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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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는 그 어떤 학설이나 과학적 논리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단적인 예로, 자신의 아이가 자동차에 깔려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어머니가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여 혼자서 자동차를 번쩍 들었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에이, 설마!''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지켜본 소수의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사람들은 점점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런 상황의 발생근거를 급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숨겨진 힘쯤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일어나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므로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신비함으로 무장되어 경외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짐작건대 이 단계에서는 그 ''사건''이 이슈가 될 수는 있어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사람들이 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어쩌다 한번 있는 신비한 일''일테니까. 그러나 만약 그와 같은 힘 -이를테면 초능력 같은- 을 수시로, 그것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을 본다면? 모르긴 몰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거나 비정상으로 인식,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할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장난처럼 말하는 것과 정말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초능력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령,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생각이 들려온다,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당사자가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어떤 사물에 손을 얹으면 그 사물을 거쳐간 수많은 기억들이 제 머리로 흘러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자. 얼핏 이것은 굉장한 축복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신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책 속의 한 예를 들어보겠다. 어느 쇼핑점 계산대 앞에서 내 뒤에 서 있는 여자가 시종일관 ''시어머니를 어떻게 죽일까''하고 궁리하는 걸 알게 된다면. 혹은 공원을 거닐다 벤치에 잠깐 앉았는데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잔혹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말을 누구한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믿어줄 리도 없거니와 쉽게 이야기 할 수도 없다. 정신병자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더욱이 자신이 그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끔찍한 일이 되고 만다.

폭풍우 치는 밤의 어린이 실종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용은 잠들다>는 앞서 장황하게 얘기한 초능력자(사이킥, Psychic)의 이야기를 다루는 미스터리 물이다.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어린이 실종사건은 기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도구일 뿐, 사실은 더욱 복잡한 스토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정황상 누군가가 뚜껑을 열어놓은 맨홀에 빠진 것이 분명한 이 사건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다른 능력을 가진 한 소년과 화자인 잡지기자가 개입되면서 독자는 일찌감치 범인(?)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속이 후련해야 정상이건만 그것도 잠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맘 속 한켠이 묵직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단언컨대 그것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자는 본격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용은 잠들다>는 그녀의 전작 -물론 우리나라에 한함- 인 <화차>와 <이유>보다 훨씬 앞서서 출간된 책으로 <이유>와는 무려 7년여의 텀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최근작이 먼저 출간된 탓에 <화차>와 <이유>를 먼저 읽었는데, 그때문에 난 그녀가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정통한 작가인 줄 알았다. 이런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최근에 출간된 이 책은 그녀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작품 자체로만 보면 앞서 얘기한 두 작품보다 조금 약한 듯 하긴 해도, 풋풋함과 따스함이 책 한가득 채우고 있어 읽는 이에게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한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이미 이 때부터 그녀의 매력적인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 심리와 내면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사에코가 그리는 ''청사진''에 관한 에피소드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물론 행복한 삶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한 인간의 맹목적인 목표의식(?)이 무섭게 느껴졌음을 부인할 생각도 없다. (왜 나는 이 부분에서 <화차>의 신조 교코가 생각난 것일까) 여하튼 미야베 미유키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새삼 놀라워 ''역시 미야베 미유키!'' 라는 말이 또 한번 튀어나오는 책이었다.

