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 1권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쇼퍼홀릭 시리즈 1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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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름 : 레베카 블룸우드.
세일이나 한정판매, 특별적립이란 문구가 보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정말 미친듯한 쇼핑광.
카드빚과 대출에 허덕임에도 줄어들지 않는 소비욕구.
대책이 없다못해 대단해보이기까지 하는 여자.
밑도 끝도 없이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망상의 대가.
하고 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도, 그렇다고 뛰어난 자질도 보이지 않는 25살의 아가씨.

주인공 레베카 블룸우드를 정의하자면 이쯤 될 것이다.

첫 장부터 강력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잡아당기는 이 책은 여자라면, 혹은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할 만한 이야기이다. 레베카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세일이라는 문구가 보이면 심장이 요동치고 '내가 필요한게 뭐가 있지?'를 고민한다. 뭐라도 건져내야한다는 일념으로 마치 전투에 임하는 장수처럼 돌변하는 그녀. 집에 가는 길에 조그만 거라도 하나 사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지고, 고가의 물건을 살라치면 '이건 나에 대한 투자야!'라며 자신을 정당화 한다. 그리고는 카드고지서가 나오면 '이건 뭔가 잘 못 된거야!'라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녀. 대금을 독촉하는 은행담당자의 카드를 보고 아연실색. 어떻게 돈을 갚을지 고민하지만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카드를 긁고만다. '어차피 늘어난 빚, 여기서 조금 더 쓴다고 달라질게 뭐야!?'라는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난 '으휴- 한심해! 미친거 아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차마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미친듯이 쇼핑을 해대는 레베카의 모습에는 일면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한심하다고만 보기엔 꽤 사랑스럽고 귀엽거든. 엉뚱한 그녀의 망상은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배꼽잡고 웃게하다가도 어느새 공감하게 만드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현실적으로 노력해도 부족할 판에 독촉장을 몰래 갖다 버리고는 "난 독촉장 같은거 받은 적 없어!"라고 세뇌를 한다던가,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만사 해결될거라 생각하고 로또를 사고, 당첨되지도 않은 1등 금액으로 뭘할까를 고민하하며 잠시 행복감에 젖는 그녀를 보면 대책이 없다가도 마냥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이다. 피식.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재벌 2세를 꼬셔볼까 생각도 하고, 시골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말해볼까 고민도 하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차마 그럴 수는 없던 그녀. 이쯤되니 '자업자득이지 뭐!'라고 생각하던 나도 슬슬 걱정이 된다. 얘 진짜 돈 못갚아서 신용불량자 되고 길거리에 나앉는거 아냐? ...하지만 나의 걱정도 잠시 그녀는 시골 부모님댁에 피신해있던 도중 번뜩 떠오르는 궁금증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결합시켜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도 아주 멋지고 쿨하고 완벽하게 말이다. 아 그 유쾌,상쾌,통쾌함이란.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희망이 샘솟는 듯 하다. 전화위복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보다.

그녀의 문제해결 방법은 딱 그녀다운 최고의 방법이었다. 게다가 이제껏 대책없게만 보이던 그녀의 낙천적 성격과 엉뚱함이 없었다면 아마 그런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한심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기질이 결국은 그녀를 살리는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중간중간 신데렐라류의 신파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내심 '설마...어정쩡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그런 내 걱정을 알았는지 그녀는 다행히도 그녀만의 재능으로 문제를 해결해냈다. 그것이 다소 드라마틱하긴 했지만 뭐 어떤가. 이 소설 최고의 미덕은 바로 그것인데.

만약 이 소설의 마지막이 결국 돈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녀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결말이었다면 '쯧쯧. 내 그럴 줄 알았다. 꼬시다!'라며 혀를 차고 비난을 하며 잠시동안 신나게 씹어댈 수는 있겠지만 금세 마음은 우울해질 것이다. 하지만 쇼퍼홀릭은 '정말 운이 좋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내는 레베카를 그려냄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해준다. 거기에 다소 질투어린 시선은 보낼지언정,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찌보면 그것도 그녀의 재능이고 그녀의 낙천적인 성격이 그렇게 만든거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힛. :)

