구출한 영웅 발렌베리의 죽음도 모두 그들의 작품이었다. 


"노 파사란"(No passaran, 그들은 통과할 수 없다)을 외친 광부의 딸이자 아내이자 재봉사였던 스페인 공산당 의원 돌로레스 이바루리(라 파시오나리아 La Pasionaria 예명)의 국제여단 해체 고별 연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서 '취재'나 하고 겔혼과 '염문'이나 뿌리고 다닌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 조지 오웰은 POUM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나 국제여단으로 옮길 찰나에 공산당의 반동이 시작되었다는 것("POUM의 혁명적 순수성에도 그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내게는 무의미해보였다.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37년 5월 2일, 공산당이 품과 아나키스트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공화파 내부의 내전(무정부주의자 교환수가 공화국 대통령의 전화를 제지하면서 시작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 국제여단의 통제본부나 지휘부는 소련이 이 장악하거나 스탈린주의자들이 '관료적 통제'를 하고 있었다는 것. 아, 그리고 스페인의 가톨릭은 반동의 극치이자 종교적 가치를 스스로 부정했던 극단적 파시즘 세력이었다는 것. '오염된 서구사회'에서 유일한 정통 가톨릭임을 스스로 자임하여 프랑코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되었다는 것. 이런 등등도 두루 기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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