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협찬
#여름이긴것은수박을많이먹으라는뜻이다 #쩡찌
#과일 #띵시리즈
밤 골목의 소리가 풍성하게 무르익고, 서먹한 냄새를 무심결에 좇지. 어둠에 젖어 검은 잎사귀들. 윤곽은 무성해 바로 옆까지 다가온 것 같아. 어두컴컴한 아스팔트. 낮의 뜨거움이 끈질긴 권유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수박이 맛있어진다. 이것은 둥근 여름의 홀케이크 이야기이다. _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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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눈 위를 걷는 방법이란, 귤을 까먹는 것이었다. 귤의 꼭지에 엄지를 세워 넣고 천천히 밀면 귤의 속살과 껍질이 벌어지며 꼭 눈 위를 걷는 소리가 났다. 소복하게 살짝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히 촘촘한 조직을 가르는 소리. 눌러서 만지는 소리. 어루만지면서 다가오는 소리. 겨울방학. 서울의 할아버지 댁에서 걸었던 그 눈길의 소리였다. _158~159p.
<땅콩일기> 의 쩡찌작가, 띵 시리즈에서 과일로 에세이를 출간했다. 제목이 이렇게나 길 수 있을까? 싶은 <과일 : 여름이 긴 것은 수박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라는 제목의 첫 산문집.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 저자의 과일 산문집에는 가족, 사랑, 계절, 주변과 사람의 이야기가 흐르며 개인의 삶도 과일을 애정하는 만큼이나 깊어져간다. 과일을 애정하는 본인을 오랑우탄이라 칭하면서 과일에 대한 애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글들은 읽다 보면 문득 어떤 과일이라도 먹으며 읽어야 할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사계절 중 그나마 여름을 애정하는 편인데, 계절과일인 복숭아와 포도, 참외를 애정하기 때문이랄까? 복숭아는 식사 대신 복숭아로 끼니를 때워도 좋을 정도라 여름이 가기 전 한 개의 복숭아라도 더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저자의 과일에 대한 애정이 에세이들이 더 공감 갔는지도 모르겠다. 과일에 대한 주제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꽉꽉 눌러 담은 글은, 뜨겁고도 지치게 하는 긴긴 여름,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할 달고 시원한 과일들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내일은 커다란 수박을 한 통 사야지! ㅎㅎ)
흠집과는 자주 '못난이 과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판매되었다. 못났지만 맛있어요. 나는 그게 싫었다. 맛있지 않아도 돼. 그냥 네 맛대로 있어. 상처는 못난 것과 다르다. 못났다고 한다면 못난 대로 살아가도 돼. 그것은 내가 증명한다. 때로 살아 있는 일 자체가 나의 증명이 된다. 상처에 관한 한은, 역시 그랬다. 나는 증명하고 있었다. 잘 놀라고 상처받으면서.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면서. 약간만 배우고 많이 잊으면서 나는 살아 있었다. 결과 (結果)는 열매를 맺는다는 말. 나는 지금도 상처받는다. 상처는 때로 작아지고 영원처럼 보존되기도 한다. 그런 상처를 입은 채로 살아 있다. 그래도 돼. 그렇게 살아가면 돼. _59p.
메로나와 멜론이 같은 맛인 줄 알았어? 그걸 꼭 먹어봐야 알아?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꼭 당해봐야 안다. 겪어야만 알아. 겪어도 잘 모를 때가 많아. 비참도 사랑도 나는 전부 당하고야 알았다. _106~107p.
날씨 인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업무로 알게 된 상대에게도 건네기 쉽지만 과일 인사는 대상 범위가 꽤 좁다. 일단 상대가 과일을 즐기는지, 혹은 알레르기가 있지는 않은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올해 첫 수박 드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넬 수는 없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올해 첫 딸기 드셨어요?"인사를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과일 인사를 할 수 있는 상대란, 그 자체로 나름의 친밀과 유대가 있는 관계로 한정된다.
애초에 과일 인사에는 친밀과 사랑, 그리고 염려가 있다. 과일 잘 먹고 있니. 식사 외에 과일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니. 계절이 주는 선물을 제철에 누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계절을 느끼고 있니. 느낄 수 있니. 나무와 풀의 열매를 먹으며 너도 그렇게 지상에 뿌리박고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_189~190p.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추천 #에세이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