화자인 ''고사카 쇼고''는 서두에서, 자신은 방관자적인 입장에 있던 인간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눈을 통해서 본 두 소년의 이갸기는 독자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고 믿는다. 고사카의 마지막 말처럼 내 안의 용이 아직 자고 있는지,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부디, 부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무서운 재앙이 내리는 일이 없게 나를 지켜달라고 기도하련다. 그리고 잠에서 깬 용과 함께 살다간 한 소년과 남아있는 한 소년을 오래도록 기억하련다. 이것 역시 그가 말하는 방관자로서의 의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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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완전 정복
배리 파버 지음, 최호정 옮김 / 지식의풍경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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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법에 관한 수많은 도서들의 홍수 속에 입맛에 꼭 맞는 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외국어 학습법에 관한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와 제 2 외국어를 품고 살았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당황하기 일쑤다. 정말이지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외국어 공부에 들인 시간과 돈의 액수만 놓고 봐도 그런 순간이 오면 입에서 술술 나와야 정상이건만 이 외국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전에서 뒷통수를 때리고 만다.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음달 학원비를 등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외국어 중에 한국인의 혈압을 올리는데 단연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영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영어를 마스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에 쏟아부은 돈만 합쳐도 타워팰리스 한 채는 거뜬히 세우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실 일정 수준으로 마스터만 한다면 영어란 굉장히 매력적인 언어로,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취업의 문이 넓어지고, 지식인의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으며 사소하게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아주 많은 언어다. 어느 외국어나 마찬가지겠지만, 쉽게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그 언어의 공략법을 설파해놓은 학습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것으로, 사실 어떤 내용일지 뻔히 다 알면서도 - 왜 있잖은가. 많이 듣고, 읽고, 외우라는 뻔한 것들 - '혹시' 하는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쯤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25개 외국어를 마스터 하고도 더 배울 언어가 없나,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 '배리 파버'가 지은 이 책은 그에 관한 자전적 성격을 띠는 책으로, 그가 십수년간 언어를 배울때 사용한 방법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그러나 네이밍 센스는 영 아니올시다. '완전 정복'을 부르짖는 수많은 타 도서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확- 떨어졌다고 해야할까. 참고로 원제는 'How to learn any language'이다.) 남은 고작 하나도 마스터하기 힘들어서 허덕대고 있는데, 25개라니... 지금 장난하나, 라는 생각과 함께 '우와, 대단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언어에 대한 천재적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타 학습법 관련 도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의무감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져라'라던가, '크게 소리내어 읽어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라' 같은 것들. 나야 처음부터 별 기대없이 그저 '외국어를 25개씩이나 마스터한 사람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본 것이므로 별로 실망할 것도 없었다만, 혹시 커다란 기대를 하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미 시중에 깔린 것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으니까. 요는 역시 천재적 감각보다 노력이 중요하단 말이다.

사실, 이 책의 미덕은 특별한 학습법에 있는게 아니다. '배리 파버'가 어린 시절부터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부터 시작해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호기심의 과정'을 엿보면서, 읽는 사람이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를 하게 되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모든 자기계발 책들이 실제로 자기 계발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하는 저자는, 적어도 '일주일이면 누구만큼 한다'는 식의 번지르르한 말만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기에 신뢰가 간다. 그가 말하는 학습법은 오히려 아주 고리타분한 것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보편적인 방법들이다. 즉, 시간과 노력만이 외국어를 마스터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카세트 테이프 몇 번 듣는다고 귀가 뻥- 뚫리길 바라는 건 환상이며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못을 박는다. 테이프 하나를 들어도 철저히 공부해야 하고, 나오는 단어마다 붙들고 늘어져야 하며 하루라도 외국어 공부를 쉬면 안되고,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최대한 달라붙어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쯤되면 '아, 역시 외국어는 독하게 굴어야 내 것이 되는 거구나!'를 실감하게 되며 한숨이 휴- 튀어 나온다. 외국어가 거저 먹기 힘든 것임을 알고는 있어도 이런식으로 재차 확인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외국어 학습법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그의 어투와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자로서의 자부심이다. 간혹 잘난척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거야 가진 자가 내보이는 여유같은 같은 것으로, 상대적으로 못 가진 내가 느끼는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그는 외국어 학습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외국어를 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그때부터 실력은 다시 주춤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말 안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실력을 내보이는게 차라리 낫다며 절대로 '과시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정말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전공으로 일본어 좀 한다고 일본어 전혀 모르던 친구에게 은근히 과시해대던 지난날이 생각나서였다. 아- 부끄러워. 졸업 후, 전혀 손대지 않아 이제 과시는 커녕 원어민과 대화나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지만 내 기억으로 한창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때 잘난척하다 오히려 주춤, 이 꼴이 된게 아닌가 싶어 속이 쓰리다. '과시하지 말자'를 외국어 학습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탕탕)

책을 읽다가 문득 '하인리히 슐리만'의 <고대에 대한 열정>이란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의 자서전인데, 고고학자로서뿐 아니라 15개의 어학에 능통한 슐리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으로, 책을 읽을 당시에 그의 외국어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었더랬다. 생각해보니 여러 언어에 통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역시 '자나 깨나 외국어 공부'였다. 특히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그들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다. 슐리만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말하면 '무조건 암기'였는데, 어딜가나 손에는 읽을 것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방법으로 기억력 향상효과까지 얻었다는데, 배리 파버는 이보다 더 심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즉, 벨이 울리는 동안)에도 손에 단어장을 들고 한 단어라도 주의깊게 보라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고 비참하게(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공부해야만 외국어를 마스터 할 수 있는 걸까, 잠깐 회의가 들긴 하지만 '한가지 언어로만 살기에 세상은 너무 흥미롭다'는 파버의 말을 믿고 나도 이제 좀 독해져봐야겠다.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때문이라도 독해져야 될 필요가 있긴 하다;; 역시 이런 유의 책들은 의욕을 고취시키는덴 탁월한 것 같다. 이번엔 좀 오래가야 할텐데... (조금 기대되긴 한다;)


외국어 학습의 다섯 가지 거짓말.

