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완전 정복
배리 파버 지음, 최호정 옮김 / 지식의풍경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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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법에 관한 수많은 도서들의 홍수 속에 입맛에 꼭 맞는 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외국어 학습법에 관한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와 제 2 외국어를 품고 살았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당황하기 일쑤다. 정말이지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외국어 공부에 들인 시간과 돈의 액수만 놓고 봐도 그런 순간이 오면 입에서 술술 나와야 정상이건만 이 외국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전에서 뒷통수를 때리고 만다.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음달 학원비를 등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외국어 중에 한국인의 혈압을 올리는데 단연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영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영어를 마스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에 쏟아부은 돈만 합쳐도 타워팰리스 한 채는 거뜬히 세우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실 일정 수준으로 마스터만 한다면 영어란 굉장히 매력적인 언어로,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취업의 문이 넓어지고, 지식인의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으며 사소하게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아주 많은 언어다. 어느 외국어나 마찬가지겠지만, 쉽게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그 언어의 공략법을 설파해놓은 학습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것으로, 사실 어떤 내용일지 뻔히 다 알면서도 - 왜 있잖은가. 많이 듣고, 읽고, 외우라는 뻔한 것들 - '혹시' 하는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쯤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25개 외국어를 마스터 하고도 더 배울 언어가 없나,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 '배리 파버'가 지은 이 책은 그에 관한 자전적 성격을 띠는 책으로, 그가 십수년간 언어를 배울때 사용한 방법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그러나 네이밍 센스는 영 아니올시다. '완전 정복'을 부르짖는 수많은 타 도서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확- 떨어졌다고 해야할까. 참고로 원제는 'How to learn any language'이다.) 남은 고작 하나도 마스터하기 힘들어서 허덕대고 있는데, 25개라니... 지금 장난하나, 라는 생각과 함께 '우와, 대단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언어에 대한 천재적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타 학습법 관련 도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의무감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져라'라던가, '크게 소리내어 읽어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라' 같은 것들. 나야 처음부터 별 기대없이 그저 '외국어를 25개씩이나 마스터한 사람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본 것이므로 별로 실망할 것도 없었다만, 혹시 커다란 기대를 하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미 시중에 깔린 것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으니까. 요는 역시 천재적 감각보다 노력이 중요하단 말이다.

사실, 이 책의 미덕은 특별한 학습법에 있는게 아니다. '배리 파버'가 어린 시절부터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부터 시작해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호기심의 과정'을 엿보면서, 읽는 사람이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를 하게 되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모든 자기계발 책들이 실제로 자기 계발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하는 저자는, 적어도 '일주일이면 누구만큼 한다'는 식의 번지르르한 말만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기에 신뢰가 간다. 그가 말하는 학습법은 오히려 아주 고리타분한 것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보편적인 방법들이다. 즉, 시간과 노력만이 외국어를 마스터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카세트 테이프 몇 번 듣는다고 귀가 뻥- 뚫리길 바라는 건 환상이며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못을 박는다. 테이프 하나를 들어도 철저히 공부해야 하고, 나오는 단어마다 붙들고 늘어져야 하며 하루라도 외국어 공부를 쉬면 안되고,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최대한 달라붙어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쯤되면 '아, 역시 외국어는 독하게 굴어야 내 것이 되는 거구나!'를 실감하게 되며 한숨이 휴- 튀어 나온다. 외국어가 거저 먹기 힘든 것임을 알고는 있어도 이런식으로 재차 확인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외국어 학습법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그의 어투와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자로서의 자부심이다. 간혹 잘난척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거야 가진 자가 내보이는 여유같은 같은 것으로, 상대적으로 못 가진 내가 느끼는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그는 외국어 학습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외국어를 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그때부터 실력은 다시 주춤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말 안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실력을 내보이는게 차라리 낫다며 절대로 '과시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정말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전공으로 일본어 좀 한다고 일본어 전혀 모르던 친구에게 은근히 과시해대던 지난날이 생각나서였다. 아- 부끄러워. 졸업 후, 전혀 손대지 않아 이제 과시는 커녕 원어민과 대화나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지만 내 기억으로 한창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때 잘난척하다 오히려 주춤, 이 꼴이 된게 아닌가 싶어 속이 쓰리다. '과시하지 말자'를 외국어 학습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탕탕)

책을 읽다가 문득 '하인리히 슐리만'의 <고대에 대한 열정>이란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의 자서전인데, 고고학자로서뿐 아니라 15개의 어학에 능통한 슐리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으로, 책을 읽을 당시에 그의 외국어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었더랬다. 생각해보니 여러 언어에 통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역시 '자나 깨나 외국어 공부'였다. 특히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그들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다. 슐리만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말하면 '무조건 암기'였는데, 어딜가나 손에는 읽을 것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방법으로 기억력 향상효과까지 얻었다는데, 배리 파버는 이보다 더 심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즉, 벨이 울리는 동안)에도 손에 단어장을 들고 한 단어라도 주의깊게 보라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고 비참하게(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공부해야만 외국어를 마스터 할 수 있는 걸까, 잠깐 회의가 들긴 하지만 '한가지 언어로만 살기에 세상은 너무 흥미롭다'는 파버의 말을 믿고 나도 이제 좀 독해져봐야겠다.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때문이라도 독해져야 될 필요가 있긴 하다;; 역시 이런 유의 책들은 의욕을 고취시키는덴 탁월한 것 같다. 이번엔 좀 오래가야 할텐데... (조금 기대되긴 한다;)


외국어 학습의 다섯 가지 거짓말.

1. 산책을 하면서 노랫말을 외우듯 외국어를 익힐거야. - 지름길로 가려다가 더 돌아가는 수가 있다.
2. 공부 시간? 하루 이틀 정도는 건너뛸 수 있어. - 하루 건너뛰려고 하다가 1년 지체 하는 수가 있다.
3. 어려운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돼. - 장벽은 있게 마련 굴복해선 안된다.
4. 원어민도 아닌데 억양이나 발음은 대충하지 뭐. - 아니다. 억양이 훌륭하다면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5. "외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때가 있다? - 스스로 인정하는 실력은 한계가 있다. 남이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쌓자.

 

덧) 열 권의 학습법에 관한 책을 읽는 것 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그것에 자극받아 뭐든지 실천하는게 더 중요하다. 그 책들을 읽는 동안 마치 '그 분야에 능통한 자'가 된 듯한 느낌에 황홀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말라. 실천하지 않는다면 학습법에 관해서만 능통한, 실속없는 자가 되기 십상이니, 반드시 끈기를 갖고 밀어붙여 보자. 작게나마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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