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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사쿠라이 미나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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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제목에 얽힌 사연이 궁금했기에 집어든 책.
사실은 첫장부터 인상을 쓰고 말았다. 조금은 건조하게 쓰여진 단 몇 줄의 묘사만으로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의 헛된 기대와 체념이 그대로 느껴져서. 그 무기력한 공포의 느낌 말이다. 그렇게 딱 한 장짜리 짧은 프롤로그 안에 남편을 죽인 아내의 사연이 불친절하게 드러나고, 곧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류 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스즈쿠라 마나는 여느날처럼 야근을 하고 귀가를 하는데 집 앞에서 거래처 사람을 만나게 된다. 평상시에도 마나에게 껄떡대기 일쑤였던 그 남자는 알고보니 마나를 미행하여 집을 알아냈고, 이야기좀 하자며 키까지 뺏어 마나의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한 남자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마나를 구해주게 되고 고마움를 느낀 것도 잠시, 남자의 얼굴을 본 마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남자는 바로 마나를 때리고 멸시하던, 그리하여 5년 전 마나가 죽인 남편 카즈키였던 것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도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남편은 기억상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돌아온 남편과 주인공 마나는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된다.

제목부터 반전이 먹여살리겠구나 싶은 작품. 서스펜스 미스터리인데 미묘하게 전개 빠른 일일드라마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호로록 읽어버렸다. 가독성이 무척 좋다.

과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실의 조각들이 맞춰지며 반전이 드러나는데…어라?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네? 반전이 맞긴 한데… 깜짤 놀라게 된다기보다 약간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부정적인 느낌이라기 보다는 영상으로 구현되면 좋을 것 같은 반전 장치여서 이야기를 처음부터 재구성해보는 기회가 된다. 장르적 요소가 있기에 긴장감이 상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오히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지면서 서스펜스는 살짝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린 가정폭력과 무관심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상처들이 대를 거듭하며 이어지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소재는 다루기에 따라 아주 어둡게 묘사하거나 극도로 분노하거나 쉽게 냉소하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간혹 나오는 따뜻한 기억들에서 보여주는 건 일말의 관심과 애정이고, 치유의 핵심은 결국 ‘사랑’이므로 소설의 끝에 다다라 추리물의 외피를 두른 로맨스의 시작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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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의 눈을 보고 있자면 눈을 이루는 무수한 동그라미들이 일제히 원영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파리와 교감을 하는 것 같았다. - P9

원영은 1978년 가발 공장 취업 이후 외판원, 마트 캐셔,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 등을 거치며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럼에도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되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 자체가 드물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느냐 했다. 집에 있어도 되지 않느냐 했다. 딸에게 개인 교습을 시켜줄 수는 없었지만 학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었던 시절에도 원영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학원비 몇 푼 버느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지 않냐는 식이었다. - P10

소설을 쓰면서 지유는 종종 시작점을 잊어버렸다. 어떤 생각이나 장면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 이유는 분명 있었다. 그 소설을 써야만 한다고 결심하게 만든,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 게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소설을 처음 쓰게 된 이유라거나,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더라. 지유는 이유를 지어냈다. 이제 지유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되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시장은 트렌드에 맞춰 글을 써줄 것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었고, 작가들은 기민하게 다음 책을 출간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로 더 빨리 뛰어야만 했다. 그래야 잊히지 않을 수 있었다. 매번 시험대에 올라서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무엇인가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뭐였더라. - P19

어느 날 원영은 언니의 책을 구경하다가 ‘강‘이라는 글자를 스스로 읽어냈다. ‘ㄱ‘도 아니고 ‘가‘도 아닌, 동그라미 받침이 있는 ‘강‘.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읽었다니까, 내가."
엄청나지 않으냐고 원영은 말했다. 아무도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강‘이라는 글자를 혼자서 읽어낸 것 중 어느 쪽이 엄청난 사건인지를 생각하다가 지유는 혼자서 한글을 깨친 것이냐고 맞장구를 쳤다. 그건 아니고, 그 한글자만 읽어냈다고 원영이 답했다. 그렇지만 그 한 글자를 읽어냈기 때문에 언니가 한글을 알려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 글자를 못 읽어냈더라면 글자를 못 배웠을지도 모른다고. - P26

