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사도의 편지 2 -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과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의 밑거름이 되는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는 읽기가 꽤 힘든 책이다. 최근 이런 유의 종교 관련 팩션(Faction) 장르라면 '[장미의 이름], [다빈치 코드]를 잇는 대작'이라는 홍보문구가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혹시나'하고 봤지만 '역시나'그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작품성(장미의 이름)에서도, 흥미·오락성(다빈치 코드)에서도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는 많이 모자라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작가의 이력인데, 저자 소개에 따르면 '미셸 브누아'는 20년간 사제의 길을 걷다가 작가가 된, 은둔하는 수도사이며 프랑스 소설가이자 신학 전문가라고 한다. 독자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소재로 가상의 이야기를 쓸 때는 그 분야를 제대로 알고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는데, 이런 소설에서 작가의 이력이 이러하다면 신빙성 내지는 이야기의 현실성에 무게를 실어줄 만한 도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거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거 아냐?'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면도 다수 있으므로, 그 점에서 이미 별 한개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별 점수가 별로 높지 않은 것은 다분히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는데, 그 이유를 조금 열거해보자면, 우선 이 책은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이해'를 다수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非기독교인의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조금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경우 작품에 대한 흥미도가 감소해버려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내 경우, 非기독교인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것이, 중학교 때까지는 성당에 꽤 열심히 다녔었고, 교리도 꽤 열심히 들었는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진 내용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나누는데 꽤 힘들었다. 그러니 타종교인이나 무교인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냥 사실이니 가상이니 그런거 의식하지 말고 그냥 읽으면 어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은 (신약)성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어떤지 아느냐, 모르느냐는 소설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내가 이 소설 읽다가 너무 짜증이 나서(그러니까 한마디로 소설의 바탕이 되는 걸 제대로 모르는 것에 대한 짜증), 책 읽다 말고 신약성서 꺼내 읽었을까.-_-;

두번째 이유로, 이야기의 구성이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었다. 시각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는 거라면 꽤 좋을 법한 구성인데, 텍스트로는 아무래도 좀 산만하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구성인데, 그 교차 시점이 짧아, 좀 읽을만 하면 과거 이야기로 넘어가고, 또 좀 읽을만 하면 현재 이야기로 넘어오니, 스릴 있는 구성이긴 하지만 안 그래도 바탕 이해가 부족해서 애를 먹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 힘든 구성이었다. 또한 각 구성에다 곁가지를 쳐나가며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열거되니, 머릿속에서 인물 상관·관계도 그리기가 영 복잡해서 원.

세번째 이유로, 진행이 조금 쳐지는 감이 있다. 급류타기 하는 줄 알고 배를 탔는데, 사실은 그 배가 잔잔한 강에서 뱃놀이 하는 배였다. 주변 풍경을 즐기다가 가끔 빨리 노를 저어 무료함을 달래는 그런 뱃놀이. 나는 아찔함을 느끼고 싶은데, 이건 너무 느긋하다.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제목이며 책 소개 및 홍보 문구를 보고 박진감 있는 추리소설을 기대했던 내게는 약간의 배신감도 든다. 안타깝다.

