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사형제인 우리는 북적이며 노는 걸 즐겼고, 넷이다 보니 가끔 둘, 둘이 편이 되거나 한 명을 세명이 따돌리기도 했었다.  같이 커가는 나이었음에도 가끔 거짓말을 진담처럼 하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다 보니 진짜 그렇게 이루어지기도 했었고 실제로 사고 비슷한 걸 경험한 이후 '진담 같은 거짓말 놀이'는 하지 않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병원에서 코마 상태로 깨어난 앰버는 정신은 깨어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앰버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앰버는 의식과 감각만 살아있는 채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려 애쓴다.  청취율 1위 프로그램 <커피 모닝>의 보조 진행자였으며 남편인 폴과 동생 클레어의 관계를 의심하던 중이기도 했다.  옛 연인이었던 에드워드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고, 예전과 달라진 그의 모습에 아주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



'매들린 작전'은 지금까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모두들 온라인상에 퍼진, 매들린이 <커피 모닝>을 떠난다는 소문에 대해 쑥덕거리고 있다.  내가 만든 거짓 소문이 제대로 퍼진 것을 확인하니 기쁘다.  거짓말도 자주 하면 사실로 보일 수 있다.  /p77

현실과 꿈을 분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현실도, 꿈도 다 무섭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도, 지금이 언제인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아침이 왔다는 구분이 깨지자 오후도, 저녁도 다 깨진다.  내게서 도망간 시간을 되찾고 싶다.  시간에는 고유한 냄새가 있다.  친숙한 방처럼.  시간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닐 때, 갈망하고 군침을 흘리며 갈구하게 된다.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시간을 가질 때까지 몇 초 훔치고, 몇 분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빌린 시간들을 하나로 모아, 더 늘어나길 바라며 섬세하게 고리로 연결한다.  그 시간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길어지면 좋겠다.  다음 페이지라는 게 존재한다면.   /p91


크리스마스 며칠 전, 매들린이 담당 피디에게 더 이상 자신과 일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전해 듣고는 조와 '매들린 계획'이란 걸 세우게 된다.   폐쇄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앰버가 방송국, 라디오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설정도 독특했지만 조금은 강박인 것 같은 그녀의 일상 상활에서 보이는 행동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현재, 과거의 일기장, 그리고 며칠 전의 이야기들이 병행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매들린이 자신에 대해 한 이야기와 브라이언과의 만남, 그리고 폴과 동생 클레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녀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몰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사무실에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살핀다.  눈을 깜박거리는 게 모두들 근심 걱정이 있어 보이고, 많은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변화무쌍한 바다 위에 가만히 떠 있기 위해 모두 모여 선헤엄을 치는 것 같다.  이들은 내 친구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우리 모두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짜 내 모습을 모른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른다. /p164~165

어린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좀 더 빨라지고 좀 더 시끄러워지고 좀 더 고독해졌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달리, 우린 변하지 않았다.  역사는 거울이고, 우리는 애들이 어른으로 변장한 것처럼, 그저 나이만 더 먹었을 뿐이다.  /p315

우리는 모두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 갈 곳이 없으니까. /p413


일기장의 내용이 현재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계속 등장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중반 이후부터 마지막 결말은 정말 뒤통수 강타!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책을 읽다 내가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목덜미의 오싹함과 명치에 걸린 쳇증과도 같은 뒷부분은 3번 이상 되풀이해서 읽기도 했다.   어느 순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진실 같은 거짓말에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광기, 배신, 집착, 살인이 어우러진 <원래 내 것이었던>을 읽으며 즐거운 추리를 해보시길...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나는 아니라고 했어.

물론,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해.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지.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간비행 夜間飛行 - 홍콩을 날다
이소정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2047년,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홍콩이라는 유통기한 짧은 단편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보길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 홍콩은 수천 개의 유기물이 용솟음치는 작은 용암이며, 거대한 비디오아트이며, 온갖 언어와 냄새와 표정과 추억이 떠다니는 섬이다. /p7


17~8년전쯤?  아마도 첫 해외여행지가 홍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자유여행이라는 개념이 많지 않았던 터라,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왔던 홍콩.  짧은 시간 많은 관광지를 둘러봐야 했고 하필, 최고 습하고 더웠던 계절에 다녀왔던지라 홍콩의 기억은 침사추이 구룡베이의 야경, 명품거리, 리펄스베이 해변, 그리고 다닥다닥 한 상가와 아파트로 기억에 남았다.  짧은 일정에 열심히 다녔지만 그래도 못 본 곳이 많아서 곧 다시 가야지 생각했던 게, 생각만 하고 가보진 못한 채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버리다니...



