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대한민국을 위해 최전방에 설 젊은이들에게
김현종 지음 / 홍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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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의 다른 이름은 '한미FTA'다. 그를 빼놓고 한미FTA를 말할 수 없으며, 그가 아니었다면 한미FTA도 불가능했다. 그는 곧 FTA며 FTA는 김현종이다. 한 개인이 과연 한 국가의 통상전략에 있어 차지하는 위치가 그 정도일 것인가하는 의문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 이 문장들은 사실에 부합한다. 오랫동안 그를 다른 많은 진보인사들처럼 '검은 머리 외국인' 정도로 생각해왔다. 외모만 한국인일뿐 그는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외국인이라는 것. 그를 잘 알고 있었던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은 미국사람이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었는데, 가까이서 접했던 사람들조차도 그를 '이방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통상문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상호이익이 전제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으며, 일방의 이익이거나 손해가 된다면 거래가 가능하지 않다. 물론, 글로벌한 경제불균형 상태에서 또는 국가간의 힘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통상은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다. 김현종이 직접 썼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 그리고 통상문제에 대해, 이른바 한국의 진보논객들이 펼쳐온 주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은 그동안의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볼 기회를 가졌다는 뜻이다. 한미FTA 체결 반대/무효를 '거리의 정치'를 통해 관철하려던 수많은 진보단체와 진보지식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미국 중심의 패권적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얘기였다. 


이 책은 김현종에 대해 두가지 점에서 내 생각을 바꾸게 했다. 그 첫번째는 그는 민족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책 머리에서 그는 구한말 역사를 끄집어 내면서 당시 국제정세에 둔감하고 자폐적인 질서속에 안주하려던 당대의 집권층이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는가를 지적한다. 쇄국주의가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판단이다. 미국에서 자라고 콜럼비아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스위스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국내의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며, 한국의 역사가 개방체제를 외면했기 때문에 당대의 국제 질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을 매우 강렬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 그가 선택한 '발전경로'는 개방적 통상국가로 가는 것이다. 국제 통상질서에 대한 인식, 그리고 유시민이 언젠가 강조했던 한국경제발전의 '경로의존성'에 대한 인식속에서 '통상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남북 FTA'와 같은 대담한 구상도 그런 시각이 아니었으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애국'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고, 더구나 민족이라는 집단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가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선택은 '애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것이 복수의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느 한 집단이나 특정한 방법론을 가진 존재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김현종은 외국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자, 그것도 통상민족주의자인 것이다. 그가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개방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방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이나 "FTA는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3국에 대한 차별이 본질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면 불리해진다"는 인식, 여기에는 불가피한 국제통상질서가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이걸 외면하고 다른 길을 택할 방법은 없다는 냉정한 판단이 숨어 있다. 


그가 통상전문가로서 뛰어난 점은 실제 협상 과정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협상력과 대담함, 협상의 논리와 세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준비, 뛰어난 영어실력,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배짱 등의 덕목이다. 실제 협상과정에 대한 그의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거의 무협지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 자화자찬이 과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의 전략과 전술은 주효했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 등 10여년 전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극렬하게 반대했던 측의 논리와 주장은 매우 앙상해 보인다. 그들의 우려처럼 우리의 건강보험이 무너진 것은 아니며, 감기약이 10만원으로 오르지도 않았으며, 농업이 FTA 때문에 붕괴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미FTA는 우리에게 '약간' 혜택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만약 체결되지 않았더라면(그래서 관세철폐 효과를 보지 않았다면) 손해는 상대적으로 더 컸을지 모르겠다. 요컨대, 체결이 가져온 결과를 놓고 보면 대표적인 반대론자 한신대 이해영 교수 같은 사람의 전망은 오히려 맞지 않았던 것이다. 


두번째는 김현종은 이력과 다르게 매우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거칠게 말해 그는 자신의 처신을 결정할 때 봉건적 '군신관계'와 유사한 방식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을 발견하고 발탁한 노무현에 대해 '주군'으로서의 예를 다하고 있다. 그가 협상장에 나설 때도, 협상에서 진전이 없거나 다른 부처 장관들과의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도 그는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그의 판단과 동의를 구한 후에야 거사를 도모한다. 정권이 바뀌어 그에게 다른 제안이 왔을 때도 그는 주군으로서의 노무현을 버리지 않고 '자리'를 거절했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부름을 받고 통상 수장에 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청와대의 국가안보실 2차장이다. 이제 안보는 외교군사의 영역에서 경제의 영역으로 바뀐 모양이다.) 이런 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좀 이채로운 부분이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나 '경계인' 송두율 선생처럼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주요한 이력을 쌓았으면서도 도저한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식인들이 있다.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IT에 있어서는 앞서 가자며 척박한 한국으로 돌아와 인터넷 분야의 후학을 키운 전길남 박사의 민족주의는 감동적인 바가 있다. 반대로, 미국의 빅터 차처럼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미국 강경파보다 더 심한 인식과 논리를 보여주는 자들도 있다. (미국 주요 싱크탱크의 '한국계' 북한 전문가(?)들 중 대다수는 매파 또는 전쟁불사론자들이다. 그들의 혈연적 연결성에서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김현종은 자신의 민족적/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분명해 보이고, 그 집단에 대한 귀속 의식 내지는 책임의식이 매우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은 그런 사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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