참 이상한 게, 평소 같으면 '아, 짜증나. 안 읽어! 나중에 읽어야지.-_-'하고 내던져 버리고 다른 책을 읽었을텐데, 이 소설은 시일이 좀(이 아니라) 많이 걸리긴 했지만 완독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아마도 소설 초반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시작되는 주인공의 '진실 찾기 대모험'의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신약성서까지 꺼내 읽었는데 끝까지 안 읽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겠고, 이 책을 받은 경위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이쪽 방면으로 내가 좀 무지해서 그렇지, 소설의 내용 자체는 사뭇 흥미롭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예수의 제자는 12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13번째 사도가 있었다니.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 13은 불길한 숫자가 아니던가. (본문에 이 숫자와 관련한 이야기도 나온다.) 다 차치하고, 사실은 그 13번째 사도가 남긴 편지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이것만으로도 흥미는 꽤 유발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앞서 소설의 아쉬운 점을 먼저 열거해서 그렇지, 읽고나서 그 읽은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얼마전 포탈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예수의 무덤'이 1위로 올랐던 적이 있다. 예루살렘 외곽에서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동굴무덤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그 발견과정을 담은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한다는 뉴스 때문이었는데, 이 소설에도 그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래서 잠시 던져두었던 이 책에 다시 흥미가 생겨서 나머지를 후다닥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무덤의 존재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법한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통째로 부정당했을 때의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혼돈이다. 물론 지금껏 그래왔듯이 단순한 논란으로 끝날 공산이 큰 그 사건에 대해 좀 더 상상력을 불어 넣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예수의 신성 논란에서 더 나아가 베드로와 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 및 코란의 탄생 배경, 바티칸의 음모까지 방대한 내용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소설 속에서 최후의 만찬 시 예수의 가장 가까이에 앉은 제자, 가장 사랑 받은 제자, 예수가 죽을 당시의 장면을 목격한 유일한 제자, 끝내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정치적 희생양으로 역사속에 은폐된 것으로 묘사되는 13번째 사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기독교에 관해 다분히 음모론적인 경향을 띄긴 하지만 소설적 재미를 즐긴다면 읽을만한 소설이다. 단, 추리소설이 아니라 종교소설로서 무게를 두고 읽어야 할 듯 싶다. 그리고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 '진실이란 심해의 바닥에 깔린 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역설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아아, 어려운 문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매지 2007-04-0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님 이 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다소 2007-04-0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 님 / 앗, 감사합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삶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는 없다고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건, 예상할 수 없는 전개,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는 긴 이야기. 그것이 삶이다. 아무리 흥미로운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한들, 그 모든 것은 삶에서 한번쯤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고, 그렇게 때문에 모든 허구적인 이야기는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물론 SF, 판타지, 무협 등의 장르는 예외.)

책 중반까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일거라고 멋대로 착각한 내가 나중에서야 책 표지 상단 -제목 윗부분- 에 씌여진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수상작'이라는 글자를 발견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헉! 이거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한 픽션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 그 자체였어?'
'역시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이구나.'

책을 읽기 전에는 항상 표지의 그림이랑 글을 대충 훑어보고 읽는 편인데, 왜 그 글자는 발견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거 혹시 무의식의 선택적 수용인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읽고 싶은 글자만 읽는 뭐 그런거...;;; 암튼, 내가 이 책이 (당연히) 소설일 거라고 착각한 것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니...제목만 보면 '프라하에 사는 소녀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는가? 아니라고? 이런.

요네하라 마리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소녀들을 통해 그린 동유럽 현대사'라는 소갯말을 달고 있다. 이 한줄의 소개글에 이 책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시절, 그래도 아직은 사전적 의미의 공산(共産)주의가 제 모습을 잃지 않던 시절의 프라하에서 5년을 보낸 마리에게는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세 명의 친구가 존재하는데, 그 이름은 리차, 아냐, 야스나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그 세 명의 친구와 얽힌 추억 및 현재의 그들을 찾으며 겪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초,중반을 프라하에서 보낸 저자의 추억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추억담을 고스란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결부된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50여 개국 아이들이 다녔던 소비에트 학교의 학생 수 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와 이념, 사상은 가끔 그들 사이의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키운 그들의 우정은 코가 시큰해 질 만큼 아리다. 유쾌하면서도 눈물나게 애틋한 소녀들의 우정담과 격동의 시대를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 친구 찾기를 위한 여정이 스릴감있게 전개되는 이 책은, 논픽션이 주는 생생함과 작가의 범상치 않은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픽션만 아닐 뿐이지, 오히려 픽션 보다 더 드라마틱한 소녀들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기억속의 소녀들이 역사의 흐름속에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마리의 여정은 기쁨과 환희도 있었지만, 그 속에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친구들의 인생에 대한 알 수 없는 씁쓸함과 아쉬움도 존재한다. 그 알 수 없는 감정들을 헤아리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책을 덮고 난 다음에 밀려드는 생각들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무거운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록 글로 제대로 정리가 안되는 건 도대체 무슨 병일까? 이렇게 가벼운; 리뷰로 끝내도 좋을 만한 책이 아닌데. 머리 속에 가득 들어찬 생각들을 이 정도 밖에 꺼내보이지 못하는 내가 밉다.