야간비행을 택한 이유는, 새벽의 고요한 홍콩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새벽 세 시쯤 도착한 홍콩은, 내가 제일 먼저 이 땅에서 눈떠 움직이고 있다는 묘한 쾌감을 가져다줬다. 공항에서 벗어나면, 그제서야 막 하루가 시작된다. 그동안 수없이 다닌 홍콩행의 반 이상은, 이렇듯 야간비행이었다. /p17


여행 에세이스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애정 하는 여행지가 있는데, 이소정 작가에겐 홍콩이 그런 도시였다.  2047년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되는 해.  그럼 홍콩이 홍콩이 아니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빠져 살았던 중국 영화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금성무, 양조위, 홍금보, 장만옥, 장국영, 주윤발 그리고 여명... 참 좋아했는데...


사실 해마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들이 늘고 있어서, 홍콩은 한 번 가봤으니 됐다, 고 생각했다.  매년 가고 싶어 늘어나는 여행지를 다 갈 수 있는 만큼 금전적인, 시간적인 여유가 되지 않으니 추리고 추리다 보면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들을 먼저 꼽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소정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알던 그 홍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그리고, 오래전 봤던 영화들도 새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책에 실린 사진과 글을 읽으며 항공권 검색을 해보고 있다.  뭐, 검색은 해볼 수 있으니까...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되기 전에 한 번은 그대로의 홍콩을 느끼러 가봐야겠다.



화려한 한때에 올인하길 원하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용기의 양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비난하고 부러워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폭주하는 사람들을.  그러나, 살면서 그런 사랑 한 번쯤 해보고 받아 보았는지 되물어보기로 한다. 추억 하나 없이 금침대에서 쾌적하게 죽는 말년보다, 어쩌면 영화 같은 페이지 하나쯤 가슴에 간직하고 쓸쓸히 작렬해 버리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또 오지 않으니까, 죽도록 간절하게 영화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남기고 싶다. 이야기로, 사진으로, 글로, 일기로, 공익광고에 나오는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보다, 두려워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p116~117 #총총나년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삶을 은유하는 영화 그리고 여행
박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개의 여권에 500여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지만 다른 세상이 궁금한 작가 박준.   길 위의 여행자인 그는 책과 미술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 <여행자의 미술관> 이후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로 돌아왔다.  영화를 즐겨보던 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 영화랑은 좀 멀어지게 됐다.  가끔은 혼자 영화도 잘 보러 다니곤 했는데, 극장을 가야 한다는 게 번거롭게 생각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뉴욕이건 클리블랜드이건 마이애미이건 이들에겐 다 똑같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세계 바깥을 떠돌 뿐이다.  낯선 세계로 떠나기만 한다고 다 좋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가난한 이들에게 종종 모질다.  어쩌면 세상의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다.  누군가에겐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그건 아주 운 좋은 일이다.  동경을 품고 낯선 세계를 찾아갔지만 창밖에선 누군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거나 슬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끊임없이 사이렌 소리나 총소리가 울릴 수도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다른 세계 얘기다. /p018 #뉴욕, 천국보다 낯선

리스본에서 마지막 여정은 '마르디뇨 디 아르카다' 카페다.  리스본의 몽상가,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단골로 드나들었던 카페다.  카페 한 편에는 중절모를 쓰고 타이틀 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의 시는 쉽게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잘 될 거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추측이지만 여행 후 삶이 간단히 바뀔 거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 같다.  몽상가인 그에게도 인생은 기쁨보다 슬픔에 가까웠을까?  /p098 #포르투갈리스본 ,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 위주의 이야기겠지? 하고 책장을 몇 장 넘기다가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와 읽어본다.  어? 영화 이야기 맞는데 여행 이야긴가? 영화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저자의 여행 에세이와 영화의 이야기가 적절한 비중으로 어우러져 새로운 영화를, 여행길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 여행지들의 2/10는 대부분 모르는 장소, 영화였지만 전혀 모르지 않으니 모른다고도 하기 애매한 어설프게 알고 있어서 더 궁금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에전부터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떠나버렸어요.  그것도 즐겁게 말이죠.  너무 이기적이야, 도대체 왜 나를 일본에 버려두고 여기에 혼자 온 거지?" 

