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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평점 :
저자 진천규는 기자로서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한겨레 창간 사진기자로 지금까지 6차례 방북을 하여 취재를 했고, 2000년 김정일과 김대중 대통령이 만나는 역사적 장면을 촬영한 기자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기자들의 방북취재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미국 시민권을 얻은 그는 미국의 대북폭격과 북한의 미사일 보복 등의 설전이 오가는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 상황속에서도 방북취재를 할 수 있었다. 책의 대부분은 사진이고, 한 두시간이면 후다닥 읽을 수 있는 분량의 텍스트로 이뤄진 이 책이 가진 미덕도 바로 이것이다. '잔혹한 독재자의 나라'이자 '비정상 국가'라는 미국 주류 언론의 지배적 인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확인한 현재의 북한, 진천규는 그게 가능한 자리에 있었다.
1989년 황석영의 방북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삶이 거기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일깨워 줬다면, 이 책은 경제제재하의 북한에서도 삶이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나마 경제가 성장하고 삶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으로 가는 기차에서 구입한 도시락은 아주 알찼고, 옥류관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대동강변에서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거나 나들이를 나선 가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북한의 일상은 과거의 이미지에서와 달리 단조롭거나 경직되어 있지 않고 경쾌하거나 심지어 발랄하기까지 하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고 있음은 짐작했지만, 이 책에서 확인한 북한은 생각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붕괴를 가속화하리라는 '자기충족적 희망'은 미국 행정부의 일부에서나 통하는 전망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연도에 늘어선 북한 주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적인 느낌을 가졌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 나왔을리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순전히 강제적으로만 동원되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온전한 개인의 자리가 여전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판단과 행위의 주체로서 '시민적 개인'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비록 '장마당'에서 거래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부상하고 그들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이 현재 북한의 일상을 밀고 나간다 하더라도 정치적 의미에서 '개인'은 아득히 멀어보였던 것이다.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북한은 국가의 영역이 개인과 가족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되어 가고 있는 중인 듯 했다. 국가의 전면적 지배에서 '사적 영역'이 분리되고 그것이 꿈틀거리면서 지금 북한의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이 책에 실린 사진은 가장 큰 미덕이다. 게다가 저자는 사진가이면서도 글을 아주 잘 쓰는 기자다. 사진들은 그 자체로 북한의 일상에 대한 정직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표정 저 너머의 감정과 평상적 감각을 드러내보인다는 점에서도 뛰어나다. 여느 북한관련 책들과는 이런 점에서 다르고, 북한의 이해에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그것은 북한을 '철의 장막 뒤의 이상한 왕조국가'라는 식의 대상화이거나 이국적인(?) 상품화의 시선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