...그래도 이때의 내셔널리즘 체험은 내게 이런 걸 가르쳐주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그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 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본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와아- 정말 독특하다!
왜 '이사카 고타로'가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의 대표작임에 손색이 없겠다고 느꼈으니, 내가 조만간 읽게 될 그의 최근작 -사신 치바 (웅진 지식하우스)- 에 대한 기대치마저 높아졌다. 그의 다른 작품 <중력 삐에로>라든가, <칠드런>은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올랐었다니 이 작가, 아무래도 반짝 스타로 그칠 것 같지 않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났다. 독자로서의 설레임이 기분 좋다. 이것이 <러시 라이프>를 읽은 직후의 나의 반응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쩐지 삭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뭐든지 살 수 있다구!' 따위의 차가운 대사를 듣게보게 되면 으레 그렇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하면서도 '그래도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는 없을 거야'라는 소심하고 따뜻한 반항심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돈으로 안되는 건 거의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거의 없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시민적 마인드를 가진 평범한 나는 돈 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책에 점점 몰입해 갔다.

이야기는 뒤죽박죽이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되는게 아니라, A의 이야기를 하다가 B의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가 뜬금없이 C와 D의 이야기가 나온다. A는 B와 안면이 있고, C와도 잠깐 스친 인연이다. D와는 마주보고 꽤 길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B,C,D도 마찬가지로 모두와 알게모르게 연결고리가 있다. 아주 단역으로 출연하는 E,F,G들마저 희미하게나마 모두와 연결이 되어 있다. 아아, 복잡하네. 그런데 그 마저도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며 혼란스럽다. 아니 뭐가 어떻게 된거야? 이야기가 하도 중구난방으로 이어져서 슬쩍 짜증이 난다. 이거이거, 나중에 정리가 되긴 하는 거니?

그런데 희한하게도 계속 흥미가 생긴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그저 옴니버스식의 각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유기적으로 얽힌 그들을 보며 각자가 처한 상황이 과연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 지 궁금해져, 다음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상황은 심각일로를 달리다가도 묘하게 정리가 되고, 잘 해결되는 듯 하다가도 처음보다 더 복잡하게 꼬인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해서 달리는 오토바이 경주를 보는 듯 하다. 이야, 이거 스릴 있는데?

<러시 라이프>는 작은 하나하나가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완성품을 이루고 있는 소설이다. 표지에 쓰인 에셔의 그림(Ascending and Descending,1960) 부터 제목인 '러시 라이프Lush life',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개, 단순한 소품인 줄 알았던 종잇조각(사실은 복권)까지.. 그 어느것 하나 가볍게 넘어갈 것이 없다. 모든 이야기가 그물처럼 얽혀있어 어디서 어느 부분이 맞닿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 없을거라 생각하며 지나쳤던 사건들이 이야기의 주체가 바뀌면 메인 스토리가 되고 만다.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또한 주체가 바뀌면 엑스트라로 전락한다. 그리고 다시 주인공으로 탈바꿈... <러시 라이프>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그와 마찬가지다. 먼저 일어난 사건과 그 후의 사건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어느 면이 앞인지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그렇다. 러시 라이프는 표지의 그림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라 알려진 이 그림.


분명히 계단을 올라가기만 하고 있는데, 어느새 맨처음 시작했던 그자리(아랫쪽)에 돌아와 있다. 이상하다. 내려간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높은 곳에 올라왔있다. 2차원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그 계단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지만 그 어느 곳도 최정상이 아니며 그렇다고 최하위도 아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끊없는 오름과 내림의 반복, 그러나 예측불허의 인생.
언제 어디서 마주칠 지 모르는 인연, 그로 인한 뜻밖의 결과.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 오히려 최고의 순간으로 가기 위한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 하던 '도다' 마저도 마지막에는 뒷통수를 맞지 않던가. 인생은 그런 것이다. Lush Life(술 주정뱅이 인생)가 Lush Life(풍요로운 인생)가 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겨난 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뒷 표지에 쓰여진 이 말, <러시 라이프>의 표제어이기도 한 이 말이 가슴에 깊이 박힌다. 어차피 돌고 도는 인생, 어쨌든 It's All Right!