사요는 따지지만, 엄마 쿄코는 미안한 기색 없이 또박또박 말한다.

"어쩔 수 없잖아.  스스로 결정한 거니까.  사는 데 우연이란 없어.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거야.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아.  어른이든 아이든 똑같아.  사람과 사람이 늘 함께인 것만이 좋은 건 아닐 거야." /p147 #태국치앙마이 , 수영장

달이 조금만 더 높이 떠올랐으면, 달빛이 그처럼 밝지 않았으면 달무지개를 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날 밤, 내가 맨눈으로 뿌연 빛만 보고, 달무지개를 거의 보지 못한 것도 자연스럽다.  낮에 보이는 무지개와 밤에 보이는 무지개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 눈으로 보고 느끼기에 달빛은 워낙 약한 탓에 무지개의 색이나 형체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희마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안 보인다 해도 괜찮다.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빌려서야 겨우 볼 수 있다.  달부지개의 매력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다 보이면 달무지개가 지금처럼 신비하고 고귀하게 여겨질까? <하와이언 레시피>의 비아는 이렇게 말했다. 

"쉽게 볼 수 있으면 봐도 고맙지 않아요." /p219~220 #하와이 호노키아,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하와이안 레시피


여행과 영화는 다르지 않다, 는걸 박준 작가의 글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상영관의 어둠 속에서 감상하는 영화를 보며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여행도 영화만큼이나 많은 생각의 갈래들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꿈을 꾸기 위해 여행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은 일상에서의 일탈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맥락에선 비슷하게 생각되니까... 영화를 다 알고 봤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글로 읽었으니 궁금한 영화를 하나둘 찾아보고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여기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꾼다.  스물일곱 편의 영화에 찍힌 바람의 지문을 좇는 여정을 읽다보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영화가 안내하는 낯선 세상을 읽는 동안 상상 속에 즐거운 책 읽기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 부탄에 사는 남자를 만났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부탄에만 가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티베트에는 이런 속담이 전해진다.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 행복을 가꾸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고통을 줄 것이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다.  /p247 #부탄 , 중국 샹그릴라 / 나그네와 마술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작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읽을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애정하는 작가님의 글이니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빠져든다.   한 겨울의 강원도 북현리, 해원이 돌아왔다. 호두하우스 펜션으로 가는길에 발견한 작은 독립서점을 보고 관심을 보이지만 멀리서 해원의 모습을 본 은섭은 아쉬운 숨을 삼키고...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오래 떨어져 지내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건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일까. /p49

...H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빌려 갔다.  그녀가 그 책을 좋아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할 수 없겠지.   가끔 생각한다.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을 열 번 읽는 편이 더 많은 걸 얻게 한다고 내겐 이 책이 그랬다.  두더지가 떠나왔던 자기 집을 눈밭에서 만나는 장면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사실은 패트릭 벤슨의 삽화 버전을 가장 아낀다.  다시 만난 집 처마 밑에 등불 하나가 걸려 있는 그림.  그 삽화가 그립지 않았다면 나도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책들이 듣는 데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셰퍼드의 삽화도 좋다.  황희 정승이 검은 소 이야기를 귓속말로 했던 것처럼, 책에도 그림에도 귀가 있다. 

밤이 깊었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굿나잇책방 블로그 비공개글   /p63


서울에서의 고단한 삶을 잠시 쉬어가고 싶어 돌아온 호두하우스.  이모가 예전 같지 않고 펜션에도 더이상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 이리저리 움직였던 해원인데 이모랑은 자꾸만 마찰이 생기기만 하는 것 같다.  은섭이 기와집 굿나잇책방의 주인이란걸 알고 드나들다가 겨울동안 스케이트장 일을 보느라 서점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걸 알고 본인이 해보겠다고 하는데...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섞여 있는 진짜와 거짓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니까.  언젠가 장우 녀석이 자기는 진실과 거짓을 칠 대 삼 정도로 섞어서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곤란한 일이 생겨도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p119

"나는 그 말이 싫어, 오해라는 말." 

두 남자의 동작이 멈췄다. 

"뭐가 오해야?  그냥,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실수였다, 미안하다 그러면 되는 거지.  오해하셨네요,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봅니다, 오해를 풀어드리려고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까? 