1. 산책을 하면서 노랫말을 외우듯 외국어를 익힐거야. - 지름길로 가려다가 더 돌아가는 수가 있다.
2. 공부 시간? 하루 이틀 정도는 건너뛸 수 있어. - 하루 건너뛰려고 하다가 1년 지체 하는 수가 있다.
3. 어려운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돼. - 장벽은 있게 마련 굴복해선 안된다.
4. 원어민도 아닌데 억양이나 발음은 대충하지 뭐. - 아니다. 억양이 훌륭하다면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5. "외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때가 있다? - 스스로 인정하는 실력은 한계가 있다. 남이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쌓자.

 

덧) 열 권의 학습법에 관한 책을 읽는 것 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그것에 자극받아 뭐든지 실천하는게 더 중요하다. 그 책들을 읽는 동안 마치 '그 분야에 능통한 자'가 된 듯한 느낌에 황홀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말라. 실천하지 않는다면 학습법에 관해서만 능통한, 실속없는 자가 되기 십상이니, 반드시 끈기를 갖고 밀어붙여 보자. 작게나마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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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죄악 -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 1 밀리언셀러 클럽 36
로렐 K. 해밀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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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인트 루인스'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특별하다. 뱀파이어들의 생존을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몇 안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이 도시는 뱀파이어들에게는 안식처같은 곳으로, 당국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편안한 생활이 가능했다. 그런 '세인트 루이스'에서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름하여 뱀파이어 살해 사건.

아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뱀파이어 살해라니. 뱀파이어가 인간을 살해한다면 모를까, 인간보다 몇 십배나 오래 사는데다 힘도 몇 백배나 센 뱀파이어를 죽이는 존재가 있다니. 게다가 조건적으로나마 뱀파이어의 생존이 합법화 된 곳에서 뱀파이어가 죽어나간다니 심상치 않은 일이다. 뱀파이어 집단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마스터 뱀파이어는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름 : 애니타 블레이크
직업 : 소환사 (가끔 '뱀파이어 헌터'일도 담당)
별명 : 사형집행관

즉 뱀파이어와는 천적이라 할 수 있으며 아주 껄끄러운 사이. 그런 애니타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니 뱀파이어들이 제대로 곤경에 처했나보다. 그러나 애니타는 쉽게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하를 통한 회유작전이 통하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마스터 뱀파이어는 애니타와 그녀의 친구를 위험에 빠트려 협박을 하기에 이른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의 기억을 저당 잡힌 애니타는 어쩔 수 없이 요청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직접 뱀파이어 살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애니타 블레이크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그것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우리나라에는 이제서야 소개되지만 이 책의 출간 당시 미국에서는 대단한 호평을 들었던 모양이고, 그 후로 시리즈를 줄줄이 발표한 걸로 미루어 꽤 많은 독자를 거느린 것으로 보인다. 책의 뒷편에도 미국, 영국, 러시아, 헝가리, 그리스, 스페인 등 수백만 독자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하니 괜한 허풍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우선 주인공의 캐릭터가 뚜렷하여 개성적인데다 주변 인물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꽤 신사적이지만 장난 치듯 느끼한 멘트로 애니타를 순식간에 닭살 돋게 만드는 장 클로드. 멋진 몸매와 잘 생긴 얼굴의 뱀파이어 중독자 필립. 비록 애니타의 적이긴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마스터 뱀파이어 니콜라오스. 그 외의 인물들도 쉽게 잊혀질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토리는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공을 들인 탓에 스토리의 진행이 더디고 심지어는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뱀파이어를 죽인 범인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옅어지기까지 했을 정도. -나중에 범인을 알았을 때, 놀람보다는 '아, 얘가 범인이야? 범인을 쫓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비쥬얼이 강하여 상상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1인칭 시점에서 풀어가는 이 이야기는 마치 뱀파이어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특히 공포물인가 싶다가 순간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더니 또 미스테리 요소가 드러나는 이 책은 한 마디로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조잡하다거나 뒤죽박죽인 느낌은 아니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새로운 장르를 보는 듯한 느낌. 신선하다.