그러나 내가 이렇게 빙긋이 웃으며 '잘됐다!!'하고 박수칠 때 쯤, 작가는 살짝 뒷통수를 때린다. 개과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레베카가 이번엔 요행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된통 고생을 했으니 앞으로 대책없는 쇼핑은 자제하겠지?'싶은 내 생각을 비웃기나 하는 듯, 유유히 홈쇼핑 물건을 주문하는 그녀를 묘사한 것이다. 그것도 여전히 번지르르한 발언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후아- 결국 제 버릇 남 못주는 걸까. 앞으로도 파란만장한 그녀의 쇼핑일기가 계속 될 걸 생각하니 살짝 두통이 생기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근데 묘하게 기대되되는게 두근거리기까지 하니, 어쩌면 난 이미 대책도 없고 한심하지만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레베카 블룸우드에 빠져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다음 이야기 <쇼퍼홀릭 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가 심히 기대되는 바이다. 얼른 읽어야지!


+)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벼운 소재는 아니다.
웃으며 즐기지만 그 속에서 얻는 교훈은 결코 우스운게 아니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코믹함속에 묻힌 빛나는 진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 레베카를 보면서 '대리만족'은 할지언정, 실제로 그렇게 무턱대고 쇼핑하지는 마시길!
'나도 저렇게 멋지게 해결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카드를 마구 긁어대다간
멋지게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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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2006-02-2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해랑님// 어머 과찬이세요.>_<
쇼핑은...할 땐 신나는데 그 다음달 카드 고지서 보면 정말 피 토한다니까요.-_ㅠ
 
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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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표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 내게 푸른 느낌은 차갑기보다 시원하다는 쪽이고, 넓고 깊은 느낌이다. 난 아마 '푸르다'라는 말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늘과 바다를 연상하는가보다. 하지만 영어로 쓰여진 Blue를 보면 또 다르다. 시원하고 넓은 느낌보다 어둡고 깊이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 파란색이 눈에 바로 보이는 바다 수면이라면, Blue는 그 수면 아래 깊고 깊은 바닥같은...뭐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제목 <앰 아이 블루?>에서 느껴지는 첫 이미지는 나에게는 확실히 깊은 우울함이었다. 음...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내가 Blue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첫 느낌을 표지와 다르게 우울할거라고 생각한데에는 <앰 아이 블루?>가 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집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동성애'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터부시 되고 금기시 되는 것 중에 하나니까. 내가 특별히 '동성애'를 혐오하는게 아닌데도 사회적으로 넓게 형성된 편견은 이런 순간, 어김없이 작용한다. 즉, 굳이 따지자면 난 그들의 사랑을 조용히 지지해주는 쪽임에도 그 사랑이 마냥 암울할거라고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그들을 더 우울하고 힘들게 만드는것일지도 모르는데.

책은 13명의 작가가 한창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동성애'를 주제로 쓴 단편들을 묶은 것이다. 작가가 모두 다른만큼 이야기들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각각의 짧은 단편들은 하나의 스토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여운을 남기고, 가만히 앉아 나를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내용이 감동인지 아닌지를 떠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은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내 안의 꽉 막히고 편협한 무언가가 깨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 말이 조금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적어도 '동성애'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위선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동안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던 건 어쩌면 의식의 밑바닥에 '동성애는 어차피 먼 타인의 얘기. 나랑은 상관없어!'라는 것을 깔아두고 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와 내 주변의 일과는 상관없으니 난 한껏 여유로울 수 있어라는 오만한 생각.

사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방관하는 자세로 이해하는 척 하는 건 엄연히 틀린 것이다. 나는 후자쪽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는 척'을 싫어하는 내가 사실은 멋진 척, 이해심 많은 척, 잘난 척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단순히 '동성애'에 대한 나의 시각뿐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책이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관한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에 더해 읽는 사람의 사고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문학성 또한 탁월하니 내가 별 5개를 주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94년에 발간된 책이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출간 당시 <미국도서관협회 최우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꽤 유명한 책인데 말이다. 그렇게 따지니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외국책(특히 청소년 문학)이 나오려면 10년이나 걸릴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뭐 그동안 국내 출판사에서 이 책의 진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늦게나마 번역본을 볼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또한 판매액의 1%는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http://queerschool.org)‘에 기부된다고 하니 왠지 조금이나마 그들을 후원한다는 느낌도 들고. 어쨌든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여러모로 뜻깊은 좋은 시간이어서 읽은지 며칠이 지나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서 참 좋다.


