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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죄악 -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36
로렐 K. 해밀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여기 '세인트 루인스'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특별하다. 뱀파이어들의 생존을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몇 안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이 도시는 뱀파이어들에게는 안식처같은 곳으로, 당국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편안한 생활이 가능했다. 그런 '세인트 루이스'에서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름하여 뱀파이어 살해 사건.
아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뱀파이어 살해라니. 뱀파이어가 인간을 살해한다면 모를까, 인간보다 몇 십배나 오래 사는데다 힘도 몇 백배나 센 뱀파이어를 죽이는 존재가 있다니. 게다가 조건적으로나마 뱀파이어의 생존이 합법화 된 곳에서 뱀파이어가 죽어나간다니 심상치 않은 일이다. 뱀파이어 집단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마스터 뱀파이어는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름 : 애니타 블레이크
직업 : 소환사 (가끔 '뱀파이어 헌터'일도 담당)
별명 : 사형집행관
즉 뱀파이어와는 천적이라 할 수 있으며 아주 껄끄러운 사이. 그런 애니타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니 뱀파이어들이 제대로 곤경에 처했나보다. 그러나 애니타는 쉽게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하를 통한 회유작전이 통하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마스터 뱀파이어는 애니타와 그녀의 친구를 위험에 빠트려 협박을 하기에 이른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의 기억을 저당 잡힌 애니타는 어쩔 수 없이 요청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직접 뱀파이어 살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애니타 블레이크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그것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우리나라에는 이제서야 소개되지만 이 책의 출간 당시 미국에서는 대단한 호평을 들었던 모양이고, 그 후로 시리즈를 줄줄이 발표한 걸로 미루어 꽤 많은 독자를 거느린 것으로 보인다. 책의 뒷편에도 미국, 영국, 러시아, 헝가리, 그리스, 스페인 등 수백만 독자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하니 괜한 허풍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우선 주인공의 캐릭터가 뚜렷하여 개성적인데다 주변 인물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꽤 신사적이지만 장난 치듯 느끼한 멘트로 애니타를 순식간에 닭살 돋게 만드는 장 클로드. 멋진 몸매와 잘 생긴 얼굴의 뱀파이어 중독자 필립. 비록 애니타의 적이긴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마스터 뱀파이어 니콜라오스. 그 외의 인물들도 쉽게 잊혀질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토리는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공을 들인 탓에 스토리의 진행이 더디고 심지어는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뱀파이어를 죽인 범인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옅어지기까지 했을 정도. -나중에 범인을 알았을 때, 놀람보다는 '아, 얘가 범인이야? 범인을 쫓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비쥬얼이 강하여 상상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1인칭 시점에서 풀어가는 이 이야기는 마치 뱀파이어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특히 공포물인가 싶다가 순간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더니 또 미스테리 요소가 드러나는 이 책은 한 마디로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조잡하다거나 뒤죽박죽인 느낌은 아니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새로운 장르를 보는 듯한 느낌. 신선하다.
뱀파이어라 하면 '인간들의 목을 물어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血)로 기와 식욕을 충당하는 흡혈귀. 그 증거로 날카로운 송곳니 자국을 남기며 피의 공급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불의의 사고 -예를 들면 햇빛에 노출된다거나 말뚝이 가슴에 박힌다거나 하는- 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반 불사의 몸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쨌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으니 변종 귀신의 일종쯤으로 생각했고, 이 뱀파이어가 어떤 경로로 처음 탄생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껄끄러운 존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것은 쉬이 부정할 수가 없다. 일찍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란 영화에서 잘 생기다 못해 심지어 아름답기까지한 뱀파이어가 등장해 뭇 여성(혹은 남성)들의 마음을 홀렸지 않은가. 굳이 이 영화가 아니라도 우리에게(적어도 나에게) 인식된 뱀파이어의 존재란 무섭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였다.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간단하다. 내가 접한 어떤 책이나 영화,드라마도 뱀파이어를 못생기게 묘사해놓은 건 볼 수가 없었거든; 이건 중요한 문제다. 특정 대상의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
이런 나의 인식은 이 책을 통해 조금 변형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뱀파이어는 역시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모두가 다 잘 생기진 않았다라는 것. '윌리 매코이'를 보면 잘생겼단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겠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아름다움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거의 속임수에 가깝지만. '니콜라오스'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하긴 천년을 넘게 살았다니 노력없이는 그 아이같은 외모가 유지 되긴 어렵겠지.(뭐, 체형적인 이유도 있지만) 아무튼 이 책이 애니타 시리즈의 첫 작품인 만큼 다음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라서 높은 점수는 못 주겠다. 그렇다고 후속 작품을 안 읽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꼭 읽어보고 싶기까지 하다. 앞서 말했듯 캐릭터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미 '애니타'에게 빠져버린 것 같다. (어쩌면 장클로드에게 반한 걸지도...; 어째서 필립이 아니고 장클로드일까? +_+)
덧) 아, 그러고보니 이 책!! 왜 이렇게 오타가 많은 거야!?
처음에 살해 '시건'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시건? 시건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거다. 알고보니... 그건 '사건'의 오타였다.
물론 처음에는 '사건'의 오타겠거니 했는데, 그게 300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시건'으로 되어 있어서 난 내가 모르는 단어인 줄 알고 검색까지 해봤다. ('시건'이란 단어가 있긴 하지만 '사건'과는 전혀 다른 뜻) 물론 300페이지 이후에는 '사건'이라고 제대로 표기되어 나오지만 이거 정말 심각한 오타 아닌가. 읽는 내내 얼마나 거슬리던지. (너무 많아서 세다가 포기했다.) 초판 1쇄는 다 그러려나; 어쨌거나 출판사는 2쇄부터 꼭 이 오타를 정정해주길 바란다.