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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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_067p.

9시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씻고, 출근 완료. 대충 아점을 먹고 점심 장사를 정리하고 오후 장사를 준비하다 보면 저녁 장사 시간 잠시 한가한 시간 저녁을 먹고 마감 준비를 하고 퇴근 완료하면 대략 저녁 10시쯤? 씻고 빨래 돌리고 방에 자리 잡고 앉으면 대략 늦은 11시쯤이 된다. 그 시간부터 새벽 3~4시까지 책도 읽고, 유튜브, 드라마도 보다가 누우면 기절할 정도가 될 때까지 버티다가 잠이 드는 패턴이 하루 일과가 된다.

저자 김진영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 임종 3일 전 섬망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일기 234편의 글들을 추석 연휴 일하는 짬짬이 아껴 읽었다. 투병하면서도 글쓰기와 생각하기를 놓지 않았던 건 생생한 삶의 곁에 기대어 버티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었을까? 탓함 없이, 이렇게 살았구나 무던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때론 쏟아내면서 비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기록하기를 놓지 않았던 저자의 삶을, 글자락을 늦게나마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흘러 돌아본다면 내 삶은 무엇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저 살아가고 있는 내 시간이 미안해지는 책이기도 했다. 그저 읽어내는 게 다였다. 책을 다 읽고도 며칠이나 뭐라 이야기해야 할까 열었다 덮기를 열 번도 더 했던 책이기도 했다. 그저 읽기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을 구입했다.)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_012p.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_014p.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_024p.

공간들 사이에 문지방이 있듯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 시간의 분류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 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런 목적도 계획된 쓰임도 없는 시간. 오로지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매던 생을 이 공백의 시간 안에서 발견하고 놀란다. 다가오는 입원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판결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_055~056p.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_125p.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_145p.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_242p.

#아침의피아노 #김진영 #이별의푸가 #낯선기억들 #에세이 #에세이추천 #유고집 #한겨레출판 #내돈내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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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말들 - 단단한 일상을 만드는 소소한 반복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은경 지음 / 유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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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자꾸 스스로 묻게 된다. 내게 어떤 좋은 습관이 있고 어떤 나쁜 습관이 있는지 곰곰 생각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자주 하고, 어떤 행동을 싫어하면서도 되풀이하고, 어떤 행동을 하길 원하는가, 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니 그 결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_167p.

순간 튀어나오는 말, 행동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또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똑같은 행동을 반사적으로 먼저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김은경 저자의 발췌 문장과 짧은 에세이들을 아껴읽으며 읽어보고픈 책들과 내 습관들을 되짚어보게 되는 글이다. 깨끗이 읽어야지 했던 책은 어느새 연필을 들고 밑줄을 긋고 생각들을 이어 써보기도 했고, 짧은 문장은 기록해보기도 했으며 읽어봐야겠다 싶은 책은 따로 기록해두기도 했다. 지나온 시간들이 습관이 되어 지금 나의 모습이 되었다면, 앞으로 나의 모습은 또 어떻게 바뀌어 갈까? 나이 들어가며 바랬던 나를 생각하는 한편 미루고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단단한 일상을 만드는 소소한 반복'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뭔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글이다.

습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졌다는 말은 되풀이하는 딱 그만큼의 시간을 어떤 행동에 사용했다는 의미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얼마만큼이 습관적인 행동으로 채워질까? ... (중략)... 매일이 모여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는 되었으면 좋겠다. _10~11p.

"매일매일 기록해요. 일정이나 그날의 일을 간단히, 모두 기록하고 그래도 칸이 남으면 그날 읽은 책의 구절로 채워요." '소소책방' 책방 지기인 조경국 작가의 다이어리 활용법이다. ... (중략)... 누군가의 습관이 부러울 때 부러움과 함께 좌절감이라는 감정까지 밀려올 때가 있다. 좌절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단어까지 들먹이는 건 '시간'때문이다. '쌓인 시간'이 이룩한 것은 어떤 노력으로 한 번에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 깊은 좌절감을 준다. _51p.

"후회? 그런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또 그럴 것 같아. 그래서 후회는 안 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뭐 하러 쓸데없이 뒤돌아봐 하는 쿨함인 줄 알았는데, 어차피 되돌릴 수 없어서 가졌던 단념의 마음이었나 문득 되돌아본다. "사람은 같은 실수밖에 하지 않아요."라는 사노 요코의 말은 참 뜨끔하고 따끔하다. _65p.