책과 함께 배송되어 온 '빨간색 엽서 4장'은 그저 특이한 일러스트를 내세운 홍보용 엽서인 줄 알았다. (물론 당연히 홍보용이기도 하겠지만) 그 일러스트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되자, 갑자기 머리위로 노란색 느낌표가 띠링(!),하고 떠오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엽서가 없다면 각 챕터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형상화 해놓은 일러스트들은 <러시 라이프>를 가장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주인공들의 얽히고 섥?관계가 어떤 식으로 돌고 도는지 알게 되면 이 엽서만 보고도 웃음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원 작성일 : 2006. 06. 25

블로그 리뷰 정리하다가
내가 이 리뷰를 알라딘에 올리지 않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뒤늦게 올립니다.
근데 왜 안 올렸지? 분명히 예전에 올렸던 것 같은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12-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에셔의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리죠^^

다소 2006-12-0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네. 저 그림 안에 모든 내용이 함축돼 있달까요. 하여간 좋아요.:)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해서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이 받아든 책이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라는 것과 슬쩍 훑어본 인터넷 서점 리뷰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드커버에다 총 726쪽의 방대한 분량은 둘째치고, 행간이 좁아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그냥 몇 페이지를 훑어보는 것 만으로도 기가 질렸기 때문이다. 작은 판형임에도 한 쪽에 30줄이라니...정말 대담한(혹은 무모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두껍고 빡빡한 책은 언제나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방대한 양이든 모조리 독파해주지.'하는 정복욕과 '눈 아프겠다. 며칠은 걸리겠군. 읽다가 지칠지도 모르겠어.'하는 노파심. 나는 이 두가지 감정들을 느끼면서 책의 커버를 넘겼다. 과연 명성만큼 대단한지 두고보겠어, 라는 생각도 잠깐 하면서. 리뷰 평점이 높다는 것은 일종의 인증(?)같은 것인데, 일단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그만큼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그 기대치 때문에 실망할 확률도 높다는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그래서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게된 [핑거스미스]는, 사실 운 좋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책인데, 더욱 운 좋게도 내용까지 끝내줬다. 두껍고 빡빡해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하던 초반의 우려와는 달리 작품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1부의 마지막에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반전이 튀어나와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침대에 널부러져서 책을 읽고 있다가 그 반전에 놀라, 순간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잡았을 정도다. 그리고 박수를, 짝짝짝. 내 반응이 다소 과장되어 보이긴 하나, 1부를 다 읽을 시각이 새벽 2시 정도였는데, 고즈넉한 밤중에 그런 대반전을 맞이하니 그 효과가 2배로 다가왔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흡사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제인에어]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과 맞먹을 정도였다. 여기서 잠깐, 밝혀두지만 내 최초의 반전소설은 [제인에어]였다. 어디가 그렇게 반전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얘기하기 조금 곤란하다.;;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까. [핑거스미스]는 굳이 그 반전이 아니라도 읽는 동안 이상하게 [제인에어]가 생각났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그녀가 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받은 작품중의 하나로 [제인에어]를 꼽았다. 왠지 반가운 느낌.

