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의 생각 - 문화에서 꿈을 찾다, 7가지 창조적 여정 creative journey
고성연 지음 / 열림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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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책은 읽지 않는 편이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성연의 CJ의 생각은 두 가지 이유에서 구매해 읽었다. 첫째, 나는 서점에서 그냥 나오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중고서점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몇 권 구매하려는 심리 때문에 책장 곳곳을 여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둘째, 구매 시점이 CJ ENM에 이력서를 넣은 지 얼마 안 됐던 때였다. 대기업이라 얼추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 보니 나는 CJ란 기업을 거의 몰랐다. 이력서를 안 넣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궁금증 해소 겸 참고 도서로 구매했다.

 

CJ는 설탕 제조 사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르신들에게 제일제당으로 친숙한 이 기업은 영화 제작·배급사 ‘CGV’, 케이블 채널의 강자 ‘tvN’, 홈쇼핑 채널 ‘CJ오쇼핑’, 한류를 이끈 시상식 ‘MAMA’, 냉동식품의 판도를 뒤집은 비비고등으로 전 연령층에 사랑받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전환하는 길은 대기업이라도 쉽지 않았다. CJ는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대응했는가. 그 험난한 과정 중 나는 책에서 가장 지분을 많이 차지한 영화산업에서 배울 점 3가지를 꼽아봤다.

 

1. 배우는 자세

 

스필버그에게 손을 내민 결단에는 최고의 시스템을 배워 우리 것으로 체화하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 p.27

 

90년대 우리나라 영화 산업은 열악했다. 시스템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할리우드와 비교해 한국 영화는 경쟁력이 없었다. ‘배급과 극장 사업은 돈이 되지만 한국영화로는 이익을 낼 수 없다(p.32)’는 결론이 지배적이었다. CJ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힘겨우리라는 점을 시작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배급사인 드림웍스에게 영화산업 시스템의 A to Z를 배우는 데 집중했다.

 

한국영화계에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배급 과정에서 극장주에게 뒷돈을 주거나 영화사로 갈 수익을 가로채는 일이 잦았다. ‘확실한 전산 시스템을 갖춘 배급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러한 비리가 근절됐다(p.35).’ 유통이 투명해지니 투자와 마케팅의 효율도 덩달아 상승했다. 관람객 취향에 맞는 영화를 제작·배급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산업 이익은 극대화되었다.

 

여기에 한몫 더한 시스템은 멀티플렉스라는 플랫폼이었다. CJ가 뛰어든 초기 영화산업 시기에 미국은 이미 멀티플렉스 체제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스크린의 개수가 많으니 흥행하는 영화는 더욱 추진력을 얻었다. CJ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다양한 투자처와 협업해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강변11’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와 달리(IMF 직후였다.) 사람들은 줄줄이 ‘CGV강변11’을 찾았다. CJ가 멀티플렉스 사업에 성공하자 다른 대기업 영화관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영화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2. 포기하지 않는 자세

 

사실, 20년의 세월 동안 CJ는 고전을 면치 못한 적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처음의 목표를 놓지 않았다. - p.36

 

영화산업에 뛰어든 제조기업을 세상은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분야는 시스템마저 미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가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단기적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급 시스템과 영화관 플랫폼을 넘어 CJ는 블록버스터에도 힘을 쏟았다. 영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블록버스터 영화는 꼭 필요했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 초기와 마찬가지로 아직 우리나라에는 블록버스터 내공이 부족했다. 내실을 다지는 데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엄청난 출혈이 예상됐지만 끊임없이 실전을 통한 실험에 나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p.56).’

 

먼저 좋은 영화를 고르는 안목부터 키우기 위해 배급 업무와 단순 투자 업무 위주로 역량을 쌓았다. 1999년에 쉬리500만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열자 가능성을 확인하고 CJ는 투자의 범위를 늘렸다. 좋은 영화도 발굴했지만 미끄러진 경우도 허다했다. ‘이처럼 옥석을 가리는 눈이 부족해 애먼 데 투자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p.57).’

 

노력하는 과정이 누적되자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730만의 화려한 휴가(2007), 668만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개봉한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1000만을 넘어섰다. 2013년부터는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가 등장했다. 설국열차, 베테랑, 도둑들, 명량등등. CJ는 명실공히 한국영화계를 선도했다.

 

3. 실패를 인정하는 자세

 

실험도 좋지만 대작을 표방한 작품들의 잇단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체질 개선을 요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 p.60

 

블록버스터가 터지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은 CJ 영화산업의 흑역사라고 불린 시기다. 투자 목록의 대부분이 할리우드 흥행작을 답습한 SF물들이었다. 당시 초딩이었던 나조차 개똥망 영화들의 이름을 대며 친구들과 하하호호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많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었다. 놀릴 만하면 뭐든 ○○팔이를 붙였다.

 

흥행작의 아류를 만드는 이런 매너리즘이 비단 CJ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산업계가 커지면서 투자가 과도하게 들어오자 아무 영화에나 투자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셈이었다. 관객들은 신작이 나오면 일단 의심부터 했다. 영화산업계는 하강 곡선을 그렸다. 그런 와중에도 왕의 남자(2005), 괴물(2006)등 신기록을 세우는 영화가 등장했다. 의심하는 만큼 보는 관객들의 눈이 높아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법 복제물까지 판을 쳐 영화 산업은 오랜 기간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CJ 내부에서 잘못된 판단과 투자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흑역사를 탈출하기 위해 체계를 바로 잡았다. ‘인하우스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작투자 회의도 활성화했다. 보다 안정적인 영화 선구안 시스템이 마련되자 위에서 언급한 노력의 결실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울 점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면, 중천(2006)에서 쌓은 경험은 전우치(2009)에서 빛을 발했다. 개똥망 중의 개똥망 영화인 7광구(2011)에서는 CG의 가능성을 찾았다. 이런 실패 경험의 사용처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어떤 부분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기업마저 최고가 되는 과정은 개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3가지 배울 점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갈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다. 기본자세가 튼튼하기에 CJ는 영화산업뿐 아니라 TV와 한류 문화까지 꽉 잡은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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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책을 자기계발서처럼 읽어서 이 감상문도 자기계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경영서이며 기업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는 CJ에 대한 궁금증에 이 책을 읽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번이면 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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