"그렇게 쓰면 뭐해.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
수화기 너머로 원영의 들뜬 기운이 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그런가, 같은 말을 중얼거리다가 원영은 물었다.
"소설일 뿐이면, 왜 써?"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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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벚꽃 에디션)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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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우는 게 취미라고 사방에 자랑하고 다닌다. 그러나 열심히‘라는 단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뭔가를 배우려고 시작은 하더라도 그 과정을 즐기면서 천천히 진도를 조금씩 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카페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집에서 번역 작업이나 공부를 하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면 나태함을 자책하곤 하는데, 카페에서는 곧잘 집중이 잘된다. 잠시 창밖의높다란 하늘을 바라보거나 사람 구경을 하면서 여유를 부려도 마음이 흡족하기만 하다. - P7

모든 공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목표를 지닌 사람은 물론,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도.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뭔가 할 일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 P10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옳은 길을 되찾아 나오면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많이 걸어간 것이 아까워서 계속가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길을 너무 멀리 떠나와서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건데, 나 아닌그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 P24

마무리 짓는 기술은 중요하다. 뭔가를 시도했다가 중도에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뭐라도 하나 건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야무지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는지 앙탈을 부리고 싶거나 하기 싫어지면, 나는 잠시 손을 놓거나 적당히 밀어둔다.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나란 사람에게는 삽시간에 집중을 해제하는법도 필요하다. - P26

사람들마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트인 공간이 주는 공공성을 즐긴다. 혼자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지만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약간의 제약이 뒤따르는 그 장소성이 내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줘서 더 좋다. 그렇게 절반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공부하고 작업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 P34

책을 윤독으로 읽자고 하면 처음에는 조금 미심쩍어하는사람들도 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나 하던 돌려 읽기라니?‘ 하는 얼굴로 나를 본다. 하지만 윤독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인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함께했던모든 사람이 200퍼센트 효과적이라며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 책을 따라 읽으면 훨씬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역시 내 친구들이 최고! - P47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는 세 시간도 넘는 시간에 걸쳐 숏을 분석하는 수업은 매번 그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흥미로웠다. 영화를 장면 안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이야기해야지, 정신분석이나 페미니즘 이론을 들이대기 시작하면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설명도 새롭게 다가왔다. - P52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어떻게하는가?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용기를 내야 할지 모를때,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축적된 책을 읽거나 새로운 걸시도하고 배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감성적으로 대책 없이 골라잡든 일단 뭐라도 읽고 배운다. - P57

들뢰즈는 마들렌에 자극을 받은 ‘비자발적 기억력‘이 만들어내는 공명의 효과가 지고지순한 행복감‘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나중에 우리가 살아갈 시간들 중 ‘지고지순한 행복감으로 등장할 우리의 마들렌을 여기저기 숨겨두면 어떨까. 내가 찾아낸 나의 마들렌은 ‘외국어다.

질 들뢰즈의 이 말이 모두에게 울림이 되기를.

헛되이 보내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본질적인 성과다. - P63

사서로 일할 때 번역 의뢰가 들어오면 낮에는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부터 한밤중까지 번역을 하는 ‘주경야번가‘로 지냈다. 늘 한밤중에 깨어 있기를 즐겼던 체질이고, 수면시간이 다른 이들보다 짧아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게 도착한 영어를 한국어로 배달하기 위해서 헤매고 삽질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기만 했으니까. 외국어 실력도 중요하고, 이해한 내용을 잘 정돈된 우리말로 옮기는 기술도 필요했기에 번역이좋다는 평을 듣는 책이 있으면 찾아 읽느라 독서 시간이 더늘어난 것도 같다. 그렇다. 번역가란 생래적으로 지독하게 독서와 연결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번역가는 나의 운명이었다. - P120

책을 향한 나의 터무니없고도 열광적인 사랑이 언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가끔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은 독서가가 그러하듯, 책을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언제나 책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고 사랑에 빠지게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문자로 된 온갖 것들을 산만하게 읽어대다 보니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외에 처음으로 읽은 책의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다. 누군가 나에게 "넌국어 교과서를 읽고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뛰어난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겪었어"라고 해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책이 깔아놓은 궤도를 따라, 책이 뚫어주는 터널을 따라 내 인생이 움직여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책에 질려본 적이 없으므로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은나의 구황작물이다. - P166