+) "편협한 사람치고 어렸을 때 책 읽은 사람 없더라"
서문에 나오는 이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뭐 요즘은 이른바 인텔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더 편협한 경우도 있더라만.
그건 너무 많이 읽어서 자기가 젤 우월하고 잘났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은 방법론이라던지 계발서만 읽어서 그런건가?
뭐 모를일이지.
어쨌거나 소설이 주는 가장 좋은 점은 폭 넓은 간접경험에 있는 것이다.
그 경험으로 인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과 변화가 생겨서 좋다.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아는 내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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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회계사 사건수첩 - 주가 조작과 비자금 조성 편
야마다 신야 지음, 김진태 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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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코너를 기웃거리다 이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다. <女회계사 사건수첩 - 미녀 회계사 모에미의 감사보고서 : 주가조작과 비자금 조성편>이라는 장황한 제목과 부제를 달고 나타난 이 책은 이미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가끔 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세무사', '공인회계사'같은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걸 볼 때면 '세무사와 회계사의 차이점이 뭐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쉽게도 잠깐 생각하는 걸로 그칠 뿐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다.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지 누군가 설명해보라면 '엄...그냥 세무사는 세금관련일 하는 사람이고, 회계사는 기업의 장부를 감사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며 우물쭈물할게 뻔한 그런 지식이었다. 사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의 소개를 보니 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낸 직업문학이라고 한다. 스르륵 넘겨 뒷부분에 실린 부록을 보니 '회계사'와 '세무사' '세무공무원'에 대한 차이점과 회계에 대한 몇 가지 사항도 Q/A코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엉? 세무사랑 세무공무원이랑은 또 어떻게 다른거야? 흠. 읽어봐야겠네.

이야기는 서른의 노총각, 가키모토 가즈마가 스물여덟에 갓 입사하여 2년간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것이다. 패기는 넘치나 융통성이 조금 부족한 가키모토가 노련한 모에미와 파트너가 되어 회계감사를 다니며 겪게 되는 일들은 꽤 흥미진진하고 즐겁다. '후지와라 모에미'는 최연소 공인회계사에 합격한 인물로 현재는 24세, 5년차 회계사이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 겨우 합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녀는 스무살에 보란듯이 합격했으니 나이는 어리지만 꽤 실력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에미가 공부벌레타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패션과 유행에 민감하고, 유흥과 남자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미인형이라 추종자도 많으며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줄도 아는 여우다. 한마디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재랄까.

기업의 회계감사라면 왠지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듯한데, 소설은 추리적 요소를 살짝 집어넣어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기업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해내고 바로잡아가는 모에미를 보고 있으면 꼭 미녀탐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모에미는 겉으로는 빈둥빈둥 노는 것 같아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 문제점이나 비리를 포착하는 능력은 과연 프로임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짓궂은 말로 후배사원을 골탕먹이기 일쑤이고, 경마장에 갔다가 지각하기를 밥먹듯이 해도 그녀가 프로일 수 있는 이유는 평소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정보를 빨리 습득하기 때문이다. 경마장에서 귓등으로 흘려들은 소문조차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역할로 쓸 줄 아는 그녀다. 가끔 너무 앞서가는 엉뚱한 추리가 황당할 때도 있지만 그 엉뚱함이 사건(?)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하니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다. 전형적인 주인공 타입이랄까.

왜 학교 다닐때 보면 꼭 이런 사람 하나씩 있지 않나. 학교에서 맨날 잠만 자고 땡땡이 치고 노는데도 시험보면 성적이 톱을 달리는 괴물 같은 아이. 여러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알기를 좋아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박식하기까지한 아이. 모에미가 딱 그렇다. 매뉴얼대로만 해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문제를 그녀는 나름의 경험과 추리를 통해 멋지게 풀어가니 샌님같은 가키모토는 그저 부러울 수 밖에.