1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놀라움 연속인데, 내가 그 반전에 뒷통수를 크게 맞았던 데에는 아마 이 소설을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고 한정지어 생각했던 이유가 가장 큰 듯 하다. 특히 방점을 '레즈비언'에다 찍고 봤다가 된통 당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흔하지 않은 소재니까. 허나 이 소설은 그 예상을 뒤집어 버리면서 시작되는 반전부터가 진정한 묘미다. 이는 1부에서 조금 더디게 흐르던 독서의 진행이 2부 부터 눈에 띄게 빨라졌음을 뜻한다. 반전의 효과로 집중력이 높아진 탓이다. 또 1부와 2부, 3부의 시점이 각기 다른 것과 문체의 변화도 재미있다. 이야기의 화자가 바뀌면서 마치 분위기가 환기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인지 초반 열댓 장 빼고는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 책에 대한 좀 더 맛깔스러운 리뷰를 쓸 수가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역시 쉽지가 않다. 추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소설, 게다가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설은, 읽을 때는 사정없이 빠져들지만 그 감상을 쓰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행여 스포일러가 되어 책을 읽을 예비독자들의 재미를 빼앗아 버리면 안되니까. (스포일러 그거, 예고없이 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 불쾌한 일이 되고 만다. 난 심지어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리뷰 읽다가 중요한 '반전 포인트'를 누설한 리뷰어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도 있다.-_-;;;) 어쨌든 짧지만 강한 한마디를 남기자면 '영화,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촌스러운 추천 문구겠지만 그 강렬함은 정말 상당하니까. 아, 혹시 이 리뷰를 읽고 그 반전이 뭘까, 고민하다가 책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이미 알려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말고, 화려한 조명 뒤의 어두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니까 말이다. 특히 런던의 읍습한 뒷골목이라든가 한적한 시골 대저택의 풍경, 여인네들의 복장이나 그 시대의 문화적 관습,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위치와 대우가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회가 된다면 그 시대의 문화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을 정도. 역사와 문화라면 무조건 열광하고 보는 내게 추리 혹은 스릴러라는 요소를 덧씌워놓았으니,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빠져드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가 이 책을 위해 얼마나 탄탄한 자료 조사를 했는지 느껴져서 더욱 만족스러웠기도 했고. 여러모로 이 책은 나의 버닝 포인트를 제대로 눌러준 책이었다.

좋은 책은 그 작가의 다른 저서들이나 관련 작품을 모조리 감상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세라 워터스의 처녀작이자 [핑거스미스]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는 [벨벳 애무하기]가 읽고 싶어졌다. 조만간 읽어야지! 아, 그리고 BBC에서 3부작으로 만들어진 TV판 [핑거스미스]도 있다던데, 그것도 보고 싶네. 평을 들어보니 꽤 괜찮던데... 봐야겠다. 앗, 그러고보니 이 작가 [나이트워치]의 작가다. 이것도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와, [핑거스미스]의 파급효과가 대단하구나... 훗, 고로 당분간 난 좀 바쁠듯 하다. 읽을 책이 많아져서 행복하다. :)


덧) 어머나, [벨벳 애무하기]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출간이 안 된 상태고, [나이트 워치]는 내가 알고 있는 책과 다른 작품이다; 제목이 같아서 같은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이럴수가...;;;; 에잇, 바보. 괜히 들떠서 호들갑 떨었네...;ㅁ; 그럼 언제쯤 출간될까나...읽어보고 싶은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 2006-12-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서 찾아본적이 있는데 세라워터스 책은 앞으로도 나온대요.^^
티핑더벨벳이 먼저 나오고 어피니티가 나올것같습니다.
내년쯤에 티핑더 벨벳이 나온다는데....
저는 TV판으로 티핑더벨벳을 봤는데 핑거스미스와는 또다른 의미로 어마어마한 TV드라마라는......(드라마치고는 야해요.후훗)

다소 2006-12-2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ple 님// 그렇군요, 기대되네요.^^
[핑거...]도 TV드라마 치고는 강도가 좀 세다고 해서 놀랐는데, [벨벳...]도 그런 모양이군요. 호오...더욱(?) 기대되는데요? 히히히~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시한부 인생'이라 하면, 흰 가운을 입고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의사에게서 "앞으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입니다." 따위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망(예정)통보를 받은 환자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의 삶 정도? 다소 가벼운 투로 예를 들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아니 실제로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전인류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냐고 손사레를 치며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전환해보면 이것은 마냥 웃어넘길수 만은 없는 얘기다. 여기 픽션이긴 하지만 그 예가 있다.