한강 작가는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책에 대한 허기를 느끼고 며칠 동안 정신없이 책을 몰아서 읽으면 어느 순간 충전했다, 강해졌다고 느낄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마음의 결락缺落‘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락의 사전적의미는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감‘이다. 어느 문학 강연에서 이 단어를 듣고 이제야 딱 들어맞는 나만의 단어를 찾은 느낌이었다. 살다 보면 분명 마음에 결락이 생긴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 P167

매일매일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면 바랄 나위 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날에는 하루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책을 읽었다. 반성이 필요할 때는 조용히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책을 읽는 걸로 떨어져나간 자존감, 빠져나간 자신감을 메웠다(사실은 기분이 좋은 날은 기뻐서 책을 읽었고, 기분이 나쁜 날은 슬프다는 핑계로 마구 책을 읽었다). 게다가 이제는 노후까지 생각해야 한다. 준비가 전혀 안 된 것도 아니건만 노후를 생각하면 나이든 삶에 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놀랄 때도있다. 놀란 가슴 부여잡고 지나가는 책이나 하나 붙들고 읽는 수밖에. - P168

"인간은 움직이고 있는 몸을 나타내는 동사를 읽거나 단지 활발하게 움직이는 어떤 도구의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하거나 달리는 것과 같은 마음 상태가 된다."

요컨대 어떤 움직임을 나타내는 단어를 읽는 것은 이미 그것을 흉내 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었다. 텍스트를큰 소리로 읽을 때 자신의 목소리, 호흡, 복부 근육, 횡격막등의 신체 기관 전부가 함께 연결되며, 그 결과 텍스트를 전달하게 된 목소리와 호흡을 만들어내려는 욕구 속에서 생명력이 도약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큰 소리로 읽기는 단순히 발성이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정신과 육치의 교감이다. 이를 통해 침체된 기운을 회복하면서 자발적인 차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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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곳은 도서관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 P18

우리 가족의 도서관 사랑은 지극했다. 다독 가족이었지만 책장에 책이 그득하다기보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걸 더 좋아했다. 부모님은 책을 귀하게 여겼지만 대공황 때 어린 시절을 보내 돈이란 있다가도 금방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빌릴 수 있는 물건을 굳이 돈 주고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고생하며 배운 분들이었다. 그런 투철한 절약정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님은 책이란 읽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집에 모셔놓고 두고두고 돌볼 물건, 손에 넣을 목적의 기념품 같은 게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은 여행이었다. 기념품은 필요 없었다. - P20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내가 부모님과 나를 차별화시킨 방식 중 하나가 열광적으로 책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교재를 구입하면 흥분되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건 당시의 내가 유유자적 도서관을 누비고 다니며 대출 기간 동안 책을 소유하는 데 대한 감사를 잃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에 책을 두고 내가 접한 이야기들의 토템폴을 세우고 싶었다. - P21

시간이 도서관 안에 멈춘 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도서관에 붙잡히고 수집된 것 같았다. 모든 도서관에 내 시간, 내 인생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시간까지. 도서관에서는 시간이 둑으로 막혀 있었다. 그냥 정지된 게 아니라 저장되어 있었다. 도서관은 이어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고여 있는 연못이다. 불멸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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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 인간 -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로 보는 미생물의 과학
앨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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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체 모를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무 경고도 없이 순식간에 통증이 밀려오고 무기력과 착란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다가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당 전문의들을 만나 갖가지 혈액 검사를 하고, 일상을 포기한 채 몇 주, 몇 달씩 증상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마침내 정확한 진단이 내려졌지만, 이미 몸속 깊이 감염된 상태였다. 그리고 황소 떼도 고칠 수 있을 만큼 독한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한 후에야 비로소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 P7

이쯤 되니 슬슬 의심이 들었다.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항생제 때문에 살인진드기가 몰고 온 나쁜 균은 물론 원래 내 몸속에 살던 착한 균까지도 모두 사라진 건 아닐까? 내 몸이 미생물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해진 모양이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몸을 자기 집처럼 여기던 100조 마리의 착한 꼬마 생물체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존재였는지를. - P7

우리는 겨우 10퍼센트 인간일 뿐이다. 우리 몸에는 우리가 내 몸뚱이라고 부르는 인체의 세포 하나당 아홉 개의 사기꾼 세포가 무임승차를한다. 하지만 여기에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얼밀히 말하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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