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접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추리소설이라 하면 흔히 사건이 일어나고, 단서를 찾고, 서서히 실마리가 풀리면서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는 구조를 지니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사건이 발생해서 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사건 해결 후에 그간의 일들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것을 '르포르타주 형식'이라고 한다던가? '보고' 혹은 '기록'이라는 의미란다. 사건을 서술하는 화자는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상태를 다 아는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니다. 굳이 나누자면 무인칭인데, 이는 철저하게 '사실로서의 기록'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미건조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책은 마치 인터뷰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기획기사를 읽는 것 같기도 한데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사람의 시각과 잘 정리된 현장의 분위기 및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읽는 사람의 판단을 유도하고 있다. 이른바 독자참여. 미야베 미유키는 <인생을 훔친 여자(화차)>에서도 그랬지만 어느 한 현상이나 전체적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다채롭다. 그녀는 자신의 시각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의 서술을 통해 독자에게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주며 현상진단을 해주고 그로 인한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는 '절대선인'도 없고 '절대악인'도 없다. 여러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필력은 새삼 놀랍다. 특이할 것 없는 소재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인생을 훔친 여자(화차)>로 단번에 내 마음을 훔쳐가더니 <이유>로 나를 꽁꽁 묶었다.자기전에 잠깐 보려던 것을 '잠깐'에서 그치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가며 읽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700페이지 남짓한 책을 한치의 지루함도 없이 탄탄한 구성과 흡인력으로 무장시킨 그 실력이 놀라울 뿐이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답다!'는 말로 절로 튀어나올 만큼 멋진 책을 읽어서 횡재한 느낌이라면 알까. 작품에 반해서 작가를 알게되었지만 앞으로는 작가때문에 작품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덧) 1. 어째 작가 예찬론 같은 리뷰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정말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인걸요. :)2. 이 책 읽은 직후에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잔뜩 메모해 두었는데 당최 정리가 안돼요. (이런 경우는 또 처음-_-)<인생을 훔친 여자> 읽고 나서도 그랬는데... (그것도 작가의 재능일까요?)생각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면 그 때 리뷰 다시 한번 올릴께요. (이것도 '쓰고 지우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지쳐 쓰러지겠어요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