뱀파이어라 하면 '인간들의 목을 물어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血)로 기와 식욕을 충당하는 흡혈귀. 그 증거로 날카로운 송곳니 자국을 남기며 피의 공급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불의의 사고 -예를 들면 햇빛에 노출된다거나 말뚝이 가슴에 박힌다거나 하는- 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반 불사의 몸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쨌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으니 변종 귀신의 일종쯤으로 생각했고, 이 뱀파이어가 어떤 경로로 처음 탄생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껄끄러운 존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것은 쉬이 부정할 수가 없다. 일찍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란 영화에서 잘 생기다 못해 심지어 아름답기까지한 뱀파이어가 등장해 뭇 여성(혹은 남성)들의 마음을 홀렸지 않은가. 굳이 이 영화가 아니라도 우리에게(적어도 나에게) 인식된 뱀파이어의 존재란 무섭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였다.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간단하다. 내가 접한 어떤 책이나 영화,드라마도 뱀파이어를 못생기게 묘사해놓은 건 볼 수가 없었거든; 이건 중요한 문제다. 특정 대상의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

이런 나의 인식은 이 책을 통해 조금 변형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뱀파이어는 역시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모두가 다 잘 생기진 않았다라는 것. '윌리 매코이'를 보면 잘생겼단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겠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아름다움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거의 속임수에 가깝지만. '니콜라오스'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하긴 천년을 넘게 살았다니 노력없이는 그 아이같은 외모가 유지 되긴 어렵겠지.(뭐, 체형적인 이유도 있지만) 아무튼 이 책이 애니타 시리즈의 첫 작품인 만큼 다음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라서 높은 점수는 못 주겠다. 그렇다고 후속 작품을 안 읽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꼭 읽어보고 싶기까지 하다. 앞서 말했듯 캐릭터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미 '애니타'에게 빠져버린 것 같다. (어쩌면 장클로드에게 반한 걸지도...; 어째서 필립이 아니고 장클로드일까? +_+)



덧) 아, 그러고보니 이 책!! 왜 이렇게 오타가 많은 거야!?
처음에 살해 '시건'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시건? 시건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거다. 알고보니... 그건 '사건'의 오타였다.
물론 처음에는 '사건'의 오타겠거니 했는데, 그게 300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시건'으로 되어 있어서 난 내가 모르는 단어인 줄 알고 검색까지 해봤다. ('시건'이란 단어가 있긴 하지만 '사건'과는 전혀 다른 뜻) 물론 300페이지 이후에는 '사건'이라고 제대로 표기되어 나오지만 이거 정말 심각한 오타 아닌가. 읽는 내내 얼마나 거슬리던지. (너무 많아서 세다가 포기했다.) 초판 1쇄는 다 그러려나; 어쨌거나 출판사는 2쇄부터 꼭 이 오타를 정정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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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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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페이지수가 겨우 150쪽 남짓한 얇은 하드커버의 책이다. 그럼에도 한장한장을 넘기는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가 않다. 술렁술렁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 사랑에 대한 수 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는 책이었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이야기는 아주 담담하고 관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스펙터클하고 적극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지조없이 흔들렸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결혼이란 거 한번 해볼만 한 거구나!'하다가도 '결혼같은 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은데?' 로 바뀌는 것. 그도 그럴것이 이야기속의 화자는 결혼한 지 3년이 채 안되는 여자로, 결혼한 여자의 조금 씁쓸한 고독함과 기질적으로 자유로운 열정사이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주말은 특별한 것이다. 그녀의 모든 에너지는 주말에 거의 소모될 정도라고 하니 그녀의 '주말'이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결혼하기 전에야 남편과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날은 모두 주말 같았겠지만 결혼 후에는 그렇지 않다. 결혼은 연애가 일상이 되는 거니까.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생활은 규칙적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이므로 당연히 그들이 무언가를 같이 하는 날은 주말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주말 내내 잠만 자거나, 할인 매장에 가는 정도라 해도 결혼 후,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연애할 때와는 다른 특별한 어떤 것을 느끼게 하나보다. 그것이 결혼의 묘미일까? 그렇게 매일매일이 주말같은 인생이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러면 산산조각날 인생이란 걸 어렴풋이 느끼는 여자. 그녀를 보며 나도 결혼한 여자의 일상을 잠시 꿈꾸어 보게 된다.

작품해설을 맡은 '이노우에 아레노'는 이 책을 두고 위험한 책이라고 했다. 이유는,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증오를 생각하고,
증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사랑의 기억을 추억하고,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고,
둘인 사람은 혼자가 되고 싶어할 테니까.

라고 적고 있다. (p.138)
이 말에 무척 공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지조없이 흔들리는 마음속에 한 번씩 떠올렸던 것들이기 때문에.
내 경우 결국은 사랑의 추억을 기억하고, 둘이 되고 싶어하는 쪽이므로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느낀 것들을 햇빛 쨍쨍한 오후처럼 나른하게, 혹은 별빛 가득한 밤처럼 감성적으로 써낸 글들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맞춰주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생활패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 평범한 일상이 시시해보이기는 커녕, 행복해보여 부럽기까지 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나 요즘 사랑이 하고 싶나보다.