이 책은 지루하지 않게 회계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과 회계용어나 주식관련 용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어서 좋다. 나처럼 그 쪽으로는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는 참 고마운 책이다. 하지만 전개가 빠른 탓에 회계감사의 과정이 비교적 쉽게 묘사되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그 부분은 작가가 '무겁지 않고 대중성과 오락성을 갖춘 회계 관련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했으니 오히려 목적에는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에 뜬금없이 들어간 판타스틱 동화같은 이야기는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지은이의 소설가로서의 욕심일까. 어쨌든 독자로서는 조금 안타깝다. 회계의 구조를 알면 회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꼭 경영자가 아니라도 주식을 하는 사람은 회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회계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그래도 기회가 되면 경영이나 주식관련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이 촉발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이미 진행중일지도.



+ 생각해보면 회계사와 세무사, 세무공무원이 차이는 헷갈릴 것도 없는 거였다. 입장의 차이만 제대로 알면 되는 거였는데...; 어쨌든 이제는 헷갈릴 일 없겠지! :)

+ 간단히 정리하여 부록으로 실은 회계용어를 알아두면 꽤 유용하겠다. 대차대조표라던지, 분개, 분식 같은 용어를 일반시민이 어찌 정확하게 알까.(설마 나만 몰랐던 거?) 이 기회에 알아두면 좋을 듯 하다.

+ 모에미같이 선천적으로 가진 능력도 좋은데 알게 모르게 노력하는 애들 보면 참 자극받는다. 이건 기분 좋은 자극이다. 음. 좋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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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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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혹은 "OO랑 닮았다는 말 듣지 않아요?"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다. 그 OO란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연예인이나 언론인이 대부분인데, 그런 말을 들을때면 기분이 묘해지곤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예쁜 연예인을 닮았다라는 말이 한편으론 칭찬의 의도일 수 있으나, 가끔은 '나'보다 '누군가와 닮은 사람'이라는 것에 중점을 둬버리면 괜히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하니까 말이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도 간혹 그렇게 기분이 묘해지는데, 만약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난다면 그 느낌은 어떨까? 얼굴뿐 아니라 체격도 키도 목소리도 같다면? 예전에 일이 몹시 바쁠때면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투덜투덜 하곤했었는데, 진지하게 그런 상황을 상상해본다면 어쩐지 조금 무서워진다. 만약 정말로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면...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진짜라는 거지? 나라는 존재가 유일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나서의 혼란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일본 영화 <비밀>의 원작가로, 내년 1월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예정인 <백야행白夜行>의 작가라는 것 정도. 일본 추리소설계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을 빼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손이 간 이유는 아마 <분신分身>이라는 제목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릴때, '도플갱어'를 겪은 사람은 그 이후로 원인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당시의 나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 똑같은 분신을 만나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이내 따라붙는 그런식으로 죽고 싶진 않다는 두려움. 딱 아이다운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읽은 <레몬>은 의외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었다. 두 주인공 마리코와 후타바가 각 장마다 서로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이었는데, 추리소설답게 빠르게 이어지는 스토리는 쉽사리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책이 처음 쓰여진 시기(1993)를 생각하면 뒷내용은 이미 충분히 상상이 감에도 이런 류의 내용은 언제나 흥미를 유발시킨다. 게다가 현재 전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황우석 사건'과도 연관이 있으니 더 그럴수 밖에. (나는 이제 책속에서 '줄기세포'와 '난자'라는 단어만 봐도 '황우석 교수'가 떠오르니 이건 완전 자동. 다른 사람도 그러려나;;) 

