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붕우
작가명 권교정
장르 혼합(단편)
발행정보 1999년 도서출판 대원(주) 단편집 발행 (전1권)
2003년 시공사 권교정 단편시리즈2 발행 (전1권)
수록작품 - 대원(1999)
제1화 붕우
제2화 마법사의 화장실
제3화 피터팬
패러디 "후크를 말한다"
- 시공사(2003)
붕우
피터팬
후크를 말한다
작가 후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단편집. 늘 느끼는 거지만, 권교정의 그림에는 묘한 중독성 같은 게 있다. 어딘가 어수록해보이고, 인물들은 미묘하게 감정을 억제하거나 약간은 결여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와닿는단 말이다. 이것이 이야기 자체의 힘인지, 작가의 연출력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표제작 '붕우朋友'는 2회 연재 분량의 짧은 단편으로,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서하와 방연은 전란의 가운데 병법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우정을 다지게 되나, 방연이 세상에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과 달리, 서하는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저 소박하게 시골에서 소일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를 바라보는 위낭자는 서하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줄 이는 야심이 있는 방연이라 생각하고 그와 결혼하여 차근차근 최고병법가의 아내로서의 위치를 다져간다. 한편 위나라의 군사로서 명망을 쌓고 있던 방연은 늘 서하가 초야에 묻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하여 그를 위나라로 불러들여 천거하려 하고, 이를 알게 된 위부인(위낭자)은 서하의 뛰어난 재능이 남편의 출세에 방해가 될 것을 예감하고 모함을 해 그를 옥에 가둔다.

만약 방연이 야심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렇고 그런 캐릭터였다면 '붕우'는 그저 스쳐지나갈 짧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방연' 캐릭터는 독자의 예상을 약간 비틀면서 제목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방연은 위부인의 계략을 알아채고 서하를 구해냄과 동시에 서하를 세상으로 끌어낼 최고의 비책을 쓴다. 그것이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비수가 될지라도. 이런 방연에게 위부인은 서하의 존재가 방연에게 위험이 될 거라고 경고하지만, 방연은 초연하게 받아들인다.

두 친구 사이의 우정과 오해가 주요 맥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절제된 슬픔이다. '붕우'에는 크게 세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들은 전체 이야기가 본 궤도를 타면서 엇갈림을 반복한다. 서하는 촌부로 살기에 자신의 능력이 너무나 출중했고, 방연은 야심가로 대성하기엔 그 안의 우정과 사랑의 비중이 너무나 컸다. 위부인은 자신의 욕망을 방연을 통해 이루려 하지만 그 사이에 진짜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몰랐다. 서하는 방연을 믿었으나 결국은 오해했고, 방연은 서하를 시기하기엔 그의 재능과 서하라는 인간 자체를 너무나 사랑했으며, 위부인은 욕망을 쫓느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다.


 

권교정은 물고 물리는 엇갈림을 특유의 그림체와 분위기로 담담하게 끌고 가다가 약간은 비극적 결말로 냉정하게 끝을 내버렸는데, 작가 후기에 의하면 그런 결말이 비극을 돋보이게 하려 함도 아니요, 인물에 대한 배려도 아닌, 그저 그래야만 비로소 성립이 되는 이야기였다고 간략하게 덧붙인다. 당연하지 않은가. 역사를 아예 바꿀 수는 없었으니. 그렇다.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끝난 '붕우'의 진짜 매력은 실제 역사에서 그 이야기의 틀을 가져와 완벽히 권교정 식으로 비트는 데 있었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손빈은 전국시대의 전략가로 어려서 방연과 동문수학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빈(臏, 종지뼈)이란 이름은 방연의 계략으로 무릎의 슬개골을 빼내는 형벌을 받은 뒤 붙여진 이름이고 본명은 알 수 없다고 하니, 만화 속 '서하'라는 이름은 아마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일 게다. 만화와 달리 실제 역사에서 방연은 손빈에 대한 열등감이 굉장히 컸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지레 염려하여 그를 위나라로 불러들여 계략에 빠뜨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 했던 모양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진 고생 끝에 위나라를 빠져나가 제나라 병법가로 등용이 된 손빈은 마릉(馬陵)에서 방연을 속여 마침내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손빈을 이기고 싶었으나 끝내 이길 수 없었던 방연은 죽어가며 "遂成豎子之名(기어코 그 녀석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권교정은 이 피투성이 전투의 한 자락을 보고 일인자와 이인자의 대결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우정과 오해로 인한 슬픈 이야기로 재창조했다. 방연의 마지막 말을 '서하가 세상에 나와 재능을 떨치고 있음을 기뻐하며 죽노라'로 역설하고 있으니 그 상상력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위부인 캐릭터와 편지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야기에 신빙성과 안타까움까지 더한다. 전하려 했으나 전하지 못한 위부인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역사에는 없는 뒷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한다.

권교정은 작품에 자기 색을 확고하게 불어넣는 작가다. 특히 동화를 재해석하며 보여주었던 재능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흥미 위주의 패러디가 아닌 생각을 확장할 '꺼리'를 제공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붕우'는 그 연장선상에서 봐도 될 것 같다. 차이점이라면 동화가 아니라 역사 속의 한 단편을 재해석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위부인 캐릭터에 관심이 많이 가는데, 셍각해보면 방연의 내면을 둘로 나누어 탄생한 게 위부인이 아닌가. 전형적인 권력지향에 자신의 욕망을 발현할 줄 아는 여인은 차고 넘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서 깨달음이 있은 후의 행보가 궁금하다. '붕우'를 프리퀄로 해서 그 후세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덧, 새삼 이 책의 절판이 아쉬워진다.
같이 수록된 '마법사의 화장실'과 '피터팬'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건 다음 기회에.

 

2012/05/25 작성, 알라딘에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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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2-0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 < 우리집 > 이라는 리에코 만화 보셨나요 ?
저 요거 보고 벅찬 감독으로 몸을 떨었더랬죠.....
함 기회 있음 읽어보세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다소 2014-02-02 23:18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추천해주신 만화 사볼께요. 곰발님이 쓰신 리뷰도 봤어요. 다른 분들 평도 좋던데... 기대됩니다. 그래도 땡스투는 추천해주신 곰발님께! :-)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3 11:33   좋아요 0 | URL
탱스 투를 주신다는 말씀에 우리집을 읽었을 때의 감동보다 더한 감동을 얻습니다.

다소 2014-02-04 12:34   좋아요 0 | URL
오늘 배송 오기를 두근반 세근반 기다리고 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5 20:10   좋아요 0 | URL
옷 !!! 우리집 사셨군요. 이야, 이거 어떤 감상일지 궁금하군요....
다 각자의 취향이 달라서 조심스럽군요...

다소 2014-02-06 06:28   좋아요 0 | URL
설연휴 이후 배송이 밀려서 늦게 받았는데 앞부분 30p 정도 읽으니 대강 감이 옵니다.
일단 감상은 다 읽은 뒤로 미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