어느 날, 지구 종말을 운운하는 뉴스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지구가 머지않아 소행성과 충돌할 것이라는, 마치 90년대 영화같은 내용이 그 이유다. 그리고 뉴스는 점차 종말을 확실시하는 보도를 했고, 결국 세계 멸망이 확실해졌다는 발표가 났다.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8년. 이 어정쩡한 시간 앞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어마어마한 소식에 얼이 빠져 있던 사람들은 8년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약탈과 살인, 방화와 폭력, 강도가 들끓고 피난 행렬이 줄을 지었다. 어차피 소행성이 충돌하게 되면 어디로 도망치든 마찬가지일 텐데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짐을 싸고 허둥지둥 차를 몰아 도망가기에 바빴다. 폭동이 일어나고 차와 건물들이 불에 탔다. 이러다가는 소행성이 충돌하기도 전에 세상이 끝장나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격앙돼 있었다.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이 흘러 이제 남은 시간은 3년. 불안과 공포는 여전하지만 세상은 묘하게 차분하다. 아마도 잠시 소강기에 접어든 것일 게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치 수능 D-100일을 세는 것처럼, 종말의 그날을 향해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한 지구. 이 SF 블록버스터급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종말이 임박해 오면 또 어떻게 불안을 표출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닥치지 않은 현실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사람들은 너무 지쳤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것 처럼, 사람들도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왜 사과 나무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과 나무를 심었다'는 행위 그 자체일테니까. 종말이 오더라도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고, 복싱연습을 하고, 어차피 종말이 오면 저절로 해결될텐데도 복수를 계획하고, 자살을 꿈꾼다. 그러면서 용서하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가슴속에 '어쩌면...'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역시 판도라의 상자속에 마지막 남은 건 희망이야. :)

유사한 설정을 지닌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는 애초에 어렵긴 해도 해결법이 제시됨으로써 영웅 탄생과 그로 인한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고, 그것이 목적인 영화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은 고비가 있을 때마다 긴장은 될 지언정, 지구가 멸망할까봐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유의 영화야 힘든 고비와 여정 뒤에 찾아오는 극적 해결이 관건이니까. 그런데 똑같은 설정인데도 포커스를 달리 맞추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고만다. 즉, <종말의 바보>는 위기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의 일대기가 아닌, 힘도 빽도 없는 소시민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라는 뜻이다. 긴장과 스릴은 온데간데 없지만, 대신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책은 센다이 힐즈 타운을 무대로 총 8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에피소드마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기법이랄까,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서 읽다가 조금 웃었다. 이 작가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구성 인물들을 거미줄 치듯이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인 것 같다. '러시 라이프'나 '사신 치바'에서도 그랬는데, 예를 들면 한 에피소드에서 중심인물, 즉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조연급, 혹은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짤막한 단편성 이야기라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하나의 큰 틀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 되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재미가 되어버렸다. 텍스트로나마 아는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에 슬쩍 얼굴을 내미니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좀 우습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괜히 반가워서 씨익- 웃게 된다. 그 외에도 '이사카'스러운(?) 것은 많다. 분명히 무거운 소재인데 발랄하고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는 점,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끊임없이 부각시킨다는 점, 그러면서도 책을 덮을 때엔 잠시나마 숙연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 비교하자면 '정극'이라기 보다 '시트콤'인 셈이다. 지나치게 쿨하고 담백해서 자칫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인생의 짐이란 누구에게나 무거운 법.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 짐을 내려놓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덧) <종말의 바보>를 읽으면서 난 끊임없이 '만약에 정말로 지구 종말이 온다면?'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음... 그렇다면 나는 역시 4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든다. :)
<동면의 소녀>에 나오는 '다구치 미치'처럼 서재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번호 매겨가며 읽고 기록을 남기는 거다. 년/월/일/시까지 꼼꼼히 체크해가며 열심히 읽어야지. 그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아- 그런 생각을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아, 기분좋은 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zart 2007-03-3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자 후기가 좋았습니다...ㅎㅎ 물론 농담이고요, 번역한 사람으로서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다소 2007-04-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zart 님 / 하하, 그러시군요.^^; 재밌는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