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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산티아고에 관한 여행서는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활자가 빼곡한 여행에세이는 처음 만난것 같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현대 작가인 '세스 노터봄'이 애착을 갖고 있는 스페인을 수차례 방문하며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한 글이라고 한다.  53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감이 책을 읽기 전 살짝 망설이게 하지만 그동안 내가 읽어 왔던 에세이와는 다르다.  이것이 작가의 역량일까?  역사, 예술, 그리고 그 지역의 문학사까지 자칫 어렵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써내려 간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곳을 함께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내가 방금 한 백 줄로 간추린 역사가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것이고, 글로는 쉽게 적어 내렸지만 그 모든 변화와 변형이 실제로 구체화 하는 데 여러 세기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알맹이는 그대로다. 그래서 돌바닥을 스치는 가죽신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고 수도사는 내게로 다가와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  그는 거의 천년 전에 베네딕투스회 형제들이 입었던 옷과 똑같은 하얀 수도사복에 검은 어깨옷을 걸치고 있다.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나는 죽음과 재앙이 미치지 않는 타임캡슐을 타고 흘러간 중세의 밑바닥을 보고 왔다.  중세 사회는 이곳에 살아남았다.  중세 수도원의 생활 방식은 접시에 담긴 순수 배양균처럼 현대에도 살아남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바로 그런 중세의 세계다. /p23-24

 

 

 '산티아고' 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여행지 이지만 개인적으로 "꼭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여행지에 대한 설레임이 없는 이유는 그 곳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노터봄이 산티아고를 가는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그 길위에서의 역사,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양식과 미술등 그 길을 지나온 세월의 전반에 대해 자신이 느낀대로 전해주고자 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천일야화'를 읽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다음이야기, 다음 행선지가 궁금해서 책장을 덮을수가 없다.  가볍거나 얇은 책이 아님에도 꿋꿋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읽느라 팔에 알이 배겨주셨다는 후문이.. ^^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었을 뿐 더 알고자 하는 노력은 해보지 않았는데, 그의 글로 만난 스페인의 복잡한 역사를 접하고 나니 왠지 더 매력적인 나라같다.  그가 왜 스페인에 그토록 푹 빠지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일어난 것, 그것이 역사다.  너무나 깨알 같아서 제대로 크기를 잴 수조차 없는 파편들의 집적.  냉엄하고 완강한 사실들만이 살아남아 날짜에 달라붙고 아이들은 이것을 외운다.  아니면 건물과 기념물에 달라붙는다.  우리가 손에 가이드북을 들고 기념물에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것은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며 기념물이라는 것은 과거의 집적을 이루면서 차곡차곡 쌓인 것들의 증거이니까.  /p181

 

여행자를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재회의 기쁨에 언제나 섞여 드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처음 본 뒤로 늘 오고 싶었던 곳이 나 없이도 잘만 있었다는 느낌, 그래서 그곳을 정말로 가까이 붙잡으려면 영원히 그곳에서 눌러 살아야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일 수가 없다.  그때의 나는 집에 붙어 있는 사람, 정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여행자는 갈등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그는 끌어안기와 놓아 주기 사이에서 번민한다.  헤어짐의 쓰라림은 그의 존재의 본질이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p529

 

 

역사이야기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할까?  그동안 개인적인 여행스타일은 특정 지역만 알아보고, 다니기에 유명한 유적지가 아닌 이상 그 지역의 과거를 알아보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노터봄의 여행기를 읽고 있다보면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사진이 많고 현장의 정보를 중요시했던, 또는 역사보다는 여행가들이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이야기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노터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지 여행지의 정보만을 전하는게 아닌 역사,문화,예술,건축등이 함께 하는 여행도 즐거울 수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책에 실린 흑백의 사진들도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약간 아쉬웠던 건 앞에서 이야기를 쭉 읽어나가다가 이야기 하나가 마무리 되고 나서 사진들이 나오다 보니 글 따로, 사진따로 인듯한 느낌이라 맥이 살짝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사진이 수록되어있어 깔끔하다 라는 느낌이었던것 같다.  책을 읽으며 여행기를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질투가 날 정도였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도 언젠간 과거가 될 것이며, 역사로 남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눈에 보이는 현재의 모습만을 보기 보다 그 하나 하나에 묻어난 세월을, 역사를 음미하며 여행하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묘미가 되어 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산티아고를 가게 된다면 여행안내서와 이 책도 함께 가리라 생각해본다.

 

 

"스페인은 유럽에 매달려 있지만 유럽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만 가서는 스페인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미로처럼 복잡한 스페인의 역사를 거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스페인을 돌아다녀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다.  스페인은 평생을 바쳐서 사랑해야 할 땅이다.  스페인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을 모른다. "  - 세스 노터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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