장우는 새삼 술이 깨는 눈빛이었다. 

"누가 뭘 오해했다는 건데, 그건 두 번 상처 주는 거야.  오해할 만큼 이해력이 모자랐거나 독해력이 떨어졌거나, 의사소통에 센스가 없어서 혼자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거 아니잖아,  오해는 없어, 누군가의 잘못이 있었던 거지.  그걸 상대방한테 네가 잘못 아는 거야, 라고 새롭게 누명 씌우지 말라고."  /p132

혼자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고, 외로움에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대하는 바가 적을수록 생활은 평온히 흘러가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게 생기는 건 괴롭다.  /p191


젊어서 소설가였고 여행가였던 이모는 호두하우스 펜션에 정착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도 여행을 하지도 않는다.  다른 이의 일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해원은 무심한듯하지만 여린 사람이고 은섭은 고요한 듯 고치같이 자신만의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작은 시골마을 굿나잇 책방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자신의 어린 시절 비밀을 절친에게만 이야기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온 학교에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말도 없이 절친이었던 보영을 피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마주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해원에게도 충격이었지만 그녀들의 관계를 통해서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면 다른 건 돌아보지 않는, 내가 상처받았으니 다른 이야기는 더 듣지 않겠다는 차단을... 어쩌면 이런 내 행동으로 상처받았고, 이야기도 해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의 사랑은.... 눈송이 같을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하나 둘 흩날려 떨어질 땐 아무런 무게도 부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마을을 덮고 지붕을 무너뜨리듯 빠져나오기 힘든 부피로 다가올 것만 같다고.  그만두려면 지금 그래야 한다 싶었지만 그의 외로워 보이는 눈빛에서 피할 수가 없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은섭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싱긋 웃었다.

"그래.  가보자.  너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

혜원의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그는 마치 어떻게 돼도 좋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웃고 있어도, 그 눈빛에서 그가 누구보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애초에 상처받을 만한 일들을 다 차단한 채 살아왔다는 걸.  그런 은섭을 그녀가 지금 흔들어놓고 있다는 것을. /p198~199

"연애가 나쁜 게 아니고요, 뭐랄까 저 사람들은 고독이 필요해서 온 거거든요?  딱 보면 그렇잖아요.  저는 알 것 같던데." 

해원이 되물었다.

"그래 보였어?  고독이 필요한 사람들처럼?" 

"네, 사랑 - 그거 별거 아니에요."   /p238


짧은 시간이지만 해원이 은섭을 인지하고 그에게 빠져들게 되었던 건, 책을 읽다 보면 그냥 알게 된다. (은섭이 해원을 해바라기한 시간이 꽤나 길었다.)  그의 사랑은.... 눈송이 같을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하나 둘 흩날려 떨어질 땐 아무런 무게도 부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마을을 덮고 지붕을 무너뜨리듯 빠져나오기 힘든 부피로 다가올 것만 같다고.   굿나잇책방을 운영하며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은섭이 남기는 글들을 읽는 건, 비밀 연서를 읽는듯한 두근거림으로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되고 책방 운영과 책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나 좋았다.  작은 책방 운영에 대한 어려움도 있겠지만, 한번쯤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



잘 자요.  내 침대에서 잠든 사람.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p278

"내가 가장 두려운 건,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거나 실패하는 게 아니야.  농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게 제일 두려워.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농담이 안 나와서 그래.  너를 웃겨줄 말이 생각이 안나서."  그러고는 낮은 한숨과 함께 고백하듯 말했다.

"널 사랑해.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p382


겨울, 깊은 밤 새벽 소담히 내리는 눈처럼, 그 눈이 겨우내 쌓이다가 한파, 폭설이 되어 꽁꽁 얼어붙었다가 봄바람에 조금씩 녹아내리고 어느새 따스해진 기온에 꽃을 피워내는 시간은 겨울과 봄 사이 두 계절 사이의 이야기는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듯한 기분이었다.  애틋함이나 깊은 애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일상 속의 덤덤함 속에 조금씩 삐져나오는 뾰족함과 애정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더 짚어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사서함110호의 우편물>과 나란히 놓아두어야겠다.  아마도 이 글을 읽은 분들은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동네에도 '굿나잇책방' 같은 작은 서점이 있었으면, 은섭같은 주인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깊어가는 여름을 지나가던 시간 책장을 덮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지만 난 은섭과 해원이 지나온 겨울과 봄 사이의 시간에 있는듯한 어디 즈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안착할 세상의 어느 한 지점.  내가 단추라면 딸깍 하고 끼워질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내가 존재해도 괜찮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는,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그 마음이 흔들리곤 하지만.  /p388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만나지 말자는 소리네."