문득 내 일상의 무의식적인 행동도 그렇게 의심스러울 것 하나 없이 단순하고 명료했으면 싶다. 좀 단조로워 보여도 그렇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너무 당연한 행동으로 채워지는 날들이라면 좀 평안하지 않을까? _89p.

꾸역꾸역 거듭거듭 습관적으로 '써야' 몸의 근육이든 글쓰기 근육이든 단단해진다. _165p.

#습관의말들 #김은경 #에세이 #에세이추천 #유유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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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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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웬만한 세상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불혹이라 부른다는데 도대체 누가 그딴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봐. 보고 있나? 나 엄청 흔들리고 있다고! _프롤로그

늘 책을 쌓아두고도 새로운 책들을 찾아내고 또 쌓고 읽으면서 책 이야기를 하는 내가 조카는 신기했나 보다. "이모는 어릴 때도 책을 좋아했어요? 지금처럼 시간만 나면 책을 읽고 책이 좋았어요?", "이모는 책이 왜 좋아요?" 등등 문득 생각나는 질문을 툭툭 던지는 조카님. 어릴 땐 책도 곧잘 읽었는데 핸드폰을 손에 쥐고, 틱톡, 유튜브, 게임 등 영상을 접하기 시작하며서 종이로 뭔가를 읽는다는 게 아이에겐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나 보다. "이모 요즘은 책도 유튜브에서 줄거리 정리해서 다 알려주는데요?", "이모도 유튜브 해보면 어때요? 책 많이 읽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조카는 게임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 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얼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조카와의 대화는 유치한 장난부터 공부, 미래의 꿈까지 대화의 주제가 다양하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많이 하며 커와서인지 13살인 지금도 참 살갑고 다정한 아이.

조카의 삶에 관심이 많고 자꾸만 이야기하고 싶은 건, 지금 나와 같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도 열심히 사는데?) 조금 더 나은 삶,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뭘까? 열심히 살았지만 왜 이것밖에 안되는지 기준에 기준을 더하다 보니 이번 생은 글렀다는 말이 버릇처럼 튀어나오기도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2년째 책장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자리를 지키던 책이었다. 올 추석에도 읽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내 마음이잖아? 내 모습이잖아!' 하며 읽게 되었다. 계절마다 표지 리커버를 하며 출간되는 이유가 있었구나, 진작 읽을 걸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가끔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 어릴 때 조금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그 순간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조금 달랐을까? 나를 자책하며 살았는데, 꼭 그렇지마는 않았구나!라는 위로와 함께 '이 정도는 돼야 한다'라는 기준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 의외로 괜찮네. 내 인생!

이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월세에 살고, 자동차가 없지만 불편하거나 비참하지 않다.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한심하게 보니 나 좀 비참해지려고 한다. 아니, 확실히 비참하다. 원래는 비참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그렇다니 좀 그렇다. 이건 내 삶인데, 내 기분인데 왜 타인의 평가에 따라 괜찮았다가 불행했다가 하는 걸까? _37p.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_50p.

늙어서 놀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지금 놀고 싶은데, 내가 처음에 찾은 명분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미션 임파서블.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 ... (중략)... 욕망에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놀고 싶으면 놀아야지. 명분은 그다음에 찾자. _86p.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결국 이런 마음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드는 것이다. 무인도에 혼자 있게 된다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따위가 들 리 없다. 자꾸 혼자 있고 싶어진다면 그만큼 인간관계로 힘들다는 이야기다. 혼자 있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다. 인간관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시간. _114p.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_218p.

혹시 지금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면 아마도 뒤처진 게 맞을 거다. 하지만 뒤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인정하자. 우린 뒤처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뻔뻔함이 너무 좋다. _224p.

