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표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 내게 푸른 느낌은 차갑기보다 시원하다는 쪽이고, 넓고 깊은 느낌이다. 난 아마 '푸르다'라는 말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늘과 바다를 연상하는가보다. 하지만 영어로 쓰여진 Blue를 보면 또 다르다. 시원하고 넓은 느낌보다 어둡고 깊이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 파란색이 눈에 바로 보이는 바다 수면이라면, Blue는 그 수면 아래 깊고 깊은 바닥같은...뭐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제목 <앰 아이 블루?>에서 느껴지는 첫 이미지는 나에게는 확실히 깊은 우울함이었다. 음...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내가 Blue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첫 느낌을 표지와 다르게 우울할거라고 생각한데에는 <앰 아이 블루?>가 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집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동성애'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터부시 되고 금기시 되는 것 중에 하나니까. 내가 특별히 '동성애'를 혐오하는게 아닌데도 사회적으로 넓게 형성된 편견은 이런 순간, 어김없이 작용한다. 즉, 굳이 따지자면 난 그들의 사랑을 조용히 지지해주는 쪽임에도 그 사랑이 마냥 암울할거라고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그들을 더 우울하고 힘들게 만드는것일지도 모르는데.

책은 13명의 작가가 한창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동성애'를 주제로 쓴 단편들을 묶은 것이다. 작가가 모두 다른만큼 이야기들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각각의 짧은 단편들은 하나의 스토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여운을 남기고, 가만히 앉아 나를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내용이 감동인지 아닌지를 떠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은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내 안의 꽉 막히고 편협한 무언가가 깨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 말이 조금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적어도 '동성애'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위선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동안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던 건 어쩌면 의식의 밑바닥에 '동성애는 어차피 먼 타인의 얘기. 나랑은 상관없어!'라는 것을 깔아두고 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와 내 주변의 일과는 상관없으니 난 한껏 여유로울 수 있어라는 오만한 생각.

사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방관하는 자세로 이해하는 척 하는 건 엄연히 틀린 것이다. 나는 후자쪽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는 척'을 싫어하는 내가 사실은 멋진 척, 이해심 많은 척, 잘난 척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단순히 '동성애'에 대한 나의 시각뿐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책이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관한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에 더해 읽는 사람의 사고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문학성 또한 탁월하니 내가 별 5개를 주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94년에 발간된 책이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출간 당시 <미국도서관협회 최우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꽤 유명한 책인데 말이다. 그렇게 따지니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외국책(특히 청소년 문학)이 나오려면 10년이나 걸릴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뭐 그동안 국내 출판사에서 이 책의 진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늦게나마 번역본을 볼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또한 판매액의 1%는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http://queerschool.org)‘에 기부된다고 하니 왠지 조금이나마 그들을 후원한다는 느낌도 들고. 어쨌든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여러모로 뜻깊은 좋은 시간이어서 읽은지 며칠이 지나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서 참 좋다.


+) "편협한 사람치고 어렸을 때 책 읽은 사람 없더라"
서문에 나오는 이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뭐 요즘은 이른바 인텔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더 편협한 경우도 있더라만.
그건 너무 많이 읽어서 자기가 젤 우월하고 잘났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은 방법론이라던지 계발서만 읽어서 그런건가?
뭐 모를일이지.
어쨌거나 소설이 주는 가장 좋은 점은 폭 넓은 간접경험에 있는 것이다.
그 경험으로 인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과 변화가 생겨서 좋다.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아는 내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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