"왜 또 그런 소리가 돼"

해원이 짜푸렸지만 명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씨가 언제 좋아지는데.  추위 끝나고 봄이 오면?  꽃 피고 새울면?"

"그런 거지, 뭐.  겨울 지나고... 따뜻한 바람 불면서 봄이 오면."

"그럼 미세먼지를 끌어안고 황사가 오겠지.  봄 내내 뿌연 하늘이다가 겨우 먼지 끝나면 폭염에 장마가 오겠지.  그냥, 만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날씨 좋을때 보자.....난 그런 빈말 싫더라." /p2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재인의 말하기 - 세련된 매너로 전하는 투박한 진심
김범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재인 대통령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주변이 별로 없다 싶은데, 이유 없이 신뢰감이 간다.  딱히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지지율은 오히려 대선 후보 시절보다 훌쩍 올라, 1년 이상 70퍼센트 내외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문재인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야 할 법하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시작하며


실로 하수상한 시국이었다.  그 어느 시대 대통령보다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그냥 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그가 하는 행보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들은 많은 이들이 필사하고 sns를 타고 전파되고,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다.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전을 보게 되면서 '칭찬이란 이렇게 하는 것!' 이란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그의 말하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하기 전문가 김범준이 그동안의 대통령 연설문들을 토대로 "세계 최고의 협상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말한다.



자기소개를 잘 해서 돋보이고 싶다면 문재인 대통령처럼 일단 상대방과 나 사이의 공통점을 부각해보라.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한 후, 그 공통적인 부분을 내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포인트다.  /p25 


나를 높이는 말의 기본기/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 목적이 이끄는 말하기 / 말수는 적게, 눈빛은 강력하게 /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좋아진다 글은 총 5장으로 나누어 이어진다.  그동안의 연설문을 토대로 나누어진 글은 새삼 울컥하기도 했고 글에서 진심이, 마음이 느껴져 책에 전문이 수록되지 않은 연설문들은 해당 연설문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www1.president.go.kr/c/president-speeches




모든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갖는다.  하물며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리더의 말은 더하다.  그래서 리더의 말은 그 누구의 말보다 '정확해야'한다. /p61

문재인 대통령은 말할 때 쓰는 문장의 호흡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쉬운 대신, 다소 어눌해 보이기도 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미리 준비한 연설 등을 할 때는 짧은 문장 사이사이에 긴 문장과 중간 길이의 문장을 섞어 강약을 주고, 말 전체에 긴장감과 리듬감을 부여한다.  /p72

칭찬을 할 때, 축하를 보낼 때, 위로를 건넬 때,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만으로 오히려 더 상대방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내가 더 신경 써서 이야기를 건넨 듯한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  효과는 좋으면서, 따라하기 어렵지도 않은 아주 훌륭한 팁이다.  /p100

'매너'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매너란 '일상에서의 예의와 절차' 혹은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릉 말한다.  매너는 누군가를 전제로 한 관계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나는 매너라는 말에 '방향성'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싶다.  매너란 누구를 향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보다 강한 사람, 나이가 더 많은 사람, 윗사람에게 매너가 없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나보다 약한 사람, 나이가 더 적은 사람,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쓰는지, 그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태도로 다가가는지가 매너의 참된 의미를 완성시킨다.  /p206


평범한 말로 강력한 설득력을 얻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화려한 수식어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에 위로를 받고, 생각을 바꾸고, 결국 그의 편이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말하기 스타일과 그 스타일이 대단히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중하게 다가가 부드럽게 압도하는, 적까지 무장해제 시키는 문제인의 언어.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으며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매너'를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대통령의 사생팬은 아니지만, 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팬심이 있는 사람인지라 읽으면서 새삼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 그동안의 행보도 눈부셨지만, 앞으로도 살고 싶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시길 바라본다.



 사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말들을 다루려 했지만, 쓰면 쓸수록 "대단하다"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러 번 퇴고를 하면서 최대한 그런 부분을 줄이려고 노력했으나, 멋진 말이나 표현이 많아 쉽지 않았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김범준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