#하마터면열심히살뻔했다 #하완 #에세이 #에세이추천 #웅진지식하우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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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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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낯설고, 낯서니 거부하고픈 마음이 앞서기 마련이다. 미술도 그랬다. 스치고 지나치자니 왠지 내 등 뒤를 서성이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게 했던 미술은 문학 작품 속에서, 혹은 영화와 철학, 역사 등 도처에서 은유로, 수사로 등장하며 나를 유혹했다. 뜻밖에도 미술은 모르면 안 보이는,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좋아지는 매력적인 신세계였다. ... (중략)... 낯선 마음으로 시작했건, 이미 빠져들기 시작해 호기심을 가득 안고 시작했건, 이 책이 당신에게 미술과 함께하는 새로운 365일을 선사했으면 한다. _에필로그

하루 한 페이지씩, 1년을 읽으면 365점의 그림과 지식을 만날 수 있는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는 작품, 미술사, 화가, 장르·기법, 세계사, 스캔들, 신화·종교 등 총 일곱 분야의 지식을 요일별로 편집해 폭넓은 미술을 다양한 분야로 접근해볼 수 있다. 관심 있는 주제부터 접근해도 좋지만 책의 순차대로 읽는 은근한 집착이 있는 나는 순서대로 읽어보았다.

이 그림 앞에 앉아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10년은 행복할 것이다. _ #빈센트반고흐

늘 관심 두고 있는 분야이기에, 전시회, 미술에 관련한 관심 가는 도서들은 찾아서 읽는 편. 특히 미술에 관련한 에세이는 애정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명화, 미술사, 예술가, 회화 양식, 역사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시대적 명화, 작품의 뒷이야기, 전설 등 미술 하나에서만 파생되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하나의 작품과 이야기를 읽으며 궁금한 부분은 더 찾아 확장해볼 수도 있는 '오늘 나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2번째인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명화 한 점에 실린 글은 짧지만 재미있으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 줄 관심 확대범!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 권쯤 소장해두고 온 가족이, 또는 미술이 궁금하다 싶은 이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읽기만하면내것이되는1페이지미술365 #김영숙 #미술 #미술사 #오늘나를위한인문학시리즈 #비에이블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추천도서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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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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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이야, 캐릭터 문제야."

"뭐라고?"

"장르를 잘못 택했단 말야. 칙칙한 호러물이 아니라 마구 달리는 소년 만화여야 했다고. 그랬으면 애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그 꼴로 다치지도 않았을 거고."

"만화가 아니야."

"그렇게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내가 한번 그려 봤지."

강선이 스케치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교복을 입은 은영이 5등신 정도 되는 비율로, 치마는 좀 짧아진 채 그려져 있었다. 5등신이 기분 나쁜지 멋대로 치마를 잘라먹은 게 기분 나쁜지 얼떨떨했다. 그 그림 속 은영의 한 손에는 무지개 깔대기 칼이, 다른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은영이 뭐라 반응하기 전에 강선이 의자에 걸려 있던 커다란 가방에서 정말로 깔대기 칼과 비비탄 총을 꺼냈다. 낡고 흠집이 있는 게 분명 강선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인 것 같았다.

"도구를 쓰라고, 멍청아."

"아."

"다치지 말고 경쾌하게 가란 말이야."

"하."

"코믹 섹시 발랄? 아무래도 섹시는 무리겠지만."

...(중략)... 캐릭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르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우개가 명중하는 순간 은영은 예감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은영은 사실 강선의 설정인 셈이었다. _192~193p.

딱히 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도 많았고, 쌓아둔 책이 많아서 미루고 미루던 책이었다. '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겠지?'라는 마음이 더 컸는데 우연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 시작을 앞둔 <보건교사 안은영> 예고편을 보고 만 것이다. 정유미, 남주혁 주연의 드라마라니! 일단 원작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온라인 서점을 뒤적, 어머나!!! 일러스트레이터 람한의 작업은 너무나 찰떡!

보건교사 안은영,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젤리 형태로 보이는 그것과 싸운다. 안은영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겐 이런 안은영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처음에 착하게 사는 만큼 자신에게도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는 삶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능력에 보상하겠다는 이들은 대게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소설이나 현실에서나 이런 능력을 알아보는건 언제나 나쁜쪽이 먼저 인듯!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무지개 깔대기 칼을 들고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생한 이야기들은 이미 주연 배우들이 이미지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을 상상하며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 수록된 10편의 이야기중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금방 빠져들 것이다. 유쾌, 발랄, 감동, 살짝 로맨틱. 호로록 빠져드는 「보건교사 안은영」. 시즌 2 기대하면 안될까요?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있다. 출근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색 늘어나는 깔대기형 장난감 칼이 들어 있다. 어째서 멀쩡한 30대 여성이 이런 걸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하나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아서겠지. 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_18~19p.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_123p.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_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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