덧) 1. 다섯 번째 이야기 「밥ごはん」에서 여행을 가겠다는 여자의 말에 "그럼, 밥은?" 이라고 대꾸한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 떨어진다. T^T 아아, 이것이 결혼한 남자의 실체인가, 싶은 생각이 확- 드는 것이..-물론 그 한 단면 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겠지만- 정 떨어지는 건 사실. 하다 못해 "그럼, 나는?"이라고 했다면 차라리 괜찮았을텐데...

2. 아- 이것도 직업병 비스무리한 건가; 책 읽다가 맞춤법 오류나 오타가 눈에 띄면 아주 찜찜하다. -ㅁ-

"당신도 내 생각해야 ." -->p.49

이 경우 '당신도 내 생각해야 .'가 맞다.
혹시 여태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해서 책까지 뒤져봤으나 역시 '돼'가 맞다.
흐음.. 교열상의 실수일까나? - _-
내가 읽은 건 초판 1쇄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이 이후로도 계속 저 상태인건 아니겠지? (헉-)
아아- 비교해보고 싶어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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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5-2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이세요. ㅋㅋ

다소 2006-05-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흐흐- 병이죠^^;
 
연애시대 1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면 아주 로맨틱하고 근사한 -사실은 보는 사람 닭살 돋아 죽을 것 같은- 연애사가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살랑살랑 바람부는 봄날에 애인 팔짱끼고 길 걸어가다가 '나 잡아봐라~'할 것 같은 이런 제목이라니.. 스르륵 훑어보고 흥, 하고 콧방귀나 껴주려고 했으나 이거이거, 내용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담담하게 혹은 살짝 흥분한 채,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들려주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존재와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1년 3개월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돌아온 싱글'이 된 두 남녀는 이혼 후에도 가끔씩(아니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결혼한 호텔에서 결혼기념일마다 보내주는 50% 할인권이 아까워서 그 날 하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었다. 그 호텔 스테이크가 아주 일품이라나. 아니 그깟 스테이크가 뭐라고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나나 싶지만 사실 그런건 무시할 수 없는 일상중에 하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50%나 되는 할인권은 그냥 썩혀버리기엔 굉장히 아까운 거니까. 그 후, 그들이 예전에 자주 가던 가게에서 마주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을 돌려주려고 만난다거나 혹은 자잘한 용무로 만나는 횟수가 늘다보니 그들은 어느새 '친구'라는 새로운 관계에 놓여있다. 말로는 친구관계라 하나 아직 털어내지 못한 지난 날의 오해와 응어리는 그들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도 못하고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으르렁 거리기 일쑤인 그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응원하며 서로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기에 이른다. 그렇게 두사람은 각자의 연애를 하는듯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은 그들의 지난 날을 돌이키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고만다.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신혼을 즐기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들은 추억에 젖는다.

현재 방송중인,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드라마에는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헤어지고 시작된 연애라니..다소 역설적인 이 부제는 이 작품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는 최상의 카피다. 게다가 그 헤어짐조차 연인사이에 으레 있을 수 있는 평범한 헤어짐이 아니다. 이혼이다. 결혼을 한 부부의 헤어짐. 서류상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는 이혼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그 헤어짐 후, 그들은 연애를 시작한다.(본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지만...) 헤어짐의 이유야 당사자가 아닌 이상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태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 생각했던 나의 사고방식에 적게나마 변화가 왔달까. 연애의 끝은 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아직 결혼을 할 계획도, 할 마음도 없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진지하게 생각할 것 같다. 연애에 있어서나 결혼에 있어서나 중요한 건 관계를 지속하는 힘. 사소한 오해나 실망감을 얼마나 빨리 응어리 지지않게 풀 수 있느냐가 지속성의 관건이리라. 속으로 삭이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가끔은 큰 소리를 치고 울부짖으며 풀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달까.

아, 그리고 중요한 것!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직 빛바랜 핑크빛의 그 어떤 감정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답시고 또다른 혼란속에 빠지는 꼴일테니...

아직 2권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제대로 된 감상은 힘들겠지만 일단은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마음에 든다. 각자의 입장에서 풀어쓰는 구성도 그들 나름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좋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드라마보다는 밋밋한 원작이다. 자고로 원작보다 나은 영상은 드물다는데, 이건 그만큼 드라마 제작진의 연출이라든가 극본이 훌륭하단 말이겠지. 게다가 1권보다 드라마의 진행이 빠르다니, 너무해. 2권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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