소설이 출간된지 이미 12년이나 지난 탓인지, 아니면 널리 보급된 인터넷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배아복제'니 '난자추출' 및 '체외수정'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지니고 있는 탓인지 소설속의 배경이 되는 것들이 새롭지는 않다. 특히 작금의 사태를 비추어 볼때 오히려 독자쪽이 아는게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 그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더 늘어난 상태에서 봐서 오히려 조금 더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모성(母性)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느낌으로 눈물샘을 자극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진취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던 여자도 생물적 본능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엄마'란 존재는 정녕 위대하다. 여자로서는 한없이 약한 존재인 그녀들이지만 어머니라는 지위앞에는 언제나 강하고 대범하고 너그럽다. 존경합니다 어머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 참 마음에 들어버렸다. '인류를 위해, 더 나아가 미래를 위해서'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과학을 이용하지 말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도 된다는 식의 말은 군사독재 정권때나 통했던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소수'의 입장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당신은 절대다수의 울타리안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속단하지 말라. 언제 울타리 밖으로 내쳐질지 모르는 일이다. 책 속 문구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집단은 광기를 만든다'는 말. 광기를 열정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 착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또 다른 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출판사의 의도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시대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읽는 재미가 남달랐던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책이고 위에서 말했듯, 나(인간)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덧) <레몬>을 읽기전에 간단한 표지선정 투표를 한적이 있다. 4가지 표지중에서 투표하는 것이라 재미삼아 했었는데, 내가 고른것이 메인이 되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레몬>의 원제가 <분신分身>임을 감안하면 표지에서나마 원제의 느낌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은 사람이야 <레몬>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겠지만, 사실 추리소설의 제목이 <레몬>이라니 뭔가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니 분신이 '분신자살焚身自殺'의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이유로 원제를 그대로 옮겨오지 못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못내 아쉬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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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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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수많은 글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디지털의 발달로 이미지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텍스트가 줄어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 각종 온라인 게시판과 1인 미디어의 시초라 불리는 블로그가 성행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미처 발휘하지 못했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게 현실이다. 개중에는 전문가 못지 않은 글을 뽐내는 아마추어 글쟁이들도 상당수다. 적잖이 인터넷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나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간간이 글을 올리고는 하는데 이따금 글이 써지지 않아 말 그대로 OTL(좌절)상태가 되고는 한다. 그럴때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서두는 커녕 글의 소재도 떠오르지 않아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나같은 블로그 운영자 뿐이랴. 중,고등학생이라면 글짓기 혹은 논술과제를 해야할 때, 대학생이라면 리포트를 쓸 때, 취업준비생이라면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겪는 문제일 것이다. 블로그 운영자야 대부분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 자체가 입시 및 학점, 취업과 직결되니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글쓰기의 전략>은 그런 사람들의 고민을 적게나마 덜어줄 수 있는 책이다. 기존의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글쓰기의 조언이 아닌, 구체적인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에 이론서이기 보다는 실용서에 가깝다. 책은 총 13장에 걸쳐 이루어져 있는데, 나의 경우 책을 다 읽고나서 자신감과 함께 막연하게 느꼈던 글쓰기의 체계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사실, 글쓰기에 관해 따로 공부를 하거나 일부러 강의를 듣지 않는 이상 그것은 언제나 '멀고도 가까운 당신'인 것이다. 쓰고 싶은 말들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많이, 자주 쓰다보면 자신만의 체계가 잡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취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책은 각 장이 끝날때마다 <알고보면 쉬운 우리글>이라는 코너를 선보이고 있는데, 자칫 틀리기 쉬운 단어나 헷갈리는 맞춤법 및 띄어쓰기에 관해 이해가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 코너는 얼핏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을 되짚어 줌으로써 좀 더 완성도 높은 글쓰기에 기여하고 있다. 아무리 잘 쓴 글도 엉뚱한 곳에서 틀린 단어를 사용하거나 맞춤법이 틀려버리면 글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도가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글을 쓴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코너는 작지만 강한 코너이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단, 앞에서도 말했지만 책이 실용성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자칫 '고등학교 작문책'처럼 보여서 답답할 수도 있겠다. 잘 쓰여진 글을 예문에 내세우고, 그에 대해 분석하며 이론과 실제적 방법을 내보인 후, 예제를 풀어보라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교과서의 전형이긴 하다. 그래서 오래 읽다간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많이 보고, 많이 이해하고, 많이 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은 흔하지 않다. 교과서마냥 답답하면 어떤가.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지침서로서 믿음이 가는 것이다.

'전략'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여러 전투를 계획·조직·수행하는 방책으로, 그리스어 strategia(將帥術)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 의미는 초기에는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술책'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현재에는 그 의미가 발전하여 국가 및 경영, 심지어는 입시에도 쓰인다. 그런 '전략'이 이제는 '글쓰기'에도 쓰이는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이며, 좀 더 빠른 시간안에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알고만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영어학습법에 관한 책들을 수십권 독파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요는 그 책들의 도움을 얻었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 아직도 글쓰기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 이 책에서 도움을 얻었다면 차근차근 실행해 보라. 눈에 띄든, 안 띄든 분명히 효과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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